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피리 불며/봄 언덕/고향 그리워/ㅍ ― 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꽃 청산/어린 때 그리워/피 ― 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인환의 거리/인간사 그리워/피 ― 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방랑의 기산하(幾山河)/눈물의 언덕을 지나/피 ― ㄹ 닐니리
시인 한하운(韓何雲, 1919~1975)은 방랑생활과 자신이 앓던 병(한센씨병, 나병)의 고통을 떨쳐버리려 보리잎을 따다 피리를 불 듯 시를 썼다. 1955년 발표된 ‘보리피리’는 낭만과 서정이 담긴 시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나병에 걸려 보통의 삶을 살지 못하게 된 시인이 어린시절과 고향을 그리워하는 내용이다.
보리는 추운 겨울을 지나 영그는 구황작물이었다. 겨우내 먹을 것이 떨어져 굶주리게 되는 때, 보리가 패기 전까지를 ‘보리고개’라고 불렀다. 지금은 보리의 거친 맛 덕분에 현대인의 건강식으로 자리잡았지만, 1960~1970년대에는 쌀이 모자라 쌀과 보리, 잡곡을 섞은 혼식을 정부가 장려할 정도였다. 그래서 지금 보리밥은 가난의 상징이자 그 힘든 어린 시절을 견딘 사람들의 소울 푸드이다. 작가 신경숙은 ‘어머니를 위하여’라는 글에서 보리밥을 먹으며 ‘어린시절을 먹는 것’이라고 했다.
그 보리중 청보리는 황보리와 달리 익어도 푸른 빛을 띈다. 청보리는 전북 고창, 경주, 청산도 등에서 많이 자라는데 국토 최남단에 해당하는 제주도 가파도에는 18만평에 이르는 청보리밭이 장관을 이룬다. 가장 먼저 봄소식을 전하는 전령으로서 3월 초부터 5월 초순까지 절정이다. 가파도 청보리는 품종이 ‘향맥’으로 타 지역보다 2배 이상 자라는 제주의 향토 품종이다. 크게 자라는 특성에다 바람이 많은 지역 환경 덕분에 바람이 불면 일렁이는 정도가 타 지역보다 더 크다.
가파도는 대정읍 모슬포항에서 뱃길로 20여분, 남쪽으로 5.5㎞ 해상에 있는 섬이다. 동쪽으로는 한라산을 비롯한 5개산(산방산, 송악산, 고근산, 군산, 단산 )이 보이고 서쪽으로는 국토 최남단 마라도가 보인다. 2009년부터 해마다 청보리축제를 열어왔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작년에 이어 올해 행사도 취소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