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도 못 사는데, 예쁜 집에서라도 살아야죠."
직장인 장모(28·강서구)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난 한 달간 '홈 스타일링'(집 꾸미기) 소품 구매로만 200여만원을 썼다. 그는 서울 영등포구의 5평 남짓한 원룸에 살다가 지난 6월 강서구 1억7000만원짜리 7평 원룸에 전세로 입주했다. 전세금은 최근 4년간 모은 돈과 대출까지, 그의 표현에 따르자면 이른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을 해서 마련했다. 그러곤 조명등, 북유럽풍 카펫 등 그동안 생각도 하지 않았던 소품을 잔뜩 샀다고 했다. 장씨는 "그동안 '열심히 돈을 모아 집을 사야지'란 생각이었지만, 부동산 광풍에 청약 당첨마저 그림의 떡이 된 마당에 더는 궁상맞게 살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최근 청년들 사이에서 '집 꾸미기' 열풍이 불고 있다. 과거엔 자가(自家)가 아닌 세 들어 사는 집에 인테리어 비용을 들이는 건 '돈 낭비'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어차피 집 사는 건 불가능"이라는 자조가 퍼지며 전·월세나 반전셋집 꾸미기에도 고가의 돈을 지출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3년간 서울 아파트값은 52%가 올라, 지금은 '중간값'이 9억원을 넘어선 상태다.
청년들은 전·월셋집을 예쁘게 꾸며 소셜미디어에 올린다. 인터넷에서는 '집주인과 분쟁 없는 월셋집 인테리어' '못 박지 않고 전셋집 꾸미기' 등의 콘텐츠가 인기다. 인스타그램에서 자기 집을 배경으로 올린 사진 콘텐츠는 수백만 개가 넘는다. 3일 기준 '홈스타그램'이라는 이름표(태그)를 붙인 게시물이 291만개, '집스타그램' 게시물이 402만개다. 사용자들은 게시물에 "2년 계약 월셋집이라 시공은 언감생심이지만, 최대한 저렴한 가구와 소품을 사용했다" "월셋집, 전셋집, 내 집 따지지 않기로 했다, 애착을 갖자"는 등 글을 적어 올린다.
배경엔 '공유를 통한 자기 위안' 심리가 깔렸다. 전·월세방을 전전하는 다른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처지에 위안을 얻는 것이다. 전세금 5500만원짜리 10평 빌라에 살고 있는 직장인 이모(29)씨는 "다른 사람들과 셋방 꾸미기 사진을 공유하면 '나만 집이 없는 게 아니다'라는 생각에 위로가 된다"고 했다.
홈 스타일링 관련 스마트폰 앱 시장도 활발하다. 다른 사람이 직접 올린 집 사진을 보며, 이 사진에 나온 가구·소품을 구매할 수 있는 스마트폰 앱 '오늘의집' 월간 거래액은 지난 3월 기준 700억원으로, 전년 동기(150억원) 대비 4.6배로 뛰었다. 이 앱은 청년층인 25~39세 비율이 전체 이용자의 40%를 차지한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소비 수준은 높아졌지만, 내 집 마련은 여전히 어려우니 과거 집을 소유하며 느끼던 행복의 대안으로 전·월셋집이라도 꾸미기를 하는 것"이라며 "청년들에게는 일종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인 셈"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