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유난히 어둠이 짙게 깔린 구간이 있다. 수원, 용인, 화성까지 이어지던 도심의 불빛이 어느 순간 뚝 끊기고, 도로 주변은 가로등만 간신히 빛을 밝힐 뿐 적막감이 감돈다.
그 끝자락에 오산이 있다. 높은 빌딩도, 번쩍이는 불빛도 드문 이곳은 밤이 되면 더욱 고요해진다.
이 어둠을 걷어내기 위한 오산의 첫걸음이 ‘운암뜰 AI시티’다. 오산시민들의 오랜 숙원이었던 운암뜰 개발은 성남 대장동 사태 이후 난항을 겪으며 지연됐지만, 민선 8기 이권재 시장 취임 후 다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오산시는 도시공사를 설립하고, 개발 지분을 추가 확보하며 그동안 멈춰 있던 시간을 되돌리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운암뜰 AI시티, 역풍 속 고군분투
운암뜰 사업부지는 오산의 마지막 남은 노른자 땅이다. 경부고속도로를 끼고 있어 주변 도시와의 이동이 유리한 데다 오산시 중심지역과 인접해 개발 여건을 이미 갖춘 곳이다. 부지 건너편에는 오산시청이 있다.
지난 2019년 3월 운암뜰AI시티 도시개발사업이 본격화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민간사업자들은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민관 합동으로 추진되는 이 사업은 당초 2024년을 목표로 오산시 오산동 166번지 일원 60만㎡ 부지에 지식산업 시설, 문화교육 시설 등을 조성하기로 했었다. 개발 규모는 7000억원이다. 시는 이곳에 쇼핑문화시설 등 대규모 상업시설을 유치해 1만 3000명의 인구 유입과 지역경제 활성화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구상이다.
공모 사업 설명회에만 100여개가 넘는 기업이 참여했다. 민간사업자 공모에서는 현대엔지니어링 컨소시엄이 최종 사업대상자로 선정됐다. 시와 현대엔지니어링은 50억원의 자본금을 출자,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해 민관합동 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역경도 있었다. 2021년 성남에서 대장동 사태가 일어나면서 여파는 운암뜰까지 불어 닥쳤다. 당시 시는 경기도의 구역지정 및 개발계획승인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정부가 민관 도시개발사업의 공공성을 강화하겠다고 나서며 승인심사는 기약없이 미뤄졌다. 사업이 연기되자 개발사업에 참여하는 민간사업자들이 개정된 법안을 두고 헌법소원심판 청구를 검토하기도 했다.
사업은 2년이 흐른 뒤에야 재추진됐다. 2023년 도시개발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 상임위를 통과하면서다. 대장동 사태 여파로 일부 개정된 도시개발법이 민간의 이윤율 상한 10%로 제한하고, 초과 발생한 이익을 공공에 재투자하자는 게 골자였다면, 새로 개정된 법안은 ‘이미 선정된 민간참여자(우선협상대상자 포함)의 경우 3년간 적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미 공동출자법인을 설립했던 시는 사업 재추진이 가능해진 것이었다.
◇오산도시공사 설립…지분 싸움 이어간다
운암뜰 개발사업이 순항하고 있지만, 지분 확보는 여전한 숙제다. 시는 사업 초기 출자금 미회수에 따른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51%의 공공지분을 오산시(19.8%), 한국농어촌공사(19.7%), 수원도시공사(5.3%), 평택도시공사(5.3%) 등 4개 공공기관이 나눠 보유하기로 했다. 나머지 49.9%는 현대엔지니어링 등 민간부문 출자금으로 구성됐다.
이로 인해 앞으로 발생할 개발 이익이 오산시가 아닌 다른 지자체로 떨어진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왔다. 이 시장은 지자체와 공기업이 보유한 개발 지분 추가 확보를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이 시장은 지난해 10월 수원시와 평택시, 한국농어촌공사 등이 참석한 회의에서 지분을 유상양도할 것을 제의한 상태다. 이 시장이 아쉬워하는 부분은 오산도시공사 설립이 정치적인 이유에서 늦춰졌다는 점이다. 이 시장은 취임 일성으로 도시공사 설립의 필요성을 주창해왔다. 그 당시를 지분확보를 위한 골든타임의 마지노선이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민주당 시의원들이 민관거버넌스를 통한 숙의, 벤치마킹 추진 등을 주장하며 도시공사 설립 시계를 뒤로 늦추면서 사실상 지분확보를 위한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한다. 지분을 보유한 지자체들 입장에선 막대한 투자 수익이 걸린 만큼 설득이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열려있는 한 지분확보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생각이다. 정파적 이익을 떠나 여야가 협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냈다.
◇세교 3지구 개발로 운암뜰과 시너지 기대… “인구 50만 자족형 커넥트시티 초석”
시는 운암뜰에 더해 세교3지구를 개발함으로써 예산 1조원 시대의 마중물로 삼으려 한다. 세교3공공주택지구는 2023년 국토교통부가 주택공급 활성 방안의 후속조치로 신규 공공주택지구 대상지에 포함시키면서 물살을 타고 있다. 세교3지구는 서동 일원에 433만㎡(131만 평) 3만1000호가 포함됐다. 국토부는 ▲화성·용인·평택 반도체 클러스터 중심부에 위치한 점 ▲수원발KTX, GTX(수도권 광역급행전철) 등을 선정 근거로 제시했다.
운암뜰을 비롯해 세교3지구의 신규 공급대상지 선정에 따른 급격한 인구 증가가 예상되는 만큼, 시는 교통망 확충에도 집중하고 있다. 오산휴게소 인근 하이패스 진출입로 신설과 경부고속도로 오산IC 인근 상부 복합문화공간 구축, 수원발 KTX 오산역 정차 등이 앞으로의 과제다. 이 시장은 “세교3 공공주택지구 대상지 선정만으로 경제자족도시 전체기능을 갖춘 건 아니다”라며 “세교3지구와 1, 2지구의 광역교통계획 연계 보완 등에 집중해 경제자족도시 오산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