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웅 광복회장은 17일 안익태(1906~1965) 선생의 애국가를 "불가리아 민요 표절"이라고 주장했지만, 전문가들은 사실 확인 없는 일방적 주장이라고 했다. 안 선생은 애국가 작곡 이전에 유럽 땅을 밟아보지 않았고 다른 경로로 불가리아 민요를 접했을 가능성도 희박하기 때문이다.

안 선생은 미국 유학 시절인 1935년 애국가를 작곡했다. 1930년 미국으로 건너간 안 선생은 필라델피아 템플대학에 다니며 샌프란시스코의 한인교회에서 첼로를 연주했다. 당시 한인들이 스코틀랜드 가곡 '올드 랭 사인'의 곡조를 애국가로 부르는 모습을 보고 애국가를 만들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20년 넘게 안 선생의 생애를 추적·연구해온 허영한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에 따르면, 안 선생이 애국가 이전에 불가리아 민요를 접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당시 헝가리·루마니아·불가리아 민요를 수집·연구한 이로는 헝가리 출신 작곡가 벨러 버르토크가 유명한데, 그가 미국으로 건너간 시기는 2차 세계대전 이후로 알려져 있다. 김연갑 국가상징연구회 애국가분과위원장은 "안 선생 작곡 애국가는 1940년 9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주최한 중국 충칭의 광복군 성립식에서 부른 노래"라며 "1945년 11월 임정이 중국에서 출간한 '김구 제(題) 한국 애국가'(등록문화재 576호), 1946년 4월 북한 평남인민위원회가 낸 '애국가'에도 안익태의 애국가 악보가 실렸다"고 말했다.

김 회장이 백선엽 장군의 공적을 폄훼한 것도 사실 왜곡이라고 전사가들은 본다. 김 회장은 "6·25 전쟁이 난 다음 날 백 장군이 안 나타나 1사단 장교·군인들이 도피했다"고 했지만, 백 장군은 당시 고급 간부 훈련을 받고 있었다. 전쟁 발발 직후 사단 사령부에 도착했지만 이미 담당 지역이던 개성은 함락 상태였던 것으로 군은 기록하고 있다.

다부동 전투 당시 미군이 주로 북한군을 상대했고 백 장군의 공적이 미화됐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군 관계자는 "당시 미군이 다부동 전투를 지원한 건 맞지만 백 장군이 없는 공적을 지어낸 게 아니다"라며 "공적이 별로 없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