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한동훈 검사장과 정진웅 부장검사측의 주장을 토대로 재구성한 압수수색 당시 상황

‘채널A 기자의 강요미수 의혹’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정진웅)는 한동훈 검사장(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의 휴대전화 유심(USIM)을 압수해 다른 휴대전화 공기계(번호가 없는 단말기)에 꽂은 뒤 한 검사장의 텔레그램과 카카오톡 대화 내용 확인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방식은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실시간으로도 확인할 수 있어 ‘불법 감청’ 논란도 제기됐다. 그러나 수사팀은 “과거 대화 내용만 확인한 것이기에 감청이 아니다”는 입장이다. 본지 취재팀이 수사팀이 시도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텔레그램과 카카오톡 대화 내용 확인을 시도해봤다.

◇카카오톡 대화 3일치밖에 확인 못 하는데…

수사팀은 공기계에 유심을 꽂고 카카오톡을 실행하면 비밀번호를 새로 발급받아 로그인할 수 있다는 점을 노렸다. 압수수색 이후 한 검사장의 카카오톡 비밀번호가 바뀌었던 이유다.

실제 사용 중이던 유심을 공기계에 삽입해봤다. 카카오톡을 실행하니 ‘비밀번호 재설정’ 페이지가 열렸다. 생년월일과 휴대전화 번호 등 간단한 개인정보를 입력하자 ‘자주 연락하는 지인의 프로필 사진을 맞추시오’따위의 ‘사용자 확인 퀴즈’가 나왔다. 문제 3개를 연달아 맞추자 곧장 새 비밀번호 설정이 가능했다.

사용중인 유심을 공기계에 꽂고 카카오톡 새 비밀번호를 발급받기 위해서는 '사용자 확인 퀴즈'를 통과해야 한다. 수사팀은 자신이 한 검사장인 것처럼 카카오사를 속여 이 과정을 통과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수사팀은 수개월 전 이동재 전 채널 A기자와 한 검사장 간 주고받은 메시지에 ‘채널A 의혹’을 공모한 흔적이 남아있을 것이라 의심한다. 그런데 공기계에서 열어본 카카오톡에는 지난 3일간의 대화만 저장돼 있을 뿐, 그 이전 대화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한 포렌식업체 관계자는 “카카오톡은 2014년부터 개인정보보호를 이유로 대화를 3일치만 서버에 저장하고 있다”며 “대화 내용은 삭제되지만 대화방은 남아있어 상대방과 마지막으로 언제 대화를 나눴는지 정도는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 29일 압수수색을 나간 수사팀은 한 검사장이 같은 달 27일까지 주고받은 메시지만 확인 가능했다는 뜻으로, 애초 수사팀 방식으로는 당시 오간 메시지를 확인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단, 한 검사장이 우연히 압수수색 전 ‘대화방 백업’ 기능을 활성화했고 백업 비밀번호를 알고 있다면 과거 메시지도 확인이 가능하다. 하지만 한 검사장은 백업 설정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한 검사장 텔레그램 접속 실패한 검찰…왜?

검찰은 비슷한 방식으로 한 검사장의 텔레그램 접속도 시도했지만, 실패한 것으로 전해진다. 수사팀은 공기계에 유심을 꽂고 텔레그램을 켜면 해당 기기로 '로그인 코드'가 날아온다는 점을 노렸다.

텔레그램은 별도 비밀번호 없이 로그인 코드만으로도 접속이 가능하다. 실제 이 방식을 그대로 재연했더니, 공기계에서 텔레그램 접속이 가능했다. 3일치 대화만 저장하는 카카오톡과 달리 텔레그램에는 작년에 지인들과 주고받았던 대화 내용까지 전부 남아있었다.

하지만 변수가 있다. 텔레그램은 휴대전화뿐만 아니라 노트북 등 여러 기기에 프로그램이 설치돼 있을 경우 로그인 코드가 휴대전화가 아닌 노트북 등으로 전송된다는 점이다.

수사팀이 텔레그램 접속에 실패한 정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 검사장이 텔레그램을 노트북 등 다른 기기에 설치해놓은 탓일 가능성이 크다.

◇3시간 동안 한 검사장 유심 분석한 검찰…”불법 감청했기 때문” 주장도

본지가 알려진 수사팀의 수사 기법을 따라 하는 데 걸린 시간은 30분이 채 안 됐다. 하지만 지난달 29일 수사팀은 한 검사장의 유심을 3시간가량 분석하고 돌려줬다. 이에 한 검사장 측은 “영장에 적힌 내용 이외 다른 대화를 확인하는 등 감청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특히 법조계에서는 압수수색 과정에서 한 검사장 카카오톡으로 수신된 메시지가 ‘미리보기’ 형식으로 수사팀에 실시간 노출되기 때문에 감청에 해당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사팀이 압수수색 영장에 적힌 대화방 이외에 다른 대화방을 들여다봤더라도 흔적이 남지 않는다. 당시 한 검사장 측 변호인은 “폭력을 행사한 부당한 압수수색”이라며 유심 분석 과정에 참관하지 않았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수사팀은 압수수색 영장에 자료에 한정해 압수 수색을 집행했기 때문에 감청이 진행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라며 “당시 압수수색 과정을 녹화한 3시간 분량의 영상을 서울고검에 제출한 상황”이라고 했다.

◇빈손으로 철수한 檢, 오늘도 이동재 노트북 포렌식

한편 검찰은 4일 이미 디지털 포렌식 작업을 끝마쳤던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의 노트북에 대해 다시 한번 포렌식 작업을 진행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이동재 전 기자의 구속 시한이 만료되는 5일 그에 대한 기소 여부를 결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초유의 ‘검사 육탄전’과 ‘불법 감청’ 논란까지 낳은 한 검사장 유심 압수수색에서 빈손으로 돌아온 수사팀이 급하다는 얘기”라며 “어떻게든 ‘스모킹건’(결정적 증거)를 찾으려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법조계에 따르면 이날 오전 진행된 노트북 포렌식에서도 이 전 기자와 한 검사장 간의 공모 정황을 입증할 만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