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위치 패널 등 화재에 취약한 건축자재의 안전성 강화를 위해 마련된 ‘건축자재 등 품질인정 및 관리기준’(품질인정제)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품질인정제는 전문기관을 통해 건축자재가 화재 안전 기준에 맞게 생산했는지를 인정받고, 생산부터 시공까지의 과정에서 성능과 품질을 관리하는 제도다. 그러나 스티로폼(EPS) 같은 유기계 단열재와 그라스울(glass wool) 같은 무기계 단열재와의 시험방식·판정기준이 다르고, 정부 인정기관의 심사 과정이 지나치게 오래 걸리는 것 등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EPS패널 생산업체를 중심으로 “강화된 품질인정제는 그라스울을 생산하는 대기업에만 특혜를 주고, 중소기업이 대다수인 유기계 단열재 업계를 고사(枯死)시키는 규제”라는 반발이 커지고 있다.
◇화재 안전성 기준 강화… 단열재 심재도 불에 잘 안 타야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2021년에만 건축·구조물에서 2만3997건의 화재가 발생했다. 사상자가 1829명(사망 240명, 부상 1589명)이고, 재산피해는 1조여 원에 달한다. 해마다 화재 피해가 커지는 상황에서 정부가 건축자재의 안전성을 강화한 품질인정제를 도입한 것은 당연한 조치다.
외벽 마감재의 경우 바깥면에 대해서만 요구하던 준불연(準不燃) 성능을 심재(패널 안에 심어 넣는 재료)까지 준불연 이상의 성능을 확보하도록 개정된 건축법이 2022년 12월 23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에 따라 샌드위치 패널과 복합 외벽 마감재료는 ‘실대형 성능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기존에는 일부 샘플 시험을 통해 난연(難燃) 성능을 평가했는데 정부가 화재 안전성을 엄격히 통제하기 위해 성능 시험을 대폭 보완한 것이다.
국토교통부는 새 관리기준을 시행하면서 1년간의 유예와 기존 제품에 대해 시험 성적서의 유효기간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경과 규정을 두었다. 건축자재 시장의 혼란 최소화와 제도 안착 및 건축자재 수급 안정 등을 고려한 사항이라며 표준모델 방안도 제시했다. 업계가 희망하는 경우 관련 협회 및 단체를 통해 표준화된 제품 사양을 제출하면 품질 인정기관인 한국건설기술연구원(KICT)이 성능 평가를 통해 이를 표준 모델로 고시한다는 것이다. 어떤 업체든 표준모델에 맞게 제작된 제품에 대해서는 별도의 실물시험 등 성능평가 없이 생산·유통이 가능하며, 표준모델과 다르게 제작하는 경우에만 화재 안전기준에 맞게 성능평가 등을 받아야 한다.
◇”그라스울 생산하는 대기업만 밀어주나” 중소업계 반발
단열재는 패널에 들어가는 심재에 따라 크게 그라스울이나 미네랄울 같은 무기계 단열재와 스티로폼·우레탄폼이 들어가는 유기계 단열재로 구분된다. 글로벌 단열재 시장은 약 50조원(무기계 52%, 유기계 48%) 규모다. 국내 시장 규모는 2조4000억원 정도인데, 유기계가 82%를 차지한다. 국내에서 무기계 단열재는 대부분이 그라스울인데 KCC와 벽산 두 업체가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그라스울 같은 유리섬유는 불에 잘 타지 않는 것이 최대 장점이지만, 습기를 머금어 구조가 변형되거나 단열성이 떨어지는 단점도 있다. 그라스울은 건설 폐기물로 구분돼 사용 기간이 끝나면 매립 처리해야 하는데 비산 먼지를 우려해 밀봉 처리해야 한다. 반면, 유기계 패널은 연소할 때 유해가스가 없고, 처리 비용이나 시공비가 저렴한 데다가 단열성도 뛰어나다.
무기계-유기계 단열재가 각각 장점이 있지만, 정부는 불연성을 강조하려는 취지로 그라스울 생산을 더욱 장려하는 모습이다. 그동안 샌드위치 패널의 난연 성능 시험은 ‘복합자재’(철판+단열재+철판)로 이뤄졌지만, 바뀐 규정에서는 양쪽 철판을 제거하고 단열재 자체로만 준불연 성능을 갖춰야 한다.
이를 두고 유기 단열재를 생산하는 중소업체 사이에선 “정부가 대기업만 밀어준다”라는 불만이 팽배하다. 업계 관계자는 “건설현장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활용되는 EPS와 우레탄은 심재 자체로는 준불연 성능을 갖추기 어렵다”며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대기업이 만드는 그라스울에 밀려 스티로폼 단열재 업계는 줄도산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복합 자재에 대한 인정 심사 속도 내달라”
현재 그라스울·미네랄울 같은 무기계 심재는 실물모형 화재 시험이 면제된다. 이런 제도의 불균형 때문에 품질 인정을 받은 단열재 제품 19개 중 불연제 그라스울이 17개이며 실물모형 화재시험(KS F ISO 13784-1, KS F 8414)을 통과한 그라스올 1개 업체와 유기질 EPS 패널 1개 업체가 유일하다.
그라스울 생산 대기업이 빠르게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리는 상황에서 중소기업 위주인 EPS 단열재 생산업체는 정부 인증을 받는 데 어려움을 겪는 탓에 심각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유기계 심재로 샌드위치 패널을 생산하는 업체들은 인증 심사 기간이 지나치게 오래 걸리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복합 자재 인증심사 통과의 경우 인증 취득에 6개월 이상 걸리고 있다. 인증 현재 10여개 이상의 EPS 패널 업체가 심사를 신청한 상태인데,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생산은 물론 판로가 막히는 탓에 자금력이 약한 중소기업들이 폐업으로 내몰리는 상황이다. 한 전문가는 “까다로운 정부 기준을 통과한 EPS 패널 제품과 같은 심재를 사용하는 업체를 대상으로 심사 속도를 높여야 한다”며 “관련 업계에서 대규모 실업을 방지하는 것은 물론 대기업-중소기업 간 상생협력 확대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