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경기 침체로 주택 공급 지표가 부진한 가운데 ‘모듈러(modular) 공법’이 주목받고 있다. 모듈러 공법은 벽체·창호·배관·욕실 등 표준화된 모듈을 공장에서 미리 제작해 현장으로 운반해 조립한 후 건축물을 완공하는 ‘스마트 건설’ 기법이다. △공사 기간 단축은 물론 △건축물 폐기물 감소 △탄소 배출 저감이 가능한 친환경 공법이다.
지난 2일 한국철강협회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공동 주최하고 조선일보가 후원한 ‘모듈러주택 활성화 정책 포럼’이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이날 포럼은 △국내 모듈러 주택 시장 점검 △규제 혁신 △산(産)·학(學)·연(硏)·관(官) 협력을 통한 제도 개선 방안 모색을 위해 마련됐다. 이 자리에서 김규철 국토교통부 주택토지실장은 “올해 안으로 주택법 개정안을 발의해 모듈러 주택의 높이 제한이나 용적률 등 규제 완화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포럼 1부는 ‘국내외 모듈러 주택 시장·정책 동향 및 향후 계획’을 주제로 진행됐다. 조봉호 아주대 교수의 ‘모듈러 주택 최근 트렌드 및 향후 전망’을 시작으로 이광우 국토교통부 주택건설공급과 사무관의 ‘모듈러 주택 활성화를 위한 정책 및 제도 추진 방향’, 노태극 한국토지주택공사 팀장의 ‘LH 2030 OSC 로드맵, 모듈러 주택 활성화 전략’ 발표가 이어졌다.
포럼 2부에서는 ‘모듈러 주요 프로젝트 및 기술·공법 트렌드 소개’가 이어졌다. 경기주택도시공사는 국내 최고층 모듈러 국가 R&D(연구·개발) 실증사업으로 추진된 ‘GH용인영덕 경기행복주택’ 사례를 소개했다. 시공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은 고층 모듈러 건축 기술 개발 현황을 설명했다. 이어 포스코는 ‘모듈러 내화 인정제도 현황 및 개선 방안’, 모듈러 제작사인 플랜엠은 ‘모듈러 DfMA(Design for Manufacture and Assembly) 적용 사례 및 해외 진출 방안’, LG전자는 ‘건설·가전 융복합 모듈러주택 상품’을 소개했다. 주요 발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스마트 턴키 방식 모듈러 주택 발주
부품만 교체하면 100년 사용 가능
한국토지주택공사
3D 설계(BIM)·3D 프린팅·사물인터넷(IoT)·인공지능(AI)·빅데이터 등 스마트 기술이 건설업에 도입됨에 따라 건설 현장도 변모하고 있다. 스마트 기술로 건설 부재를 사전 제작해 현장에서 조립하는 생산 방식(OSC·off-side construction)이 주목받는 것이다.
OSC 방식은 기존에 비해 △탄소 및 폐기물 배출량 △에너지 소비량 △안전사고 발생률 측면에서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건설 현장 노령화에 따른 △생산성 저하 △건설 품질 저하 위험에 대한 대책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미국의 경우 건설업체 90% 이상이 OSC를 접목하고 있고, 일본은 모듈러 주택 해체 후 주요 부위를 모듈러 생산 업체에 80% 되파는 방식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해외 건설 강국(5위권) 위상’에 비해 아직 인식 수준이 낮다.
노태극 한국토지주택공사(LH) 팀장은 ‘모듈러 주택 활성화 정책 포럼’에서 탈현장 건설공법의 장점을 소개했다. 노 팀장은 “모듈러 공법을 활용하면 기존 철근콘크리트 대비 20~30% 공기가 단축된다”라며 “현장의 인력 소요가 줄고, 기능공의 기술력, 시공 노하우에 따라 현장별로 들쭉날쭉하던 시공 품질이 일정해지고 건설업의 제조업화도 이루어진다”고 강조했다.
탈현장 건설공법이 이슈로 부각되는 배경에는 외국인 근로자 증가 문제도 자리하고 있다.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외국인 건설 현장 근로자가 60%를 초과해 설계 및 시공에 대한 이해가 낮고 오시공 위험은 더욱 커지고 있다.
