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팩트 투자에 관심이 있으신가요?” 중동 투자업계에서 이런 질문을 던지면 대부분 “노(No)!”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임팩트 투자는 환경이나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펀드나 기업에 돈을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중동 오일머니는 정말 돈 버는 일에만 집착하는 걸까.
중동 벤처캐피털(VC) ‘쇼룩파트너스’의 신유근 대표의 설명은 다르다. 신 대표는 “투자 포트폴리오를 보면 누가 봐도 임팩트 투자인데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건 굳이 언급하지 않을 정도로 당연하다는 소리”라며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돈을 벌기 위해 무엇이든 하는 건 좋지 않다’는 원칙이 있는데, 반대로 이야기하면 ‘좋은 방법으로도 충분히 돈을 벌 수 있다’는 이야기”라고 했다. 이어 “말만 다르게 할 뿐 임팩트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쇼룩파트너스는 중동 국부펀드인 무바달라를 포함한 10개의 국부펀드가 자금을 댄 중동 최대 규모의 VC다. 지금까지 11국 70곳의 스타트업에 투자했고, 이들 기업의 자산 가치는 35억달러(약 4조8000억원)로 추정된다. 지난 12일 서울에서 만난 신유근 대표는 “한국에는 기술 기반으로 더 나은 방향으로 세상을 만드는 스타트업이 많다고 생각한다”며 “펀드는 이미 준비됐다”고 말했다.
◇”한국의 A+ 인재, 중동 진출길 열겠다”
신 대표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 와튼스쿨에서 금융학을 전공했다. 미국 투자은행 라자드에서 커리어를 시작해 샌프란시스코 사모펀드를 거쳐 아부다비 국부펀드 무바달라 산하의 글로벌파운드리스에서 반도체 산업에 투자하는 일을 담당했다. 투자사를 만든 건 2016년이다. 그는 공동창업자 마무드 아디와 함께 아랍에미레이트(UAE) 아부다비에 쇼룩파트너스를 설립해 중동·북아프리카·파키스탄(MENAP) 지역의 스타트업을 발굴해 초기 단계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미국에서 왜 중동으로 갔나요?
“신흥 시장에 진출하고 싶었어요. 후보군은 4개였어요. 중국, 인도, 동남아, 중동·아프리카. 중국은 정세에 따른 리스크가 크고, 인도는 인재 경쟁이 치열해요. 동남아는 자금이 부족하고요. 무엇보다 세 지역은 좋은 인재가 많은 데다 열심히 살아요. 그렇게 눈에 들어온 게 중동입니다. UAE는 돈은 많지만 인구는 1000만명도 안 되기 때문에 좋은 인재가 부족하고, 산업도 고루 발달하지 못했어요. 특히나 ‘헝그리 정신’이 부족한 점도 한몫했습니다.”
-헝그리 정신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뭐든 열심히 하잖아요(웃음). 그런데 중동에는 아직 온몸을 바쳐 열심히 사는 문화가 없어요. 어찌 보면 기회죠. 스타트업은 정말 힘들고 헝그리 정신도 필요해요. 쇼룩파트너스도 스타트업이라 잘 알죠. 겉모습은 화려하지만 매일매일 죽도록 하고 있죠. 근성을 갖고 최선을 다하면 성과는 따라온다는 의미입니다.”
-오일머니는 규모부터 다르지요?
“초기 단계의 시드 투자를 주력으로 하는데, 보통 30억원에서 많게는 50억원 수준이에요. 한국이 5억원에서 10억원 규모인 것에 비하면 투자 단위가 큰 편입니다. 시리즈A 단계로 올라가면 50억~300억원까지 커져요. 창업자는 큰돈으로 회사를 키울 기회지만, 투자자 입장에서는 기업가치를 너무 높게 평가한 건 아닌가 하는 고민이 있을 수 있죠. 양날의 검입니다.”
-왜 한국인가요?
“한국에는 ‘A+’ 인재가 넘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인지 기술 보유 회사들이 많아요. 전 세계 어디와 비교해도 좋습니다. 저희는 콘텐츠, 기후 기술, 블록체인, 바이오테크 등 크게 네 분야에 주목하고 있는데요. 한국의 기술력 있는 회사는 다 만나고 싶습니다.”
-투자 시장에서 한국과 중동의 차이는 뭔가요?
