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는 시기가 있다. 일에는 선후(先後)가 있는 법이다. 옳은가 그른가를 따지기보다 죽은 사람을 먼저 살려놓고 보는 게 우선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두 가지 처음 경험하는 난리를 겪고 있다. 하나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50일 장마’로 인한 물난리다. 다른 하나는 자고 일어나면 수억씩 뛰어오르는 아파트값이다. ‘물난리’, ‘집값난리’다. 온 국민이 이런 난리 통을 겪으며 고통의 수렁에 빠져 있는 이때 대통령이 어제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 회의를 했기에 다들 그의 발언에 주목했다.
모든 것을 떠나서 문 대통령은 지금 임기 3년4개월째다. 그렇다면 초등학교 어린아이가 봐도 더 이상 앞선 정부를 탓하기에는 염치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제는 잘되든 못되든 "모든 것은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탓이로소이다", 하고 세 번을 외쳐야 정상적인 집권세력이요 국가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의 상황 판단과 인식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어제 있었던 문 대통령 발언의 해당 부분을 더하거나 빼지 않고 원문 그대로 읽어드리겠다.
"재난복구에는 군 인력과 장비까지 포함하여 가용 자원을 총동원하고, 이재민과 일시 대피 주민들이 불편함이 없도록 세심하게 살피면서 하루빨리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주기 바랍니다. 그와 함께 피해의 원인과 책임을 규명하는데도 소홀함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댐의 관리와 4대강 보의 영향에 대해서도 전문가들과 함께 깊이 있는 조사와 평가를 당부합니다. 4대강 보가 홍수조절에 어느 정도 기여하는지를 실증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문 대통령은 행정부에 지시를 내리고 있다. 첫째 피해 원인과 책임 규명하라, 둘째 4대강 보의 영향을 다시 조사하라, 이것이다. 물론 문 대통령은 ‘재난 복구에 최선을 다해 달라’는 말도 했다. 그러나 만약 저나 여러분께서 청와대 회의 현장에서 대통령의 발언을 받아 적는 청와대 수석이었다면, 그리고 그 말을 나중에 전달받은 관련 부처의 장·차관이거나 실무 책임자였다면, 대통령 발언의 강조점이 ‘재난 복구’에 있었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4대강 보 영향 평가와 책임 규명’에 있다고 생각할까. 사실 솔직히 말씀 드려서 난리가 터졌을 때 대통령이 ‘최선을 다해 재난을 복구하라’, 이런 지시는 하나마나 한 말이다. 청와대 참모들도 받아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4대강 보 관련 영향 조사’ 지시 발언은 즉각 준비 태세가 가동됐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워낙 사회적 쟁점이 터지면 과학적 진실조차 둘로 쪼개지기 좋아하는 몹쓸 풍조가 퍼져 있다 보니, 더욱이 정치적 목적에 휘둘리다보니, ‘4대강 보가 홍수를 막는다’는 내용으로 책을 한 권 쓸 수도 있고, ‘4대강 보 때문에 홍수가 났다’는 내용도 책을 한 권 쓸 수 있을 것이다. 4대 강 사업의 홍수 예방 효과는 정권에 따라 정 반대의 평가가 나왔다. 2014년 박근혜 정부 때 국무총리실 산하 ‘4대강 사업 조사평가 위원회’는 "4대강 사업 주변 홍수 위험지역 중 93.7%가 예방 효과를 봤다"고 했다. 그러나 4년 뒤인 2018년 문재인 정부의 감사원은 "(4대강 사업의) 홍수 피해 예방 가치는 0원(제로)"라고 했다. 감사원은 4차례 조사했는데 그때마다 오락가락 갈팡질팡했다. 정치권은 말할 것도 없다. 미래통합당은 "이번 폭우로 4대강 보로 인한 홍수 예방 효과가 입증됐다"고 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오히려 4대강 보가 물의 흐름을 방해해 낙동강 둑이 터졌다"고 했다.
과학적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이번에 큰 강의 본류에서 제방이 터진 곳은 현재까지 세 곳이다. 섬진강에 두 곳, 그리고 낙동강에 한 곳이다. 섬진강은 전북 남원시 금곡교 인근 제방, 그리고 전남 곡성군 고달천 합류부 인근 제방이 터졌다. 낙동강은 경남 창녕군 창녕함안보 인근 제방이 무너졌다. 섬진강은 4대강 보 사업을 하지 않은 곳이다. 그런데 전문가들 의견이 제각각이다. 박창근 가톨릭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 김범철 강원대 환경과학과 명예교수 같은 이들은 "보 때문에 제방이 무너졌다"는 쪽이다. 반면에 조원철 연세대 토목공학과 명예교수, 장석환 대진대 건설시스템공학과 교수 같은 이들은 "보가 수압을 높여 제방을 무너뜨렸다면 팔당댐, 소양강댐 등 대형 댐 인근의 제방도 다 무너져야 한다"고 했고, "제방의 재료가 무엇인지, 다짐은 제대로 했는지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우리나라 토목공학과 교수들을 거의 두 줄로 나눠서 줄 세우기를 할 수 있을 정도다. 여러분은 어느 쪽이신가.
우리는 이런 이론가들을 믿어야 하겠지만, 그러나 이론가들은 말 그대로 ‘이론’ 시어리(theory)일 뿐이어서 그 자체로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때론 그 이론가들이 진영논리에 휩싸여 정치적으로 휘둘릴 때도 있다. 따라서 이런 때는 현장 목소리가 너무 귀중한다. 현장 세 분 목소리는 이렇다. 낙동강 본류인 경남 창녕군 죽전마을 예순 살 임성관 이장의 증언이다. "4대강 사업 이후 홍수는 확실히 줄었다. 그 전에는 비만 오면 홍수가 나서 손해보상금을 받는 일이 잦았는데, 사업 이후 홍수 피해가 줄어 만족스럽다. 4대강 사업 전 연례행사처럼 발생한 침수 피해가 사업 이후에는 전혀 없었다." 낙동강 합천 창녕보 인근 주민 이인식 씨의 증언이다. "제방을 확장하면서 시멘트와 흙이 접합부분이 제대로 접착되지 않아 틈이 생겼다. 이 때문에 주민들이 그동안 수차례 제방 보강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전북 남원시 금지면 상귀마을 김영규 이장은 이렇게 말했다. "4대강 사업 때 제방 인근 금곡교를 철거하는 등 섬진강까지 정비했으면 이런 사고는 없었을 것이다."
자, 평생을 현장에 살아오신 이 분들의 증언을 요약하면 이렇다. ‘4대강 보 덕분에 침수 피해는 없어졌다.’ ‘제방 공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무너진 것이다.’ ‘4대강 사업을 해서 터진 것이 아니라 그런 정비 사업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터진 것이다.’ 세 분의 현장 말씀을 다시 한 마디로 줄이면 ‘제방이 부실해서 터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마치 이명박 정부 때 진행한 4대강 사업 때문에 제방 붕괴 같은 일이 빗어진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조사하라고 지시를 한 것이다. 방향을 정해놓고 조사 지시를 내린 것 같은 인상마저 준다. 이제까지 문 대통령의 철저 조사 지시는 대개 그랬다. 아니 백 번 양보하고 그런 것을 다 떠나서 지금은 정부 인력과 에너지를 ‘보 영향 조사’ 같은 곳으로 분산시킬 때가 절대 아니다. 일단 희생당하고 쓰러진 곳을 살려놓고 보는 일에 모든 힘을 쏟아야 할 때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앞 정권 탓은 아닌지 살펴보라고 지시한 것이나 같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불난 가슴에 기름을 붓는 발언 같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