LH는 세종 5-1 생활권(스마트시티 국가시범도시) L5 블록에 공동주택 최초로 스마트 턴키 방식의 모듈러 주택 건설을 발주했다. L5 블록은 30년마다 재건축 논의가 나오는 일반 아파트와 달리 주기별로 배관 등 부품만 교체하면 100년까지 사용할 수 있는 장수명 주택이다.
노 팀장은 “건설 생산 체계를 공장 생산으로 전환하는 생태계 혁신을 통해 품질과 생산성 저하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도 마련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세계 6번째 13층 이상 모듈러 건축물 보유
생산성 외에도 ESG 경영에 필요한 솔루션
경기주택도시공사
경기주택도시공사(GH) ‘용인영덕 경기행복주택’은 국내 최초의 중·고층 모듈러 주택이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13층 이상 모듈러 건축물을 보유한 세계 6번째 국가가 됐다. 모듈러라는 차별화 공법을 인정받아 ‘2023 대한민국 국토대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다.
박상열 경기주택도시공사 부장은 ‘모듈러 주택 활성화 정책 포럼’에서 국내 최고층 모듈러 국가 R&D(연구·개발) 실증사업 사례로 ‘GH용인영덕 경기행복주택’을 소개했다. 용인영덕 경기행복주택은 기존 공사보다 40% 기간 단축, 효율적인 자재 재활용 및 유지 관리 등 사업 전 과정에서 혁신을 이룬 모범 사례로 평가받는다. 박 부장은 “모듈러 주택은 생산성 향상 외에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 필요한 현실적 솔루션을 제공한다”면서 “90%가량 재사용할 수 있고 4%가 리사이클링, 6%만 버려져 환경보호 효과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 “기존 건설업 대비 모듈러 공법 적용 시 사망만인율(근로자 1만 명당 산업재해 사망자 수)을 31%나 낮출 수 있다”면서 “용인영덕 경기행복주택 건설 과정에서는 단 1건의 안전사고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용인영덕 경기행복주택은 △주거의 질 향상 △건설업 발전 △최고 13층·내화 3시간 극복 △탄소 배출량 저감 △지역 균형 발전 및 활성화 기여 △안전 리스크 감소 등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또 건축 기술력의 한계 극복은 물론 특화된 모듈러 기술 확보를 통해 초고층 모듈러 주택 도전도 머지않았다. 경기주택도시공사는 2025년 ‘25층 모듈러주택’을 계획하고 있다. 또 모듈러 기술 발전을 통해 △공사 기간 단축으로 행복주택 신속 보급 △모듈러 건축물 수출 △고층 모듈러 건설 기술 제공 등의 효과를 기대한다.
한편, 경기주택도시공사는 용인영덕 경기행복주택 거주 후 평가(POE)로 개선 사항을 조사했다. 박 부장은 “모듈러 공법은 공사비가 저렴하다는 입주민들의 잘못된 인식과 구조적으로 불안하다는 의견이 여전히 많았다”라면서 “지속적인 홍보로 의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모듈러는 RC(철근콘크리트) 공법보다 공사비가 비싸 정부 차원의 세제 혜택 등 재정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또 모듈러 주택의 활성화를 위해 △내화 기준 개선 △용적률 인센티브 △공사비 가산 비용 현실화 △감리자 역량 강화 △인허가 간소화 및 재정 지원을 건의했다.
고층 모듈러 건축을 위한 기술개발 선도
기존 아파트와 동등 이상의 성능 확보
현대엔지니어링
현대엔지니어링은 국내 최초 중·고층 모듈러 주택인 GH용인영덕 경기행복주택 건설에 참여해 성공리에 완공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2012년부터 독자적인 모듈러 건축 연구·개발(R&D)에 착수했다. LH·SH와 구조 시스템을 개발하고 국책과제 2건에도 참여해 건설 신기술(1건)·특허(17건)를 확보했다.
김양범 현대엔지니어링 팀장은 ‘모듈러주택 활성화 정책 포럼’에서 고층 모듈러 건축 기술 개발 현황을 소개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최고의 기술로 시장을 선도하는 글로벌 프리미어 모듈러 파트너(Global Premier Modular Partner)를 지향하고 있다. △고층·대형 차별화 기술 △사업모델·상품 다양화 △사업관리 고도화 △안정적 생산 능력(CAPA) 등이 목표다. 더 나아가 현대자동차그룹사로서 완성차·부품사(공장자동화)-철강(강재)-기타(운송·로보틱스)를 연결하는 ‘그룹 뉴 밸류 체인(New Value Chain)’도 구축할 계획이다.
