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독자권익보호위원회(위원장 김도연 태재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가 지난 14일 정례 회의를 열고 지난 한 달 조선일보 지면과 온라인 기사에 대해 토론했다. 김 위원장을 비롯해 김경희(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 김별아(소설가), 김재련(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 장부승(일본 관서외국어대 교수) 위원, 조중식 편집국 부국장이 참석했다. 고산(에이팀벤처스 대표), 김태수(변호사), 민세진(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박원호(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이성주(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정윤혁(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한준(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위원은 따로 의견을 보냈다.
<한동훈>
-<[김윤덕이 만난 사람] 취임 두 달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9월 20일 자 A5면)는 한 대표의 답변 내용이 실망스러웠다. 인터뷰를 이끌어 가는 기자가 좀 더 적극적으로 질문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국가 지도자로서 구체적인 논리와 논거를 가졌는지 역량을 확인할 ‘매서운 칼’을 보여줬어야 했다. 대통령은 물론 여당 지지율이 바닥을 치는 위기 상황인데, 이 인터뷰 기사는 너무 맹숭맹숭해 조선일보가 국민의힘 기관지(機關紙)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언페어(불공평)하게 수사한 적이 없다”는 한 대표의 주장에 “그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요?”라고 반문했어야 한다. 사법부 수장을 지낸 사람을 구속하고, 수십 개 혐의를 걸어 기소했는데 1심에서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가 나왔다. “만약 한 대표가 수십 가지 혐의로 기소됐는데, 1심에서 전부 무죄가 나왔다면 그래도 자기를 기소한 담당 검사가 공평했다고 생각하겠습니까?” 같은 돌직구 질문을 던졌어야 했다.
-조선일보가 ‘명태균 스캔들’을 다룬 방식은 매우 신중했다. 9월 중순 이미 보도를 시작한 다른 신문에 비해 국감 증인 채택이 된 이후 보도를 시작했고, 사설에서 제대로 언급한 것은 <대통령 부부와의 대화가 이렇게 마구 노출되는 정권도 있었나>(10월 8일 자 A35면)가 처음이었다. 기사 횟수도 타 신문의 절반에서 5분의 1 정도로 적었다. 하지만 지금으로 봐서는 그 판단이 빗나갔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정치의 치부를 드러낼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될 것 같다. 일개 브로커의 문자와 녹취에 정치권이 일희일비하는 것은 우습지만, 적극적인 취재와 평가를 통해 이 문제를 제대로 짚어야 한다.
-<[양상훈 칼럼] 최덕근 영사 암살범들 모두 확인됐다>(9월 26일 자 A38면)를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이병호 전 국정원장이 최근 쓴 책을 읽다가 알게 된 사실이라며 1996년 러시아에서 살해당한 최 영사의 죽음을 환기시켰다. “국정원이 범행을 실행한 조직, 책임자는 물론이고 실제 실행자 3명의 이름까지 알고 있다는 것은 놀라웠다. 대한민국 법의 심판을 받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우리 국민을 떼죽음시킨 만행에 대한 추적과 심판에도 시효가 있어선 안 된다. 기억이 긴 나라로 바뀌어야 한다” 등 조선일보 주필이 마땅히 써야 할 칼럼이었다.
<의료의 미래>
-9월 23일 시작한 <의료의 미래를 묻는다> 기획은 현 시점에서 사후약방문이나 ‘뒷북’처럼 느껴진다. 미국 같은 보상 개념이 없는 한국 의료, 필수 의료 의사들의 낮은 처우, 소송 위험 문제 등을 의료계 원로와 석학에게 묻고, 정해진 듯한 원론적인 정답을 듣는 것이 지금 와서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정부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앵무새처럼 외지만 환자와 국민의 불안은 커져만 간다. 목전에 닥친 변화에 대해 좀 더 현실적인 대책과 대응을 논해야 할 시점이다.