“한국에는 600개가 넘는 VC와 AC가 있습니다. 한국의 시장 규모가 크다곤 하지만 너무 많아요. 중동은 한 나라에 10~15개 수준입니다. 창업자도 많고, 투자자도 많으니까 한 사람을 오래 두고 보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중동 국부펀드는 한 명의 창업자를 몇 년간 지켜보거든요.”
-장단점이 있을 텐데요.
“한국은 공평성이라는 틀 안에 프로세스가 굉장히 중요한 느낌입니다. 서류는 언제 마감, 성과 보고서는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요. 그렇다 보니 준비된 사람들이 많아요. 창업자도 투자자도.”
◇창업자도 투자자도 ‘도덕적 가치’ 지켜야
-처음 투자한 기업은 어디인가요?
“스마트팜에서 토마토를 생산하는 ‘퓨어하베스트’라는 기업입니다. 소규모 컨테이너가 아니라 3000평 넘는 규모의 대농장을 운영하고 있어요. 한국에서는 마련하기 어려운 면적이죠. 이곳에서 토마토 17종을 월 800t 생산해요. 최근에는 딸기 재배도 시작했어요. 중동의 열악한 사막기후에도 신선한 농산물을 값싸게 공급하면서 푸드 마일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UAE는 중동 내에서도 토마토 소비가 많은 나라에 속한다. 자국 소비량의 약 80%를 유럽에서 수입하고 있다.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한 항공편으로 운송하는데, 과도한 탄소 발생은 물론 가격도 높다. 이 때문에 극한 기후를 이겨내는 스마트팜이 인기다.
-얼마나 투자했나요?
“프리시드로 2017년에 70억원 규모의 투자를 리드했어요. 물론 전액을 넣진 않았지만 리드 역할을 했습니다. 이후 시드 투자를 했고요. 지금은 5000억원 이상 투자 받은 UAE 대표 스타트업이 됐습니다.”
-특별한 투자 기준이 있습니까?
“창업자가 돈 버는 데 무게를 두고 있으면 투자를 안 합니다. 특정 분야가 뜬다고 해서 발을 담그는 사람 중에 잘 되는 케이스도 분명 있지만 저희는 그런 회사에 집중하지 않아요. 회사가 조금 크고 나면 창업자가 엑시트하는 ‘좀비 스타트업’이 될 우려가 커요. 그래서 미션에 주목합니다. 기업의 존재 의미나 방향성을 보고 판단하는 거죠.”
-거짓말할 수도 있는데, 어떻게 가려냅니까?
“초기 단계 투자는 지표들이 많이 없어요. 그래서 아이디어와 미션만으로 판단해야 할 때가 있는데, 정말 이 문제에 대해서 고민을 깊이 한 창업자는 비즈니스의 엔딩까지 그림을 그릴 수 있어요. 한 번 거짓말해도 열 번은 못 합니다. 만나서 계속 이야기를 해보면 압니다. 설령 실전에서 다 틀리더라도 지금 설명할 수 있어야 해요.”
-왜요?
“그림이 있어야 수정이 되니까요. 매끄럽게 설명이 되려면 비즈니스 모델부터 시장 규모, 규제, 법률까지 여러 요소를 고려해야 합니다. 그래야 투자자를 설득하고, 팀원들을 이끌고 갈 수 있죠. 고객들도 납득시켜야 하니까요.”
-창업자만 봅니까?
“개인적인 견해인데 창업자가 가장 중요해요. 대표가 5000억원 이상의 회사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인가를 봅니다. 스타트업을 중소기업 수준으로 스케일업할 수 있는 ‘프레센스(presence·존재감)’, 다른 말로 카리스마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투자자인 제가 이 사람을 위해 일할 수 있는지를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면 신뢰 관계가 형성돼요.”
-임팩트 투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임팩트의 기준점이 비즈니스 모델에 있지만, 투자자나 창업자의 도덕적 가치가 더 중요해요. 비즈니스를 악용하는 건 누구도 막기 어렵기 때문이죠. 요즘 대부분의 비즈니스가 임팩트를 냅니다. 임팩트라는 단어 때문에 오히려 임팩트가 아닌게 생겨버린 건 아닐까요. 수익률이 낮아 보이는 나쁜 선입견만 생겼어요.”
-목표가 있습니까.
“중소기업이 작다고 스타트업이 되는 건 아닙니다. 스타트업은 성장 가능성이 큰 향후 중소기업으로 올라설 기업이죠.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바꿀 스타트업을 발굴하기 위해 다양한 투자 전략을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저는 이 일을 40년 하고 싶다고 말하고 다녀요. 이제 7년 했습니다. 앞으로 할 일이 더 많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