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구에서 도입한 예측범죄지도 시스템은 범죄발생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붉은색 등으로 나타낸다. /서초구

야근후 어두운 골목길을 걸어가는데 앞에 한 여성이 가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경찰이 불쑥 나타나 날더러 ‘범죄 용의자’라며 신문을 하려든다. 손짓, 발짓, 표정이 영락없는 범죄자라나? 웬 날벼락인가 싶겠지만 서초구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

2002년 톰 크루즈가 주연한 영화 이야기가 서초구에서는 이제 현실이 된다. 서초구는 범죄 발생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빅데이터로 예측해 집중 감시하는 ‘예측범죄지도 시스템’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공동 개발해 운영한다고 밝혔다. 최근 3년간 지역 내 3만2656건의 CCTV 사건·사고 빅데이터를 분석해 우범 지역을 찾아내고 붉게 ‘고(高) 범죄 위험지역’으로 표시하는 것이다. 이어 해당 지역은 CCTV 통합관제센터인 서초스마트허브센터 관제사가 CCTV를 집중 감시하면서 AI(인공지능)가 과거 범죄와 유사한 상황을 실시간으로 찾아내 몇 분 또는 몇 시간 후 우범률(%)을 예측하는 ‘범죄 가능성 예측기술’을 적용할 예정이다. 가령 새벽시간대 골목길에서 모자를 쓴 남성이 젊은 여성을 따라가는 모습이 CCTV에 잡힌다면 위험도를 높게 책정해 알람을 울리고 경찰이 출동하게 하는 식이다. 영화 그대로인 셈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 따르면 현재 개발 중인 ‘지능형 CCTV 영상분석기술’ 등을 활용 시 복장과 움직임, 소리까지 분석해 ‘범죄 가능성’을 파악할 수 있다. 구두 발자국 소리만 듣고도 말이다.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2017년 미국 시카고나 일본 가나와현이 유사한 범죄 예측시스템을 도입했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아무리 기술적으로 우범자를 걸러낼 수 있다지만 범죄를 저지를 것으로 의심된다는 것만으로 사람을 검거하려 든다면, 이건 좀 아니지 않은가? 극단적으로 말해서 범죄를 상상만 해도 검거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면 사생활 침해는 물론이고, 양심의 자유, 무죄추정의 원칙과 같은 근대적인 형법체계까지 모두 망가진다. 마치 ‘빅브라더’가 시민들의 행동 정보를 수집해서 관리, 감시, 통제한다니, 끔찍하지 않은가? 언제 시민들이 서초구에 그런 권한을 줬던가? 그래도 서초구는 “아직 실현된 기술이 아니며 예측범죄지도의 미래 활용 방안을 보여주기 위해 가상으로 설정한 것”이라면서도 올해 10월부터 시범적으로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길을 가던 누구라도 갑자기 ‘우범자’로 전락할 수 있는 곳, 바로 서초구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