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서울 중구 페럼타워 3층 회의실에서 옥스팜 ‘2024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컨퍼런스’가 열렸다. 국제구호개발기구 옥스팜은 1942년 설립 이래 자원 순환, 공급망 내 인권 증진 활동 등을 통해 ESG를 선도해 왔다. 이에 동참하는 국내 기업들이 늘어나는 가운데, 옥스팜은 근로자의 인권 개선을 위한 기업의 과제와 대응 전략을 모색하기 위해 이번 컨퍼런스를 마련했다.
지경영 옥스팜 코리아 대표는 인사말에서 “우리 사회 속 어렵고 난해한 분야인 비즈니스 인권 성장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인가’ ‘왜 우리는 여기에 관심을 둬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졌다”며 “옥스팜이 80여 년간 전 세계의 가난과 불평등을 없애기 위해 노력해 온 만큼 기업이 인권 문제에서 사회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힘을 쏟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라를 이끄는 건 정부, 인권을 책임지는 건 기업… 기업·지역사회 협업 이뤄져야”
이날 첫 주제 발표를 맡은 루스 음랑가 옥스팜 영국 민간부문 총괄은 ’기업 인권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 ‘공정한 비즈니스 모델’ 등을 소개했다. 그는 옥스팜 같은 단체가 기업의 책임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를 설명했다. 음랑가 총괄은 “나라를 이끄는 건 정부지만, 근로자의 인권을 책임지는 건 기업”이라며 “기업이 회사를 잘 운영해야 일자리가 늘고, 지속가능한 소비가 이어져 이 같은 문제가 사라진다”고 했다. 인권 확립과 빈곤 퇴치를 위해 기업이 먼저 강한 책임 의식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업이 쉽게 바뀌지는 않는다. 몇 가지 단계를 거쳐야 한다. 우선 기업과 지역사회가 대화해야 하고, 다양한 연구도 거쳐야 한다. 음랑가 총괄은 “기업과 지역사회가 모여 한 가지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위한 협력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책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이해관계자의 관여가 필요하며, 인권 문제를 기업의 자유에 맡긴 사회 분위기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음랑가 총괄은 지역사회와의 협력뿐 아니라 동료 기업과의 협업도 강조했다. 완성차 업체, 철강 산업, 식품업계 등 업종이 달라도 기업들이 마주해야 할 도전 과제는 비슷하다. 기업들이 인권 리스크에 공감하고, 경쟁을 잠시 내려둔 상태에서 인권 데이터를 모으는 게 더 나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책상 아닌, 현장에 가 공급망 전역에서 근로자의 현황 살펴야… HRIA 요소 중요”
음랑가 총괄에 이어 엘리나 아흐터베르그 옥스팜 네덜란드 비즈니스 인권정책 총괄이 ‘인권 리스크 관리를 위한 HRIA 주요 원칙과 기업 사례’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특히 기업이 위험을 이해·관리하기 위한 인권영향평가(Human Rights Impact Assessment·HRIA)의 역할을 강조했다. HRIA는 공급망에서 비즈니스의 잘못된 관행이 인권에 미치는 위험을 파악하고 이해하도록 지원하는 평가다. 근로자와 당사자들을 위한 체계적이고 지속가능한 개선책을 마련하도록 돕는다. 옥스팜의 HRIA 요소는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원칙(UN Guiding Principles on Business and Human Rights·UNGPs)’에 명시된 기준과 원칙을 기반으로 도출했다.
아흐터베르그 총괄은 “책상이 아닌, 현장에 가 공급망 전역에서 근로자의 현황을 살펴보는 게 핵심”이라며 “이를 통해 ‘해당 기업의 운영 현황이 어떤지’를 살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왜 HRIA를 수행해야 할까.” 아흐터베르그 총괄이 발표 도중 청중들에게 이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는 “기업 활동에 있어서 ‘어떤 문제가 있는지’ 단순히 이해해선 안 된다”며 “중요한 건 근본적 원인을 규명하려는 자세”라고 했다. 이를 통해 기업의 모든 활동이 사람들에게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기업 공급망 인권실사 사례 발표도 이어져… SK ‘기업과 인권’ 행사 매년 진행
민창욱 법무법인 지평 파트너 변호사의 ‘한국 기업 공급망 인권실사 Case Study 공유’ 발표도 있었다. 인권실사(HRDD)는 기업이 이해관계자들에게 미치는 부정적 인권 영향을 식별·예방·완화하며, 어떻게 대처할지를 설명하는 과정이다. ▲인권 영향에 대처할 계획을 수립하는 ‘통합·조치 단계’ ▲인권 영향에 대한 기업의 조치가 적절했는지 검증하는 ‘추적·검증 단계’ ▲기업의 조치를 외부에 공개하는 ‘소통 단계’ ▲최종적으로 실제적·잠재적 부정적 인권 영향을 식별하는 ‘인권영향평가’ 순이다. 민 변호사는 “기업 실사는 위험에 비례한다”고 했다. 부정적 영향의 심각성 및 발생 가능성이 높으면 기업실사가 더 광범위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다. 식별된 모든 영향이 즉시 해결될 수 없는 경우 부정적 영향의 심각성 및 발생 가능성에 따라 조치들 간 우선 순위들을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이규영 SK mySUNI Research Fellow는 SK그룹 사례를 소개했다. SK는 이천포럼과 그룹 내 인권 세미나 개최 등 ‘기업과 인권’ 관련 워크샵을 통해 관계사간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이런 행사를 매년 1~2회 진행 중이라고 한다.
이날 컨퍼런스에서는 한국 기업의 인권 경영, 비즈니스 리스크 관리를 위한 연사들의 토론·제언이 이어졌다. 박란희 임팩트온 대표는 음랑가 총괄에게 한국 기업이 글로벌 기업보다 인권 문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물었다. 이에 음랑가 총괄은 “하향식 접근, 소극적 자세로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게 문제”라며 “좋은 정책이어도 비용 부담을 우려한 탓에 정책 수립까지 가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공급망이 와해·파괴될 경우 파업 같은 리스크 발생으로 이어져 오히려 수많은 비용 지출을 불러 일으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업 차원에서 더 적극적으로 HRIA 실행에 투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옥스팜(OXFAM)은?
1942년 영국 옥스퍼드에서 시작됐다. 실용적·혁신적 방법으로 인도적 구호활동 및 개발활동을 펼치고 있는 국제구호개발기구다. 전 세계 약 80여 개국에서 식수·위생부터 생계자립 그리고 여성보호 및 교육 프로그램까지, 여러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빈곤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고자, 각국 정부 및 국제기구와 협력해 정책 입안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6만파운드를 지원하며 긴급구호 활동을 펼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