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경북 경주시 경주화백컨벤션센터에서 APEC 2025 KOREA 경주 포럼이 열렸다. 패널 토론에 참가한 각계 전문가 9명은 “일회성 행사를 넘어 향후 APEC을 위한 지식 포럼 등 뜻깊은 유산을 경주에서 남기자”고 제언했다. /김동환 기자

지난달 30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주 회의장인 경주 화백컨벤션센터에서 ‘APEC 2025 KOREA 경주 포럼’이 개최됐다.

이날 포럼에선 ‘APEC 정상 회의,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를 주제로 각계 전문가 9명이 나서 토론을 이어갔다. 이들은 APEC 정상 회의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 APEC학회장인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가 좌장을 맡았고, 김종걸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김흥종 고려대 국제대학 특임교수, 유철균 경북연구원장, 최경규 동국대 경영대 교수 등이 참여했다.

패널들은 “APEC을 일회성 관광 행사로 낭비해선 안된다”고 입을 모았다. APEC 기간에 각국 정상들이 나눈 정책 논의들을 기록하고 지속적으로 연구해 국가 발전에 활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APEC 지식’과 행사 이후에도 이어질 수 있는 ‘APEC 유산’을 남겨야한다는 취지였다.

박정수 이화여대 교수

“미·중 갈등 속 한국이 균형추 역할 할 기회”

박정수 교수는 “경주에서 개최될 APEC 정상회의는 미·중 갈등 시기에 한국이 균형추 역할을 해낼 수 있는 기회”라고 했다. 박 교수는 “현재 세계 각국이 자국중심주의로 회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만큼, ‘지속 가능한 내일을 세계가 함께 만들어가자’는 주제로 열리는 APEC이 더욱 의미 깊다”고 했다. 그러면서 APEC이 성공적으로 개최되려면 장기 지속성을 고려한 인프라 개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경주가 단순히 ‘APEC이 열렸던 곳’으로 기억돼선 안 된다”며 “세계인들이 다시 방문하고 싶은 명소로 거듭나려면 지속 가능성을 염두에 둔 인프라 개발이 필요하다”고 했다.

최경규 동국대 교수

“APEC 지식 관리할 체계 만들어 보완하자”

한국 APEC학회 상임고문을 맡고 있는 최경규 교수는 “경주 APEC을 기점으로 ‘APEC 지식 포럼’을 만들어야한다”고 제안했다. 향후 APEC에서 다룰 주요 의제를 설정하고 연구 결과를 축적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최 교수는 “2005년 부산에선 APEC이 끝나자마자 관심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는데 경주는 그래선 안된다”며 “그간 회원국들의 개별 연구가 공유되지 않아 APEC 정책에 반영되지 못했는데, 상시적으로 APEC 지식을 관리하는 체계를 우리가 만들어 이를 보완하자”고 했다.

그러면서 “서울에선 글로벌 의제를 조정하고, 경주에선 현장 연구 등을 병행하는 지식 포럼이 운영돼야한다”고 했다.

김흥종 고려대 특임교수

“경주 문화유산을 복원·재창조할 필요 있어”

김흥종 교수는 “정부에 예산을 요구해서라도 경주의 역사적 문화 유산을 복원·재창조할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과거 아일랜드에선 ‘켈트 문화’를 기대하는 관광객들을 위해 아일랜드 정부가 터만 남고 무너졌던 켈트족의 성을 다시 쌓은 사례가 있다”며 “우리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라진 경주의 문화 유산들을 과감하게 복원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후손들이, 또 APEC 대표단을 포함한 향후의 관광객들이 경주에 기대하는 것을 경주가 보여준다면 APEC 효과는 배가 될 것”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또 “APEC 정상회의가 성공적으로 개최될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유철균 경북연구원장

“AI 영화 100편 만들어 문화유산 매력 알릴 것”

유철균 원장은 “역사와 첨단 기술을 융합한 콘텐츠로 한국 문화의 매력을 세계에 알려야한다”고 했다. 포럼 당일 유 원장은 신라 효공왕 시절 연인들의 사랑 이야기를 생성형 AI로 만든 영화를 공개했다.

유 원장은 “역대 APEC에선 자국 문화를 성공적으로 소개한 사례가 많다”며 “9세기 세계 4대 도시였던 서라벌의 고도(古都)인 경주는 한류의 원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경주의 문화유산을 테마로 한 AI 영화를 매달 제작해 APEC 개최 전까지 100편 가까이 만드는 게 목표이며, 매소성 전투·해상왕 장보고를 소재로 기획 중이다”라고 했다.

