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 생명과학 기술의 눈부신 발전에도 우리나라 질병 사망률 1위는 여전히 암(癌)이다. 암은 무섭고 치료가 어려운 질병이다. 우리나라 암 유병자는 2018년 200만 명을 넘었다.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폐암은 암 발병률 3위(2018년 신규 진단환자 2만8628명)를 기록했다. 5년 생존율도 32.4%로, 담낭과 기타담도암(28.8%), 췌장암(12.6%)에 이어 낮은 편이다. 폐암은 발생 원인이 다양하고 조기 진단이 어려우며 항암제 내성도 쉽게 발현된다. 그만큼 치료도 어렵다고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조기 진단과 치료 어려운 폐암

폐암을 조직학적 기준에 따라 나누면 약 85%는 비소세포폐암이다. 폐암은 특별한 증상이 없어 조기 진단 비율이 낮다. 비소세포폐암의 약 70%는 첫 진단 시 이미 진행성 단계(3기 후기) 혹은 전이성 단계(4기)라서 치료가 더 어렵다.

비소세포폐암의 분자종양학적 특성을 살펴보면 ‘상피세포성장인자 수용체(EGFR)’라는 단백질에 돌연변이가 생겨 암이 발생한 경우가 가장 흔하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인의 경우 비소세포폐암 발생 원인의 약 40%는 EGFR 돌연변이다.

발암성의 활성 돌연변이 발견은 진행성·전이성 비소세포폐암 환자 치료 패러다임을 크게 변화시켰다. 항암제가 공격해야 할 대상이 어떤 것인지 알게 돼 이른바 ‘표적 항암제’가 개발된 것이다. EGFR 타이로신 인산화효소 억제제(TKIs)는 EGFR 돌연변이 비소세포폐암을 치료하기 위해 고안됐다. 엑손 19-결실(Ex19del), 엑손 21 치환(L858R) 같은 체세포성의 ‘EGFR 유전자 활성 돌연변이’가 치료 표적이다.

◇기존 EGFR 표적 항암제, 내성 극복이 과제

EGFR 활성 돌연변이를 동반한 진행성 비소세포폐암 환자로 진단받은 이후 첫 번째 치료(1차 치료)에 쓰이는 다양한 치료제가 나와있다. ‘게피티니브(이레사)’ ‘엘로티닙(타쎄바)’ ‘아파티닙(지오트립)’ ‘다코미티닙(비짐프로)’ 같은 1~2세대 EGFR TKIs가 시판 중이다.

그러나 1~2세대 EGFR TKIs로 치료받은 환자 대부분에게 치료제가 특정 순간부터 반응하지 않는 획득 저항성, 이른바 내성이 발생한다. 이 중 가장 흔한 획득 저항성 기전은 기존 약물이 표적에 들어가지 못하게 방해하는 2차 돌연변이인 ‘T790M 돌연변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1~2세대 EGFR TKIs 약제로 치료받은 환자의 50~60%는 T790M 돌연변이가 발생해 암이 다시 진행한다.

같은 치료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T790M와 EGFR TKIs 활성 돌연변이 모두를 표적으로 하면서, 야생형 대비 높은 선택성을 가지도록 설계된 ‘오시머티닙(타그리소)’이 3세대 EGFR TKIs로 개발됐다.

유한양행 제공

◇국산 신약 ‘렉라자’, 식약처 허가

항암제 내성과 관련해 최근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지난달 18일 유한양행이 개발한 폐암치료제 ‘렉라자’<작은 사진>가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31호 국산신약으로 허가받은 것이다. ‘렉라자(레이저티닙)’는 2차 돌연변이인 T790M 돌연변이까지 억제할 수 있는 3세대 EGFR TKIs 계열의 비소세포폐암 표적 치료제다. 렉라자는 폐암 돌연변이 유전자인 EGFR만을 표적으로 암세포를 사멸시키는 효과가 있다.

표적에 대한 높은 선택성을 나타내며, 시판 중인 EGFR 표적 항암제보다 효과가 우수하다. 피부 발진, 설사 같은 부작용 발생도 낮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전까지 1~2세대 EGFR 폐암치료제 내성 환자의 경우 사용할 수 있는 치료 옵션은 오시머티닙 하나로 극히 제한적이었다. 렉라자 허가는 환자의 치료 기회 확대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중추신경계 전이 방지에도 효과

신약허가의 근거가 된 렉라자의 임상시험 결과는 매우 고무적이다. 미국임상암학회(ASCO)와 국제의학전문학술지 등에 발표된 임상1·2상 시험 결과, 렉라자 240㎎을 복용한 T790M 돌연변이 양성 환자 76명의 ‘객관적 반응률(ORR)’은 58~72%로 나타났다. ORR은 암의 크기가 의미 있게 줄어든 환자의 비율이다. 암이 커지지 않는 기간인 ‘무진행 생존 기간(PFS)’은 11.0~13.2개월이었다. 의료계에서는 이를 꽤 뛰어난 약효로 본다.

기존 EGFR TKIs 치료제가 만족시키지 못한 의학적 미충족 요소 극복에 대한 기대도 높다. 첫 번째는 중추신경계(CNS) 전이다. EGFR 돌연변이 양성 비소세포폐암 환자는 흔히 뼈와 뇌 전이를 겪는다. 그 중 CNS 전이 발생률은 첫 진단 시 약 24%다. 병기가 진행되면 거의 2배로 증가한다.

렉라자는 뇌-혈관 장벽(BBB)을 투과하기 때문에 CNS 전이암 치료 효과가 뛰어나다. 임상1·2상 시험에서 뇌 전이를 동반한 비소세포폐암 환자 추가 분석 결과, 레이저티닙 240㎎ 투여 후 두개강 내 ORR은 71~78%였다. 두개강 내 무진행 생존 기간(IPFS)은 16.4개월이었다. 새로운 뇌 전이 병변이 발생한 환자는 한 명도 없었다.

◇”전 세계 폐암환자의 희망 될 것”

유한양행은 2015년 전임상 직전 단계에서 물질을 도입해 물질 최적화와 공정 개발, 전임상 및 임상시험을 진행해 국내 허가를 받았다. 지난 2018년 얀센에 기술을 수출해 글로벌 임상도 진행 중이다. 얀센은 자사의 이중항체 항암제 ‘아미반타맙’과 렉라자를 함께 쓰는 병용 임상도 하고 있다. 아미반타맙과 렉라자의 병용은 임상 연구에서 뛰어난 효과가 확인돼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9월 얀센이 유럽종양학회(ESMO)에서 발표한 임상1b상 연구 결과에 따르면 ORR 100%를 기록했다. 세계 10여국에서도 EGFR 유전자 활성 돌연변이 1차 치료제 개발을 목표로 렉라자 임상 3상이 진행 중이다.

조병철 연세암병원 폐암센터장 교수는 “이번 렉라자 국내 허가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항종양 효과와 안전성이 확인된 것으로, 우리나라 폐암 환자에게 좋은 치료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글로벌 임상을 통해 전 세계 폐암환자에게도 희망을 안겨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