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탕수육·마파두부·짜장면… 이 요리에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메뉴’이자 ‘돼지고기로 만든 요리’라는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요리들은 인간의 4가지 미각인 단맛·짠맛·신맛·쓴맛으로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맛있다고 느끼는 건 바로 ‘감칠맛’과 ‘지방맛’이 있어서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혀로 느낄 수 있는 맛은 네 가지로 알려졌지만, 2000년 1월 과학자들이 20가지 아미노산 중 하나인 글루탐산을 감지하는 수용체를 발견하면서 ‘감미로운 맛’ 혹은 ‘감칠맛(Umami)’을 제5의 맛으로 추가했다.

돼지고기 지방은 몸에 이로운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하고, 그중 절반은 지중해 식단의 핵심인 올리브유와 동일한 올레산이다. /한돈자조금 제공

그렇다면 비계와 살코기가 적절히 섞인 고기를 구워 먹을 때 느껴지는 고소하고 크리미한 풍미는 무슨 맛이라고 설명해야 할까? 미국 워싱턴 세인트루이스 의대와 호주 디킨대학교 연구팀은 이를 ‘지방맛(Fat Taste, Oleogustus)’이라고 발표하며 그동안 설명되지 않았던 고기 맛을 제6의 맛으로 새롭게 규명했다.

지방맛은 인간의 미뢰(味蕾)에 있는 CD36 수용체가 지방산(Fatty Acid)이라는 물질을 감지할 때 느껴지는데, 사람마다 수용체 민감도가 달라서 같은 고기를 먹어도 어떤 사람은 담백하게, 어떤 사람은 느끼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다르게 말하면 저지방 우유가 일반 우유보다 맛이 심심하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이 지방맛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방’ ‘비계’ ‘기름’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소비자도 있지만, 사실은 우리가 좋아하는 삼겹살이나 돼지고기를 볶아서 만든 짜장 소스, 마파두부 소스와 탕수육, 동파육 등은 지방이 있어야 더 맛있고 영양 성분도 풍부하다. 특히 돼지고기 지방은 몸에 이로운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하고, 그중 절반은 지중해 식단의 핵심인 올리브유와 동일한 올레산(Oleic Acid)이다.

이탈리아 북부 지역에 가면 라르도(Lardo)라는 요리가 있다. 고기를 염장하고 숙성한 샤퀴테리의 일종으로 돼지고기 지방만을 선별해서 만든 요리다. 입에 넣으면 마치 아이스크림을 먹은 듯 살살 녹는 맛이 일품이라 미식가들이 손꼽는 와인 안주 중 하나다. 일본·중국·대만·홍콩에서도 돼지고기 비계를 활용한 요리를 다양하게 볼 수 있다. △부드럽게 삶은 차슈를 올린 돈코츠 라멘 △돼지고기 껍질과 살코기를 묶어서 뭉근한 소스에 장시간 조린 동파육 △하얗고 두툼한 빵 안에 간장에 조린 삼겹살과 야채를 채워 넣은 대만식 포크번 과바오(刈包) 등은 현지인뿐 아니라 세계인이 사랑하는 ‘소울푸드’이다.

국내 미식가들이 즐겨 찾는 중식당 ‘무탄’의 시그니처 메뉴는 짜장면이다. 흔한 짜장면이 왜 시그니처인지 의아할 수 있지만, 무탄만의 맛 내는 비법이 따로 있다. 바로 삼겹살의 지방이다. 보통 짜장면에 올라가는 짜장 소스는 돼지고기 전지나 후지를 춘장에 볶아서 만드는데, 무탄에선 라드(lard)라는 돼지기름을 직접 뽑아 웍에 올리고, 삼겹살을 다져 야채와 함께 춘장에 볶아 짜장 소스를 만든다. 이렇게 탄생한 짜장 소스는 돼지고기 기름 덕분에 면과 함께 비볐을 때 빈틈없이 버무려지고, 입안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는 녹진한 질감이 예술이다. 탕수육도 특별하다. 보통 돼지고기 목살로 탕수육을 만들지만, 무탄은 지방이 고루 있는 흑돼지 삼겹살 부위로 요리해 씹었을 때 담백함과 쫄깃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중식은 강한 화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비계 없는 부위로 요리하면 자칫 퍽퍽해질 수 있어 약간의 지방층이 있는 고기 부위를 사용해야 맛 내기도 좋다.

이처럼 돼지고기는 매력이 많다. 요리하는 사람에게 돼지고기는 활용 가치가 높고, 돼지고기 요리를 즐기는 미식가에게는 넓은 선택권을 제공한다. 더불어 지방맛이 제6의 맛으로 규명되며, 돼지고기는 맛의 폭과 깊이를 확대하고 삶에 즐거움까지 더해주는 음식으로 자리매김했다. 먹고·씹고·맛보고·즐기고… 인간으로 태어나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이를 즐길 수 있는 미각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