아무리 인공지능(AI) 시대라도 말(馬) 산업 분야에서는 인간만의 섬세한 기술과 감정적 교류가 여전히 중요하다.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고유 역량은 △말과의 정서적 소통 △심리적 지원 △개별 상황에 맞는 맞춤형 돌봄 등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정기 승마 인구는 2013년 3만8867명에서 지난해 7만1328명으로 약 75.7% 증가했다. 지난해 말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관련 고등학교와 대학교의 말 산업 전공과목 수는 평균 11.1개로 전년 대비 3.3개 늘었다. 최근에는 공교육에도 승마가 도입돼 초등학교 검정 교과서에 승마 관련 내용이 반영될 예정이다. 말 관련 산업의 저변이 확대되는 가운데 승마 관련 미래 유망 직업들을 짚어본다.
◇재활승마지도사: 치유와 공감 전문가
‘재활승마지도사’는 신체적·정신적 어려움이나 장애를 겪는 이들에게 승마로 심리적 안정뿐만 아니라 신체 기능 회복까지 돕는 역할을 한다. 이 직종은 단순한 승마 지도에 그치지 않고 △대상자 상태 평가 △승마와 치료적 접근법을 결합한 강습계획 수립 △기록 및 경과 관리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한다. 해외에서는 우울증·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자폐스펙트럼·뇌성마비 등 다양한 대상에게 맞춤형 재활 승마 프로그램을 제공해 신체적·인지적·사회적 발달을 유도하고 있다. 말과 사람 사이의 교감이 핵심이기 때문에 기계나 AI가 대체하기 어려운 분야로 평가된다.
국내에서 재활승마지도사가 되기 위해서는 국가 자격증 취득이 필수다. 재활승마는 크게 강습·치료·레저 및 스포츠로 나눌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각종 이론 교육 외에도 실무 위주의 현장 경험이 요구된다. 지난해 기준 총 456명이 자격증을 취득했다. 현재 한국마사회뿐만 아니라 민간 승마장까지 근무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장제사: 말의 건강 지키는 정밀 예술
말의 발굽을 다듬고 교정하는 일은 그저 ‘손질’이 아니다. ‘장제사’는 말의 발굽 상태와 건강을 면밀히 관찰한다. 이를 관리·교정하며 말의 건강을 책임진다. 발굽의 각기 다른 모양과 건강 상태도 고려해야 한다. 이 직업에선 미세한 차이를 파악하는 촉각적 감각과 경험에서 나오는 노하우 등이 중요하다.
또한 수의사와 긴밀히 협력해 발굽 관련 질병을 예방·치료하고, 경주마의 운동능력은 최대치로 끌어올려야 한다. 그러므로 철(말발굽)을 다루는 기술뿐 아니라, 수의학과 해부학에 대한 이해가 모두 필요하다. 이 때문에 장제사는 전문성과 고수입을 인정받는 직업이기도 하다. 말의 개별적인 건강 상태를 반영한 맞춤형 관리는 오직 숙련된 전문가만이 가능한 영역이다. 앞으로도 자동화시스템이나 로봇 등으로 대체되기는 어렵다.
대부분의 장제사는 한국마사회와 같은 공공기관에 근무하거나, 개인 사업체를 운영한다. 장제사 국가자격시험에 통과하면 경주마에 대한 장제 수행 자격을 취득하게 된다. 한국마사회 경주마 장제사로 활동하거나 민간승마장과 목장에서 활동하기도 한다. 지난해까지 총 105명의 장제사가 국가자격시험에 합격했다. 사업체 현황은 2019년 기준 37개소에 비해, 지난해 42개소로 약 13.5% 늘어났다. 국내 최초 여성 장제사(2019년)와 최연소 합격자(만 17세·2022년)의 사례도 등장하며 진입 장벽이 점차 낮아지고 있다.
◇경마기수: 승부 완성하는 사람
경마에서 기수 없이 말만 들어오면 순위가 인정되지 않는다. 경마는 기수와 말의 완벽한 호흡을 요구한다. 그만큼 승부에서 기수의 능력은 중요하다. 기수는 경주 성적에 따라 수입과 인기를 얻는 스포츠맨이다.
경마의 발상지인 영국에서는 귀족문화와 맞닿아 ‘신사적 스포츠’로 통한다. 프랭키 디토리(Frankie Dettori), 조지 무어(George Moore), 라이언 무어(Ryan Moore) 등 스타덤에 오른 기수 다수가 영국 출신이다. 가까운 일본에서도 경마는 국민적 인기 스포츠다.
국내에서 경마기수가 되기 위해서는 경마법규·마학(말복지포함)·마술학 등의 필기시험뿐만 아니라 기승(騎乘) 실기시험을 치러야 한다. 체중 52kg 이하, 맨눈 시력 0.3 이상 등의 신체적 조건 또한 갖춰야 한다. 신체적 조건만 유지된다면 60세까지 활동할 수 있다. 향후 말 관리를 총괄하는 조교사로 전직도 가능하다.
◇말 조련사: 승용마와 경주마의 성장 파트너
‘말 조련사’란 망아지를 경주마나 승용마로 훈련시키는 전문가다. 말의 성격과 목적에 맞게 맞춤형 훈련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운영한다. 조련에서는 말과의 깊은 신뢰 관계가 중요하다. 크게 경주마 조련사와 승용마 조련사로 나뉘는데, 이중 승용마 조련사는 아직 초기 단계라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 어린 말부터 육성·조련해, 경매를 통해 고가에 거래되면 큰 성취감까지 느낄 수 있다. 말 조련사는 자격 취득 후 경주마 또는 승용마 생산·육성 업체에서 조련사로 활동할 수 있다. 또 민간 승마장이나 목장·사료업체에 취직하기도 한다.
말 산업 관련 전문 직종들은 기술 발전 속에서도 인간과 동물 간 특별한 관계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나갈 것이다. AI로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손길, 그것이 바로 말 산업의 미래를 더욱 빛나게 할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