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속초시 영랑동에 자리한 영랑호에선 잔잔한 호수의 모습과 설악산의 장쾌한 모습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8km 수변을 따라 조성된 둘레길엔 봄이면 벚꽃, 여름이면 영산홍, 가을이면 억새꽃 등이 피어나 눈을 즐겁게 한다. 맑은 날이면 영랑호는 하나의 캔버스가 돼 하늘과 산을 담는다. /속초시 제공

깎아지른 듯한 설악의 모습이 호수에 비친다. 눈앞에 펼쳐지는 동해바다는 답답했던 가슴을 뻥 뚫리게 한다. 속초 영랑호에선 속초가 지닌 매력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자연이 준 최고의 선물을 모두 품고 있기 때문이다. 설악산 자락과 울산바위를 병풍처럼 두른 영랑호는 우리나라 대표 석호(潟湖)다. 강 하구로 들어오는 바닷물이 육지를 깎아 내고 그때 생긴 모래 퇴적물이 입구를 가로막으면서 호수가 됐다. 이곳은 바다와 민물이 섞여 생물 다양성의 보고(寶庫) 이기도 하다. 영랑호는 장사동과 금호동, 영랑동 일대에 걸쳐 있다. 호수 둘레만 8km. 넓이는 약 36만평(118만8000㎡)에 달한다.

영랑호란 이름은 신라시대 화랑 영랑이 이 호수를 발견했다고 해 붙여졌다. 신라시대 화랑인 영랑, 술랑, 안상, 남랑 등은 금강산에서 수련하고 무술대회장인 서라벌(지금의 경주)로 돌아가던 중 이곳을 찾았는데, 호수의 비경에 매료된 영랑은 서라벌로 돌아가는 것도 잊은 채 이곳에 머물면서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이 호수를 영랑호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기록은 삼국유사에 남아있다. 영랑호의 아름다움은 조선 시대 가사 문학의 대가 송강 정철이 지은 관동별곡에도 담겨 있다.

영랑호는 사방에서 보는 모습이 모두 다른 팔색조 호수다. 이 때문에 영랑호를 호젓하게 즐기고 싶다면 걷는 것을 추천한다. 영랑호를 따라 조성된 8km가량의 영랑호 둘레길을 걷다 보면 왜 영랑호를 속초의 숨겨진 보석이라 부른지 알 수 있다.

영랑호 둘레길.

물가를 끼고 이어지는 둘레길엔 봄이면 벚꽃, 여름이면 영산홍, 가을이면 억새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등 계절에 따라 옷을 갈아입는다. 나무 그늘이 이어지고 곳곳에 쉼터가 있어 여유와 낭만을 즐기기 더없이 좋다. 철새 떼의 화려한 군무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걷는 게 힘들다면 자전거를 타고 호수를 둘러볼 수 있다. 어린 아이도 호수 한 바퀴를 쉽게 돌 수 있을 만큼 자전거 도로가 잘 정비돼 있다. 천천히 페달을 밟으며 설악산의 장쾌한 전경과 잔잔한 영랑호의 비경을 마주할 수 있다.

영랑호 자전거길.

자전거를 가져오지 않아도 된다. 영랑호의 자전거 대리점에서 빌리면 된다. 8인승·4인승·2인승 자전거부터 전기 자전거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전문 해설가가 끄는 삼륜 전기 자전거를 타고 영랑호와 속초에 얽힌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영랑호에 깃든 재미난 이야기와 전설은 여행의 재미를 더한다. 영랑호엔 호랑이 형상을 닮은 범바위가 있다. 속초 8경 중 하나인 이 바위는 호랑이가 아름다운 마을 처녀에 반해 사람이 되고자 웅크리고 있다가 그대로 바위가 됐다는 전설을 갖고 있다. 범바위 위에 오르면 영랑호는 물론 설악산과 동해 바다를 한눈에 내다볼 수 있다.

영랑호엔 용의 전설도 숨겨져 있다. 속초엔 영랑호와 함께 청초호란 석호가 있다. 먼 옛날 청초호엔 청룡이, 영랑호엔 황룡이 살고 있었는데 이 둘은 달빛 밝은 어느 날 하늘길이 열려 함께 승천하려 했다. 하지만 이무기가 여의주를 훔치는 바람에 청룡만 승천하게 됐고, 이에 노한 황룡은 속초에 재앙을 불러왔다. 흉년이 계속되자 주민들은 황룡에게 제를 지냈고, 그제야 재앙은 사라지고 풍년이 이어졌다고 한다. 영랑호 둘레길에선 이 전설을 담은 조각상도 볼 수 있다.

다음 달엔 영랑호 둘레길에 이색 황톳길도 조성된다. 황톳길은 420m 구간을 습식 황토로 포장해 왕복 840m의 순환형 산책길로 꾸며진다. 황토 족탕과 황토 볼 지압원 등 다양한 체험시설은 물론 세족장, 쉼터 등도 들어선다.

속초시는 황톳길 조성 사업을 시작으로 맨발걷기 길을 점차적으로 확대해 영랑호 일대를 맨발걷기의 성지로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영랑호엔 둘레길 뿐 아니라 습지생태공원과 속초 보광사, 보광미니골프장 등 볼거리와 즐길거리도 다양하다.

지난 2015년 6월 문을 연 영랑호 습지생태공원에선 생태 관찰로를 따라 철마다 피어나는 야생화와 수생 식물을 볼 수 있다. 가을이 무르익으면 영랑호 습지생태공원은 억새의 은빛 물결로 장관을 이룬다. 특히 노을이 지는 저녁엔 금빛 물결로 바뀌어 신비감을 더한다.

영랑호 둘레길에서 바라본 일몰.

고즈넉한 분위기의 속초 보광사도 빼놓을 수 없다. 보광사는 1937년 세워진 사찰이다. 부처님의 제자 53불 중 수제자인 보광불존을 금강산 유점사에 모셨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보광사는 영랑호에서도 가장 경관이 아름다운 곳에 자리해 일년 내내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보광미니골프장에선 아날로그의 감성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1963년 문을 연 보광미니골프장은 국내 유일의 미니 골프 게임장이다. 미니 골프지만 대형 골프장에 나가 라운딩을 즐기는 일반적인 골프와는 엄연히 다르다. 코스는 소나무 사이에 조성돼 있고, 홀마다 득점 방식도 다르다. 레일 위에서 공을 굴리며 가장 많이 득점한 사람이 승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