-<요양보호사 불렀더니 5060 남자가 왔다>(10월 2일 자 A10면)는 은퇴 후 재취업 측면에서 남성 요양보호사가 늘어나는 현상을 다뤘다. 은퇴자가 뇌졸중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며 가족요양급여 제도를 통해 급여 90만원을 받는다는 내용이 있는데 설명이 부족하다. 요양보호사가 65세 이상이거나 대상자가 치매 중증이면서 문제 행동을 가진 경우 등이 해당하며, 다른 직장에서 월 160시간 이내로 근로해야 하는 조건도 있는 만큼 자칫 부정 수급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돌아오는 입양인들] ‘고려인 정착 지원법’은 있는데…>(9월 14일 자 A2면)를 의미 있게 읽었다. 2013년 특별법이 제정됐다고 했는데, 이 법이 제정·시행된 것은 2010년이다. 또 법의 취지와 주요 내용은 국내 정착 지원보다 강제 이주된 체류국 내에서 좀 더 안정적이고 합법적으로 생활하도록 돕는 데 초점이 있다. 이 때문에 해외 입양아들의 귀향에 적용하는 것은 좀 맞지 않아 보인다. “해외 입양인의 귀향을 돕는 정부 제도가 전무하다”는 내용도 사실과 다르다. 재외동포법에 따르면 F4 비자를 받아 경제활동을 제약 없이 할 수 있다.
-<마약 위장 수사 ‘신세계’ 열리나>(10월 5일 자 A10면)는 검찰이 마약 조직에 직접 잠입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마약 범죄 근절을 위해 검찰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한 상황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은 이해된다. 하지만 법 개정에 따른 법적·윤리적 문제와 부작용에 대해 다루지 않아 아쉬웠다. 위장·잠입 수사는 수사 효율성을 높일 수 있지만, 사생활이나 인권 침해 가능성도 있다.
<’뉴 원전’>
-<탈원전 벗어나 ‘뉴 원전’… 8년 만에 새로 짓는다>(9월 13일 자 A1면), <원전 10기 줄줄이 중단… 1기 멈출 때마다 1조씩 손실>(9월 30일 자 A10면) 등 비합리적인 탈원전 정책의 후유증 관련 기사가 이어졌다. 원전은 설계 수명인 40년을 넘겨 운영하기 위해 허가를 다시 받는데, 기사에서 설계 수명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자동차는 5년 만에 폐차시킬 때도 있지만 잘 관리하면 20년이 지나도 멀쩡하다. 원전도 마찬가지다. <美 AI 전력 수요 맞추려, 폐쇄한 원전 돌린다>(9월 23일 자 A14면)는 미국 원전의 재가동 소식을 전달했다. 이미 가동을 중단한 고리 1호기를 되살리는 방안을 조선일보가 제시하면 좋겠다.
-<佛 기능올림픽 찾은 이재용 “대학 안 가도, 기술 인재 우대”>(9월 19일 자 B2면)는 폐회식에 깜짝 방문한 삼성 이재용 회장에 방점이 찍혀 아쉬웠다. 국제기능올림픽 2위 성적의 의미, 참가 선수들 스토리, 현재 국내 제조업의 인력난 등 의미 있는 내용을 담아야 했다. 이 회장이 큰 관심을 갖고 후원해 온 것은 의미 있지만,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었다.
-<’공대 기피·교육질 저하·인재 유출’ 20년간 누적… 삼성 덮쳤다>(10월 9일 자 A3면)에서 반도체를 중심으로 삼성의 위기를 보도했다. 이공계 위기가 기업 경쟁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중장기적으로 국가 경쟁력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를 보여줬다. 그동안 꾸준히 강조됐으나 미흡했던 산학 협력 기반의 인재 양성, 국내 이공계 인력에 대한 산업체의 열악한 처우 등 사회적인 문제가 더 크다는 점도 조명해야 한다.
-<[박정훈 칼럼] 혁신하는 중국엔 ‘민주당’이 없다>(10월 5일 자 A26면)는 공감 가는 부분이 있지만, 균형을 잃은 것 같은 부분도 보인다. 일당독재 공산당이라도 경제만 살리면 민주주의가 불필요하다는 결론으로 읽힐 수 있다. 노동법이 혁신의 걸림돌이라는 듯한 내용도 가뜩이나 노동시간이 긴 한국에 말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문제는 시간보다 효율인데, 노조의 발목 잡기 못지않게 기업들의 비효율적 수직적 경영이나 연구원들의 낮은 의욕, 뒤처진 조직 문화 등에 대해서는 눈감은 것 같다.