현대엔지니어링의 모듈러 건축 연구·개발(R&D) 방향은 △고층화+대형화 △주거 성능 확보 △제작·시공의 생산성이다.
김 팀장은 “기존 아파트와 동일한 중·대형 평면 개발을 위해 모듈러주택의 프로토 타입까지 개발하고 있다”면서 “유닛 제작 용이성과 시공 단순화로 생산성을 향상하고, 경량 바닥시스템 개발로 양중(장비 등으로 중량물을 들어 올리는 작업) 비용도 절감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모듈러건축 기술 개발을 위해 현대제철과 손잡았다. 현대제철 연구소 내에 올해 말까지 ‘모듈러건축 테스트베드’를 건립할 예정이다. 김 팀장은 “3시간 내화 기술에 대한 시공성과 경제성 향상이 필요하다”면서 “현대제철과 내진·내화 형강 활용 모듈러 공법 개발을 위한 공동 연구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공동 연구의 목표는 모듈러 제작 시간 단축과 자재 절감이다. 또 현대엔지니어링은 현대제철과 공동 특허 출원한 기술 실증으로 모듈을 제작하고, 표준화 및 규격화로 생산성도 높이고 있다. 김 팀장은 “모듈러 건축은 공장에서 제작하다보니 정밀도 확보가 중요하다”면서 “현장에서 한 번에 설치되는 원타임 세팅이 되도록 설계 단계부터 철저한 품질관리 프로세스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영구적 성능·이동 설치 장점 모아
모듈러 교실 시장 점유율 1위
플랜엠
플랜엠은 설립 4년 만에 모듈러 부문 대표주자로 떠올랐다. 모듈러 교실 시장점유율 1위(2023년 기준) 달성 등 지금까지 전국 학교에 7000여 개의 모듈러를 납품했다. 플랜엠은 기술성 및 혁신적 경영 성과를 인정받아 교육부와 국토교통부 장관 표창도 받았다.
송경섭 플랜엠 부사장은 ‘모듈러주택 활성화 정책 포럼’에서 모듈러 DfMA(Design for Manufacture and Assembly) 적용 및 해외 진출 사례를 소개했다. 모듈러는 PMC(영구 모듈러)와 RB(이동식 모듈러)로 구분할 수 있다. 시장에서 RB 비중이 커서 ‘모듈러=컨테이너’로 생각해 꺼리는 경우도 생긴다. 송 부사장은 “PMC와 RB의 장점을 모아 영구적인 성능을 보유하면서도 이동 설치가 가능한 모듈러를 개발했다”면서 “조립 이후에도 해체해 재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플랜엠은 설계 단계부터 후속 공정인 제작과 조립 정보를 포함하는 DfMA 공법을 도입했다. 송 부사장은 “제작한 모듈러를 현장에서 설치할 수 없어 인력이나 비용 낭비가 발생해서는 안 된다”면서 “설계 과정에서 볼트 구멍 하나까지 계산해 공사 기간 단축은 물론 비용 절감 효과까지 추구한다”고 말했다.
플랜엠은 청주 내곡초등학교 증축 공사에 DfMA 모듈러 공법을 적용했다. 볼륨 메트릭 모듈과 외장 파사드 패널라이징 설계로 미래적 디자인의 학교가 탄생했다. 우수한 품질과 디자인을 인정받아 2023년 ‘미국 아키타이저 디자인 어워즈’와 ‘대한민국토목건축기술대상’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플랜엠은 지난해부터 세계적 기술 수준인 K모듈러의 해외 진출을 추진 중이다. 영국법인을 설립하고, 유럽 학교와 주거 시장 진입에 힘쓰고 있다. 호주에서는 광산 근로자를 위한 모듈러 숙소 공급 협약을 맺기도 했다. 짧은 업력에도 비약적으로 성장한 플랜엠은 포브스 코리아가 발표한 ‘2024년 대한민국 고속 성장 스타트업 50′ 건설 부문에 단독 선정됐다. 플랜엠은 올해 새로운 사업 영역에도 도전한다. 주거용 모듈러 개발로 아파트·기숙사·군 간부 숙소·레지던스 호텔 등의 시장 진입을 앞두고 있다. 지난 5월 공업화 주택인정서를 획득하며 법적 기반도 완전히 갖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