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김(37·한국 이름 김예진) 리멤버727 대표는 최근 본지와 전화 인터뷰에서 "90세가 넘은 6·25 참전 용사들이 우리의 곁을 떠나고 있다"며 "더 늦기 전에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더 자주 고마움을 표시해야 한다"고 했다.
김 대표는 전 세계 6·25 참전 용사들로부터 '명예 손녀'라고 불린다. 학생 시절이던 2007년 워싱턴DC의 한국전쟁 기념비를 처음 방문한 것을 시작으로, 미국 50개 주를 비롯해 6개 대륙 30국을 돌며 참전 용사 1200명을 만났다. 지난 2018년에는 미국 내 70개 도시의 참전기념비를 연속해서 찾아 헌화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김 대표는 "90일 동안 지프(JEEP) 자동차를 타고 13만마일(약 21만㎞)을 달렸다"며 "참전비에 새겨진 전사자들의 고마움을 다시 일깨우고 싶어 여정에 나섰다"고 했다. 지난해에도 국내에 들어와 전국의 참전 용사 전적비와 기념비 30곳을 일주일 만에 돌았던 경험이 있다.
김 대표는 참전 용사들을 만나러 세계 곳곳을 누비는 이유에 대해 "참전 용사들이 하나씩 우리 곁을 떠나고 있는데, 더 늦기 전에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잊힌 전쟁(forgotten war)에 관심을 기울이는 한인 2세의 행동을 통해 많은 사람의 희생이 잊히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미국인들이 이해하게 될 거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실종 군인 가족들과도 연락해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전했다고 한다.
김 대표는 "참전 용사들은 자신들이 젊음을 바쳐 지킨 한국을 자랑스러워하고 있다"며 "한국식 예절에 맞춰 큰절을 올리면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너무 좋아하신다. 태극기와 빛바랜 사진같이 애지중지 보관한 것을 보여주시며 추억에 젖는다"고 했다.
그는 부산 영도구의 의료지원단 참전기념비를 찾았을 때 102세의 고령인데도 당시 상황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던 스웨덴의 참전 간호사가 인상 깊었다고 했다. 콜롬비아 출신 참전 용사는 전쟁 당시 얼굴에 총을 맞아 큰 상처를 입었는데도 "기억해줘서 고맙다"고 손을 잡아줬다고 한다. 김 대표는 "그런데도 우리는 이분들을 잊어버리니 감사한 마음이 안타깝고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바뀌기도 한다"고 했다.
서울에서 태어난 김 대표는 여섯 살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간 뒤 조지워싱턴대 등에서 정치와 입법 등을 공부했다. 학생 시절 6·25 정전기념일인 7월 27일을 연방정부 청사에 국기를 게양하는 기념일로 지정해 달라는 '한국전 참전 용사 정전기념일' 법안을 의회에 청원해 법제화를 이끌어 냈다. 백악관과 의회의 모든 의원에게 전화를 돌려 이뤄낸 성과다. 그 인연으로 6·25 참전 용사 출신인 찰스 랭글 전 연방 하원의원의 보좌관으로 8년간 일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의회에서 나온 뒤 온라인에 '한국전쟁기념관(Korean War Memorials)' 사이트를 개설했다. 그가 세계를 돌며 인터뷰한 참전 용사 200여 명의 기록과 사진 등이 담겨 있다. 김 대표는 "거창한 액션은 필요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소한, 그들을 기억하자는 것"이라며 "참전 용사들의 스토리를 읽고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겨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