<플랫폼>
-<플랫폼 규제, 거꾸로 가는 공정위>(9월 10일 자 A1·5면)는 공정위가 플랫폼 ‘사전 지정제’를 도입하지 않기로 한 발표에 대해 “글로벌 추세에 역행한다”고 비판했다. 유럽이 선제적으로 ‘디지털시장법(DMA)’을 내놓고 빅테크 플랫폼을 사전 지정 방식으로 규제하기 시작한 것은 맞지만, 경쟁 촉진 차원에서 맞는지는 논란이 있다. 한국은 토종 플랫폼이 영향력이 있는, 세계적으로 몇 안 되는 나라다. 공정위의 ‘사전 지정제’ 영향이 해외 빅테크에 비해 국내 플랫폼에 비대칭적으로 클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입법 추진은 여러 가지로 무리일 수도 있다.
-<구글, 안보시설 삭제 요청 3년째 무시>(10월 8일 자 A1·8면)에서 구글 어스에 국내 주요 안보 시설 사진이 고스란히 노출된 현재 상황에 대해 미국·프랑스·이스라엘 등 다른 나라와 비교해 문제를 제기했다. 지속적인 취재를 통해 향후 시정 여부를 보도해 주면 좋겠다.
-<대한민국 평균 나이 어느덧 45세>(10월 5일 자 A1·3면)는 중요한 주제이고 흥미롭게 읽었다. 다만 너무 MZ세대에 초점을 맞춰 ‘세대 갈등’을 중심으로 다룬 것이 아닌가 싶다. 인구·취업(정년)·정치 성향 등 다양하고 심각한 문제들이 존재하는데 문화 격차의 문제로 가볍게 처리한 느낌이다.
-<KT, MS와 2.4조원 투자 ‘한국형 인공지능’ 만든다>(10월 11일 자 B4면)는 한국의 대표 IT 기업인 KT의 인공지능 로드맵의 주요 방향을 잘 보여주고 있지만, KT의 입장을 그대로 전달한 것은 아쉽다. 자국 인공지능(Sovereign AI)의 중요성이 논의되고 있는 시점에서, KT가 어떻게 해외 사업자인 MS와 협업을 통해 한국형 인공지능을 개발할 것인지가 국내 인공지능의 미래에 중요하다.
-<[왕개미연구소] “8억 자가 아파트 빼면 빈털터리”… 70대 독거남의 비극>(조선닷컴 10월 6일)은 현재 우리나라 노년층은 물론 많은 중산층 이상 가구들이 직면한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분석했다. 기사에 묘사된 70대 독거남은 본인 소유 8억원 상당의 아파트가 있지만, 소득이 없어 극도로 궁핍하게 생활하다 고독사 했다. 부동산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없애면 불필요한 재정 낭비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실제 사례를 통해 생생하게 보여줬다.
<노벨문학상>
-<소설가 한강, 한국 첫 노벨 문학상>(10월 11일 자 A1면) 제목보다는 ‘아시아 여성 첫 노벨 문학상’이 더 적합하지 않을까 싶다. <[강천석 칼럼] 한강 작가, 무거운 노벨상 가볍게 받았으면…>(10월 12일 자 A26면)은 애정 어린 걱정이라는 건 알겠는데, ‘작가 나이가 조금 걱정스럽긴 하다’ ‘일흔이나 여든에 받는 게 무난하다’는 표현은 과한 에이지즘(ageism·연령 차별)을 바탕에 깐 노파심으로 읽힌다.
-한글날, 꼭 실려야 할 기사가 보이지 않았다. 한국어 퀴즈 대회 사진(10월 9일 자 A1면)이 있었지만, 한글날을 본격적으로 떠오르게 한 지면은 세종대왕 동상 사진을 실은 한 갈비 음식점 전면광고(A7면)뿐이었다. 한글은 인류 역사에서 손꼽히는 위대한 발명품으로, 우리가 지닌 가장 값진 보물이다. 한글의 발전 방안 등을 제시하는 기사가 아쉬웠다. 점점 더 심해지는 남북한 간 언어 차이는 우리 민족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정리=김정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