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투자자 패트릭 맥기니스는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 다니던 2004년 ‘포모’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교내 신문에 기고했다. 포모는 ‘세상 사람들이 나만 빼고 흥미로운 경험을 하거나, 희귀템을 소유한다고 느낄 때 따라오는 상실·불안·압박·소외감’을 일컫는 단어다. 이 개념은 최근 소셜미디어 확산과 함께 큰 주목을 받고 있다. 1000만원 들고 백화점 앞에서 긴 줄을 서며 잠자는 ‘샤넬 노숙자’, 연차 휴가 내고 아침부터 점심 갈빗집 줄 서는 식도락가, 나이키 조던 골프화 때문에 영하 10도에 풍찬노숙(風餐露宿)하는 운동화 수집광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줄서기’를 연구 중인 조선일보 라인업 팀이 이번엔 뮤지션 박재범이 만들어 화제가 된 전통소주, ‘원소주’ 판매 현장을 이달 중순 찾았다.
지난 16일 오전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의 편의점 콘셉트의 패션·리빙숍. MZ세대에게 인기 있는 비건 스낵, 캠핑 용품, 스웨트 셔츠 등을 진열해놓은 아기자기한 점포 앞에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이날 오후 5시부터 뮤지션 박재범이 만든 전통 소주인 ‘원소주’의 2차 판매 행사가 열릴 예정이었다.
앞서 원소주는 지난 2월 25일부터 일주일간 벌인 1차 팝업(임시) 판매에서 소주 2만병을 팔아치우며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서울 노원구에 사는 편집숍 직원 마형욱(22)씨는 지난 15일 밤 9시30분쯤 가로수길에 도착, ‘대기번호 1번’을 차지했다. 박재범의 오랜 팬인 그는 “소주는 원래 맛이 없어서 거의 못 마시는데, 원소주는 꼭 마시고 싶었다”고 했다. 한 남자 대학생은 “소주 한 병에 1만4900원(375mL)이란 가격이 비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3만~4만원대였어도 흔쾌히 샀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재범은 사실 오랜 기간 소주 사업을 준비했다. 해외 뮤지션과 교류하다 한국 전통 술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외식 사업가 백종원씨와 넷플릭스 소주 다큐멘터리도 찍었다. 2018년에 영어 노래 ‘SOJU (Feat. 2 Chainz)’를 공개했고, 이번에 원소주까지 내놨다. 원소주는 22도 감압식 증류 방식으로 만든다. 주요 소비 타깃층은 30대 직장인. 원소주의 팬들은 ‘일과를 마치고 오늘의 작은 성공을 축하하며 미지근하게…’라며 마시는 법까지 공유한다.
원소주 오픈런 현장은 요즘 떠오르는 비즈니스 전략인 ‘팬덤 경제’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박재범은 소주 사업가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오랜 기간 다양한 콘텐츠(음원·다큐·소셜미디어·방송 등)로 한국 소주의 가치와 경험을 공유하고, 팬들과 관계를 맺었다. 요즘 테슬라·애플·스타벅스의 마케팅 성공 사례를 논할 때 따라붙는 용어도 바로 ‘패노크라시(Fanocracy·팬덤이 통치하는 문화)’다. 언제든 다른 선택지를 찾아 떠나갈 다수 대신, 소수의 강력한 열성팬을 확보하는 것이 그 출발선이다.
그러나 팬이 많은 스타를 앞세운다고 팬덤 비즈니스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하림이 지난해 출시한 ‘이정재 장인라면’은 기업이 거액의 모델료를 지급하며 스타 연예인을 앞세웠다. 하지만 팬덤 효과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 스토리와 맥락이 없는 연예인 마케팅은 좀 더 깊은 교감을 원하는 소비자들을 납득시키지 못한다. ‘The 미식 장인라면’이 흥행에 실패하면서 하림그룹에선 최고위 임원이 물러나는 일까지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