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주 제14선거구에는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30)라는 민주당 연방 하원 의원이 있다. 2018년 20대 때 공화당의 10선 거물을 꺾고 최연소 연방 하원 의원에 당선된 무서운 신인이다. 급진 좌파 성향부터 거침없이 돌진하는 언변, 의회에서 보기 어려웠던 젊은 여성다운 발랄한 옷차림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지난 7월 23일 워싱턴 DC의 의사당에서 시대에 남을 연설을 했다. 공화당의 60대 남성 의원에게서 정책에 대한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빌어먹을 X(a fucking bitch)"이란 폭언을 들은 지 사흘 뒤였다. 오카시오코르테스는 "나는 길거리에서, 식당 서빙을 하면서, 이런 욕설과 성희롱을 많이 들었기 때문에 특별히 상처받지는 않았다"면서 "그러나 그런 욕설을 해도 넘어갈 수 있는 문화, 여성을 상대로 한 폭력과 폭언을 용인하는 문화는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이 이날 입은 옷은 어깨에 두툼한 패드가 들어가 각 잡힌 새빨간 더블 재킷에 검정 바지였다. 여성 정치인들이 즐겨 입는 파워 슈트의 전형이다. 평소 민소매 원피스나 하늘하늘한 블라우스, 러플 달린 재킷을 즐겨 입던 그이지만, 모든 여성을 대표하는 자리엔 작심하고 전투복을 입고 나온 것이다. 그리고 누구도 이날 서른 살 여성 의원의 빨간색 재킷을, 긴 생머리와 빨간 립스틱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정치인으로서 해야 할 말을 뒷받침하는 소품으로서 더할 나위 없이 적절했기 때문이다.
정의당 비례대표 류호정(28) 의원의 '분홍 원피스' 논란을 보면서 안타까웠다. 솔직히 비난과 야유를 받을 정도의 옷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시민을 대변하는 국회에서 어떤 옷이든 입을 수 있어야 한다" "남성 중심 국회를 깨보고 싶었다" "긁어 부스럼 만드는 게 진보 정치인이 할 일"이라는 류 의원의 말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무슨 옷을 입든 일만 잘하면 된다'는 논리엔 동의하지 않는다. 국회는 자기 일만 잘하면 되는 사무실이 아니다. 국회의원은 중요한 정보를 감추려는 관료를, 여의도를 염탐하며 빈 곳을 찾아 로비하는 기업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있는 이해 당사자들을 만나 설득하고 싸우는 직업이다. 정글에선 호랑이도 위장용 줄무늬로 자신을 방어해놓고 사냥한다.
류 의원이 중년 남성 의원들 눈치를 볼 필요는 없다. 값비싼 맞춤 정장을 입으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날 입을 옷이 소수 야당 의원에게까지 절박하게 매달려야 하는 서민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는지, 상임위원회에서 말 빙빙 돌리는 장관을 몰아붙일 때 허점을 보이지 않을 수 있는 옷인지 생각해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씩씩한 국회의원으로 자리 잡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