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진흥청은 2008년부터 현재까지 세계 최대 규모의 저장고인 노르웨이 스발바르 국제 종자 저장고(글로벌 시드 볼트)에 토종 종자 3만8000종을 기탁했다고 밝혔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유전 자원의 절반 수준이다. 기후변화나 전쟁처럼 지구에 닥칠 재난에 대비해 식물 종자를 영구 저장하는 ‘현대판 노아의 방주’로 불리는 이곳에 토종 종자를 기탁한 아시아 국가는 한국이 최초다. 한국은 앞으로 10년 동안은 국내 식물 자원을 매년 4000개씩 더 기탁해 보존할 계획이다. ‘식량 안보’가 주요 이슈로 주목받는 가운데 농업 유전 자원을 보존하는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보존 중인 유전 자원만 28만개
현재 농촌진흥청은 농업 유전 자원을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해 국내외 4개 보관 시설에 중복으로 식물 종자를 보존하고 있다. 노르웨이 글로벌 시드볼트와 함께 국내에서는 전북 전주와 경기 수원의 종자은행, 경북 봉화에 있는 백두대간 글로벌 시드 볼트 등 세 곳에서 종자를 지키고 있다.
특히 종자은행은 과학적으로 종자를 안전하게 보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안정적인 온도·습도를 유지할 수 있고 규모 7의 지진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다. 중기(中期) 저장고에선 온도 4℃, 습도 30% 이하에서 30년간 보존할 수 있다. -18도, 습도 40% 이하에서 100년까지 보존이 가능한 장기(長期) 저장고도 있다. 경북 봉화에 있는 시드볼트는 백두대간수목원에 자리하고 있다. 종자를 여러 곳에 중복으로 보존하기 위해 작년까지 14만개 자원을 보존했다. 올해도 4만개 자원을 추가로 저장할 계획이다.
이렇게 국내에서 보존·관리되는 식물 종자만 올해 1월 기준으로 식물 3155종 28만331자원에 달한다.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100년 이상 자원을 수집한 자원 부국과 비교하면 부족하지만 50여 년의 짧은 역사를 고려하면 많은 발전을 이룬 것”이라고 설명했다.
◇”농업 유전 자원, 국가의 중요 자산”
한국이 이렇게 종자 보존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역사적 아픔이 있었던 영향이 컸다. 1997년 IMF 외환 위기 당시 국내 5대 종묘 회사 중 4개 회사가 멕시코·스위스·미국 기업에 매각되면서 우리가 갖던 종자에 대한 권리도 함께 뺏겼다. 당시 청양 고추를 개발한 3위 기업 중앙종묘가 매각돼 현재 우리는 독일에 로열티를 지불하는 실정이다.
해외에서 전쟁을 치른 나라들만 보더라도 종자 보존의 중요성은 더 뼈아프게 다가온다. 2015년 시리아 내전 당시 일부 종자들이 소실되면서 노르웨이 국제 종자 저장고에서 반출된 적이 있었다. 여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코로나 등으로 식량 자원은 또 하나의 ‘무기’가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농촌진흥청 권재한 청장은 “농업 유전 자원은 후손을 위한 국가 중요 자산이자 고부가가치를 지닌 핵심 소재”라며 “국내 농업 유전 자원 보존의 최후 보루로서 농업 유전 자원을 보존·활용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