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30일 "통합당이 왜 이렇게 답답하냐, 야당 역할을 못한다는 말을 밖에서 많이 듣는다"면서도 "지금 세상은 과거와 다르다. 외친다고 해결되지 않기에 성숙된 상황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여당이 176석의 힘으로 무지막지하게 밀어붙이고 (우리가 원내에서) 할 일이 없다면, 직접 국민에게 호소하는 것도 고민해야 하지 않나"라고 했다. 여당이 전날 부동산 임대차 관련 법안을 법사위에 상정하고 통과시킨 지 하루 만에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킨 상황에서 무력감을 토로한 것이다. 하지만 야당은 반대 의견을 개진하거나 무리한 의사일정 진행을 비판할 합법 수단인 필리버스터, 안건조정위원회 등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스스로 야당이기를 포기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까닭이다.

①필리버스터 신청도 안 한 야당

통합당은 이날 의원총회와 비상대책위원회의를 잇달아 열어 여당의 입법 독주 대책을 논의했다. 하지만 결국 본회의에 출석해 반대 토론만 하고 법안 표결엔 참여하지 않기로 결론 내렸다. 본회의에 상정된 법안을 저지하기 위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신청하지 않은 것이다. 주 원내대표는 앞으로 국회 보이콧과 필리버스터 가능성에 대해 "상황을 봐가면서 천천히 결정하겠다"고 했다.

미래통합당 김종인(가운데) 비상대책위원장이 30일 오전 당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통합당이 이같이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데는 실익이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필리버스터를 하더라도 국회법상 재적 의원 5분의 3 이상(300석 중 180석) 찬성으로 필리버스터를 중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정의당과 열린민주당, 무소속 등을 합친 친여(親與) 성향 범진보 의석은 190석으로, 필리버스터 강제 종료가 가능한 숫자다.

②'서민 발목 잡는 야당'프레임 우려… 안건조정위도 신청 안 해

통합당은 부동산 관련 법들이 상임위에서 통과될 때 안건조정위원회 신청도 시도하지 않았다. 국회법에 명시된 '안건조정위'는 이견을 조정할 안건이 있을 경우 최장 90일간 논의할 수 있다. 안건조정위는 상임위 재적 위원 3분의 1 이상 요구를 하면 구성할 수 있다. 각 상임위 통합당 위원 수로 안건조정위 구성 자체는 가능했다. 하지만 3분의 2 이상이 찬성을 해야 조정안 내용이 받아들여진다. 안건조정위가 구성돼도 실효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발목 잡는 야당'으로 비치는 데 대한 우려도 있었다고 한다. 야당 관계자는 "서민들이 전·월세로 고충을 겪고 있는데 뭔가 대책을 내놔야 한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당내에서도 공감대가 있다"며 "그런 상황에서 반대하는 야당 프레임에 갇히는 것을 우려한 부분도 있다"고 했다.

③장외투쟁도 못 해

통합당에선 전날까지만 해도 국회 밖에서 투쟁하자는 목소리가 일부 나왔다. 하지만 김종인 위원장은 이날 "우리나라 국민 수준도 예전과 다르기 때문에 무조건 국회의원이 밖에서 장외투쟁한다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다수결로 모든 게 결정되는 상황에서 속수무책이나, 의원으로서 직무를 포기할 수는 없다"며 원내 투쟁을 강조했다.

당 지도부에서는 장외투쟁에 나서더라도 뚜렷이 보여줄 게 없다는 점, 코로나 상황 등을 감안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우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당 회의에서 '투쟁'이란 말도 쓰지 않고 "지난번 장외집회 같은 형태는 안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황교안 전 대표 시절 청와대 앞 단식 농성·삭발 등 강경한 장외 투쟁을 벌였지만, 민심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④매번 나왔던 '의원직 총사퇴'는 얘기도 안 나와

야당에선 여당의 폭주를 막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의원직 총사퇴가 아이디어 차원에서 종종 거론됐다. 현실화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야당의 결기'를 보여주자는 차원이었다. 작년 말 여권이 예산안에 이어 선거법, 공수처법을 밀어붙였을 때에도 '의원직 총사퇴' 얘기가 자주 나왔다. 하지만 이번엔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야당 관계자는 "지금 야당은 무기력하고 절실함이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