송유철 동덕여대 교수

“회원국 간 경제 교류시 비용 절감 합의 필요”

송유철 교수는 “APEC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동반 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국제기구이나, 토론만 많고 행동은 없다는 비판점도 있다”면서도 “활용하기에 따라 APEC은 투자정책, 지적재산권, 서비스 자유무역 등 효율적인 국제 경제 논의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APEC에선 각국 정상들의 합의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지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정상회의선언문을 만들어야한다”고 했다. 송 교수는 또 “지나치게 높은 목표를 세우기보다, 한국이 APEC 의장국으로서 향후 회원국들과의 경제 교류 시에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합의를 도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박환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글로벌혁신전략연구본부장

“회원국 간 디지털 역량 강화에 기여하자”

박환일 본부장은 “APEC을 한국이 가진 기술과 혁신 사례를 회원국들과 공유하는 기회로 삼자”고 했다.

박 본부장은 “한국은 2019년부터 APEC에 디지털 혁신 기금을 설립할만큼 디지털 기술 개발에 진심인 나라”라면서 “APEC 회원국들도 전자·AI·데이터 수집 등 한국의 첨단 디지털 기술에 대한 관심이 많다”고 했다.

박 본부장은 “이번 APEC에서 회원국들의 디지털 역량 강화에 기여해 APEC 정신인 포용적 발전을 이룩하자”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APEC 정상회의를 한국의 기술 리더십을 세계에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아 국가 위상을 드높이자”고 했다.

김종걸 한양대 교수

“경주 APEC 행사의 유산으로 봉사단 남기자”

한양대 국제대학원 김종걸 교수는 “경주 APEC 행사의 유산으로 봉사단을 남기자”고 했다.

APEC 행사가 끝나면 사라지는 일회성 봉사단이 아니라, 경험을 살려 또다른 국가적 행사에도 활동할 수 있는 봉사단을 만들자는 취지다.

김 교수는 “미국에서 대통령 주도하에 각계각층의 시민들로 구성하는 ‘Ameri Corps’ 봉사단처럼, 우리도 청년·시니어·유학생·취약계층 APEC 봉사단을 각각 꾸릴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향후 이들을 결합해 경북봉사단으로 만들어야하며, 경북봉사단을 운영하면서 누적된 경험이 국가 전체로 퍼져나가길 바란다”고 했다.

오정우 외교부 APEC정상회의준비기획단 시설사업부장

“보문단지 내 숙박시설, 최고급으로 리모델링”

APEC 정상회의 관련 인프라 조성을 담당 중인 오정우 부장은 “세계 최고 수준의 APEC 시설을 만들겠다”고 했다.

오 부장은 “보문단지 내의 숙박시설을 최고급으로 리모델링해 정상들을 맞을 것이며, 2만여 명 이상의 각국 대표단 등을 위한 숙소도 조성 중”이라며 “9월까지 가용면적 1만 1000㎡(3327평) 규모의 경주화백컨벤션센터를 정상회의장으로 리모델링하겠다”고 했다.

정상들의 전용기 입항을 위해 포항경주공항 등을 정비하고 경주 시내 교통 시스템도 개선할 방침이다.

정상회의 기간 중 발생할 수 있는 응급 상황에 대한 의료 분야 대책도 준비 중이다.

이영찬 동국대 WISE캠퍼스 교수

“디지털·그린 전환 모델, 먼저 제시하자”

이영찬 교수는 “경주를 중심으로 한 디지털·그린 전환 모델을 만들자”고 했다. 전세계가 AI를 비롯한 디지털 정책과 탄소중립 등 친환경 정책을 국가 핵심 먹거리로 삼는만큼, 경주에서 모범적인 모델을 먼저 제시해보자는 의미다.

이 교수는 “경주는 한국수력원자력 본사가 있고 소형모듈원전(SMR) 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되는 등 원자력 기술을 실증할 환경을 갖춘 도시이자 풍부한 문화 유산을 보유한 도시”라며 “향후 경주가 안전한 원자력과 신재생 에너지 등을 조합해 균형잡힌 에너지 공급 모델을 만들어낸다면 세계가 주목할 선도 사례가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