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국민 과일’ 중 하나로 꼽히던 사과의 생산량이 줄어든 걸 계기로, 그동안 일상 속에서 크게 느끼지 못했던 기후 변화의 영향을 체감하는 일반 소비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사과는 우리나라 전체 과수 재배 농가의 16.8%를 차지할 뿐 아니라 재배면적도 3만 헥타르(ha) 이상에 달하는 대표적 국민 과일이다. 그러나 최신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반영한 과일 재배지 변동 지도를 보면 지금 같은 기후변화가 계속되면, 대한민국에서 사과를 재배할 수 있는 지역은 빠르게 줄어들어 2070년대에는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만 사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사과도 기후 변화에 영향
사과는 햇빛을 통해 영양분을 만들고 번식한다. 우리나라 같은 온대 기후에서 잘 자란다고 알려졌지만, 꽃 피는 시기에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지면 쉽게 저온 피해를 받는다. 또, 열매가 크는 시기 낮 기온이 20~25도를 벗어나면 잘 여물지 못하거나 햇빛 화상(데임 피해)을 보기도 한다. 햇볕을 고루 받지 못하면 색이 빨갛게 들지 않아 상품성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고,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 작물이다.
농촌진흥청은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기후에 대응하기 위해 수년 전부터 급격한 기온 변화와 병해충에 대응할 수 있는 품종 개발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사과의 경우, 새로운 품종을 지속해서 선보여 생산량이 줄 것으로 예상하는 2050년 이후에도 국내에서 재배에 문제가 없도록 준비하고 있다. 미래 기후와 재배 최적지를 면밀하게 분석해 각 지역의 기후 환경과 농업 여건에 맞춘 품종을 개발해 보급하고 있다.
초록색 사과 ‘썸머킹’ ‘썸머프린스’와 노란색 사과 ‘골든볼’은 고온에서도 단맛이 유지되고, 빨간색을 기다릴 필요 없이 일찍 수확할 수 있는 품종이다. 사과 껍질에 붉은색이 잘 들게 하려면 빛을 고루 받도록 열매를 이리저리 돌려주거나, 잎을 따줘야 하고, 나무 밑에 반사필름을 까는 등 많은 노동력이 든다. 하지만 초록 사과, 노란 사과는 노동력 투입을 아낄 수 있다.
백설공주가 먹었을 법한 사과를 닮은 ‘컬러플’은 이름처럼 껍질이 붉고 표면이 매끈하면서 예쁜 모양을 지니고 있다. 탄저병, 겹무늬썩음병, 갈색무늬병에도 강하다. 추석 사과로 자리 매김하고 있는 ‘아리수’ 역시 붉은색이 잘 들어 기후변화 대응 품종으로 주목받고 있다.
◇전국에 ‘사과 전문 생산단지’ 조성
농촌진흥청은 품종 개발과 더불어 우수한 품종들이 재배 적지에 안착해 해당 지역의 고품질 사과로 커 나갈 수 있도록 전문 생산단지 조성도 추진하고 있다. 경북 김천시에는 노란색에 노동력이 적게 드는 ‘황옥’, 전북 장수군에는 추석 사과로 유명한 ‘홍로’ 생산단지가, 또 경북 문경시에는 맛있는 사과로 소문을 타고 전국적인 인지도가 형성된 ‘감홍’ 생산단지가 조성돼 있다. 지난해 대구 군위에는 ‘골든볼’, 강원도 홍천에는 ‘컬러플’을 보급했고, 올해는 안동 지역에 ‘감로’ 생산단지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지역 기후에 맞는 품종을 골라 품종이 지닌 고유 특성이 잘 나타나도록 관리함으로써 균일하고 상품성이 뛰어난 사과 생산에 힘을 쏟을 것”이라며 “저온 피해 우려를 덜 수 있도록 꽃이 늦게 피는 품종, 꽃이 피었을 때 추위에 강한 품종, 고온에서도 당도가 높아지는 품종 등 새로운 품종 개발로 사과 생산에 문제가 없도록 준비 중”이라고 했다.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김명수 원장은 “기후변화라는 큰 위기가 사과 산업 앞에 닥쳐 있지만, 연구자들이 준비한 품종으로 50여 년 뒤 다음 세대들이 이 땅에서 자란 사과를 먹을 수 있도록 하겠다”라며 “새로운 사과 품종이 자리매김해 시장 안정화, 생산 안정화에 부응할 수 있도록 촘촘한 보급 체계를 만들고 우수 품종 보급에도 힘을 쏟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