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70kg의 남성'이 ‘인간’의 표준이었고, 의학 또한 이를 기준 삼아 발전해왔다. 그러나 지난 2005년, 저명한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서 남성과 여성의 유전적 차이가 약 1%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면서 국내외 의학계에서 '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자연스레 등장한 개념이 ‘젠더 의학(Gender Medicine)’이다. 최근 일산차병원은 여성 질환에 특화된 기존의 강점을 살려 젠더 의학을 도입하고, 젠더 의학 실현을 위해 ‘원내원(Hospital in Hospital)’ 개념의 내과병원을 구성했다.
◇출산 겪는 여성, 남성과 다른 진단·치료 필요
젠더 의학은 여성과 남성의 의학적 차이를 연구해 환자의 진료에 적용한다는 것으로, 국내에서는 아직 생소한 학문 분야다. 그러나 남녀 간 질병의 양상이나 약물 효과가 다르게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진 질환이 많아 적극적 도입이 필요한 분야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갑상선기능항진증의 경우,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10배 높은 발병률을 보인다. 갑상선기능항진증 외에도 천식, 기능성 소화기질환, 당뇨병, 골다공증 등 질환이 남녀 간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이 남성과 크게 다른 것 중 하나는 ‘출산’을 한다는 것이다. 출산이나 폐경을 겪으며 여성은 급격한 호르몬 변화를 경험한다. 매달 월경을 통해 잦은 호르몬 변화를 겪기도 한다. 따라서 여성에게는 단순히 몸집이 작은 남성으로 보는 진료가 아닌, 여성이 가진 고유한 특성에 맞춘 진료가 필요한 것이다. 일산차병원 내분비내과 임창훈 교수는 “여러 연구를 통해 성별에 따라 질환의 증상이나 예후, 약물 효과 등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며 “남녀는 단순한 신체적 차이뿐 아니라, 유전적 차이가 있으므로 진단과 치료도 다르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실제 임상에서 젠더 의학은 환자에게 어떤 방식으로 적용되는 걸까. 남녀 간 차이가 뚜렷한 것으로 알려진 갑상선기능항진증 진료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여성은 남성보다 갑상선기능항진증 발병률이 높지만, 비교적 치료 기간이 짧고 예후도 좋다. 갑상선기능항진증 치료는 약물·수술·방사선 치료 등으로 이뤄지는데, 이중 수술과 방사선 치료는 갑상선을 제거하는 방법이므로 갑상선 기능 저하를 막기 위해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 따라서 여성의 경우 최대한 약물치료 기간을 길게 설정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치료 계획을 세운다.
여성 질환을 중심적으로 진료해 온 일산차병원은 ‘여성 특화 병원’이라는 강점을 살려 젠더 의학을 도입했다. 임창훈 교수는 “일산차병원 내과병원은 앞으로 젠더 의학 연구에 집중할 계획”이라며 “연구를 바탕으로 남성과 여성의 치료 가이드라인을 차별화하는 등 환자 개인별 맞춤 치료를 실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복합적 질환자, 다학제 진료로 과잉 진료 예방
일산차병원은 젠더 의학 도입을 위해 개원 당시 13개 진료과에서 20개 진료과로 확대했다. 심장내과, 호흡기내과, 소화기내과, 신장내과는 원내원 개념으로 따로 분리해 구성했다. 심혈관촬영실, 기관지내시경실 등 시설을 갖추고 다양한 질환에 대한 진료, 암 환자 치료·케어도 지원할 계획이다. 특히 일산차병원 인공신장센터는 ‘여성 친화 투석실’과 혈액여과투석치료가 가능한 최신식 투석기를 갖추고 오픈을 앞뒀다. 여성 친화형 투석실에서는 투석치료가 필요한 여성 환자가 쾌적하게 치료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일산차병원 내과병원은 환자 치료를 위한 ‘컨트롤 타워’이기도 하다. 여성은 복합적 질환을 가진 환자도 많은데, 이런 환자들을 위해 내과 분과는 물론, 다른 임상 진료과와의 협진을 시행한다. 이를 통해 특정 분과로 분류할 수 없어 치료가 지연되는 환자를 관리함으로써 진료가 지연되거나, 불필요한 진료가 진행되는 것을 미리 방지한다. 통합적인 검사와 진료로 과잉 처방도 막는다.
또한 다학제 진료를 통해 골다공증, 갑상선질환, 유방질환 등 여성에게서 자주 발생하는 질환과 그에 따른 합병증을 한 번에 진료하고 치료받을 수 있는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한다.
◇산후 검사 소홀한 사람 많아, 100일 검진 반드시
여성 질환은 다른 질환과 마찬가지로 조기 진단이 중요하다. 특히 여성은 결혼, 출산, 폐경 등 다양한 생애주기 변화를 겪기 때문에 각 생애주기에 맞춰 몸 상태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일산차병원 건강검진센터에서는 여성들에게 유병률이 높은 질환들을 조기 발견하기 위해 ▲미즈검진 ▲예비신부검진 ▲갱년기검진 ▲암정밀검진 등 생애주기별 특화 검진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여성 검진은 남성과 별도의 공간에서 시행해 검진자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고, 편안한 환경을 제공한다.
검진 중에 암 등 질환이 발견될 경우, 당일 진료 의뢰로 신속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한편 대부분 여성은 산전 검사에는 집중하지만, 산후 검사는 신경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임창훈 교수는 “출산 후 여성의 건강은 아이 건강에 밀려 등한시되곤 한다”며 “여성은 산후에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되므로, 적어도 아이가 100일이 됐을 때는 한 번쯤 검진을 받아보길 권한다”고 말했다. 산후 100일 정도는 보통 산모가 회복되는 기간으로, 몸이 정상적으로 회복됐는지 알아볼 수 있는 적당한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