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매년 줄어드는 추세다. 지난 2000년 93.6㎏에서 2023년 56.4㎏으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쌀 생산량도 529만t에서 370만t으로 줄었다. 소비량 감소 폭이 생산량 감소 폭보다 더욱 가파르게 진행되면서 쌀 공급과잉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 때문에 밥쌀용 쌀을 가공용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정부는 2022년 6월 ‘가루쌀을 활용한 쌀 가공산업 활성화 대책’을 수립하고 이를 혁신 과제로 추진해왔다. 정부는 쌀 재배 기반을 보전하면서 식량안보도 공고히 할 수 있는 대안이 가루쌀이라고 판단했다. 조재호 농촌진흥청장은 18일 “가루쌀 ‘바로미2’를 활용해 기존 쌀 가공산업의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며 “가루쌀로 수입 밀가루를 대체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등 정부 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세계 최초 가루쌀 품종 ‘바로미2’
가루쌀은 보통의 벼와 재배 방식은 유사하지만, 곡물의 성질은 밀과 비슷해 물에 불리지 않고도 바로 밀가루처럼 빻아 쓸 수 있다. 가루쌀은 단단한 정도가 일반 쌀의 3분의 1 수준이어서 제분 비용도 덜 들고, 가공 시간도 절약된다. 밀을 가공하던 기계로 쉽게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다. 수입 밀의 낮은 가격에 대응해 가루쌀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규모화를 통한 생산비용 절감이 중요한데, 이러한 부분도 가능해진 것이다.
올해는 정부가 가루쌀에 대한 전략작물직불금 지원을 시작한 지 2년째 되는 해이다. ‘가루쌀 산업 활성화 정책’이 추진되면서 재배 면적이 2022년 100㏊에서 2023년 2000㏊로 늘었다. 올해엔 1만㏊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재배되고 있는 가루쌀 품종 ‘바로미2’는 가루 성질 유전자를 발현시켜 탄생한 품종이다. 이를 위해 농촌진흥청은 지난 20여년간 7000여개의 가루 성질 유전자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가루쌀 소재는 일본, 중국 등에서 보고된 바 있으나 재배 품종으로 실용화한 것은 농촌진흥청이 세계 최초다.
바로미2는 벼에서 주로 발생하는 도열병, 흰잎마름병, 줄무늬잎마름병에 대한 복합 저항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수발아(종자가 이삭에 붙은 채로 싹이 나는 현상)에 민감하다. 일반 쌀보다 지방이 2∼3배 많으며 수량도 90% 수준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바로미2는 일반벼와 다른 재배 관리법이 필요하다.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모내기를 한 달 정도 늦게 하는 방법으로 수발아 발생을 다소 낮출 수 있다”며 “모내기 때 일반벼보다 많이 심으면 수량을 높일 수 있다”고 했다.
◇새로운 가루쌀 품종 개발
농촌진흥청은 새로운 가루쌀 품종도 개발하고 있다. 내수발아 유전자와 지방 산패를 막는 유전자를 도입해 수발아율을 10% 이하로 낮추는 게 목표다. 재배 안정성과 저장성이 개선된 품종을 연구하고 있으며, 올해 현장 적응성 검토를 거쳐 내년 초 수발아율이 20% 정도인 신품종을 출원할 예정이다.
농촌진흥청은 쌀 수급 안정과 쌀 가공산업 활성화를 위해 가루쌀의 안정적인 생산 기술을 지원한다. 바로미2 품종의 안정적 생산을 위한 재배기술을 개발해 전용 재배 안내서를 제작했다. 시·군 담당자와 생산단지를 중심으로 교육도 진행할 계획이다. 가루쌀 생산단지가 2023년 38개소에서 올해는 140개소로 크게 확대되기 때문에 재배 경험이 없는 농가와 생산단지를 대상으로 교육과 관리를 강화하는 것이다.
농촌진흥청은 기상환경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수발아 발생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기상환경에 따른 ‘수발아 예측 프로그램’을 개발해 올해 하반기부터 기상재해 조기경보시스템에 탑재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수발아 경감을 위한 약제 효과를 분석 중이며, 효과가 확인되면 농약 안전성 시험을 통해 수발아 경감 약제로 등록할 계획이다.
조재호 농촌진흥청장은 “앞으로도 정부에서 추진하는 가루쌀 산업 활성화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연구기반과 기술지원을 강화해나갈 것이다”며 “가루쌀이 쌀 공급과잉 문제를 해소하고 쌀 가공산업을 주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품종 개발, 재배 기술 개발에도 매진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