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지만 언제, 어디서 바이러스가 유래했는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예전부터 인류를 괴롭혀온 질병들도 대부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예가 20세기에 전 세계에서 3억명 이상을 죽인 천연두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백신 덕분에 1980년 5월 8일 천연두가 종식됐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했지만, 천연두 바이러스의 기원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최근 과학자들이 유전자 연구를 통해 천연두 바이러스가 진화해 온 역사를 재구성하는 데 성공했다. 이 성과는 코로나와 같은 바이러스 질병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바이킹, 배 타고 천연두 퍼뜨려
천연두는 두창바이러스에 의해 유발되는 전염병으로, 열과 구토, 피부 발진 증세가 나타난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천연두는 3000년 이상 인간을 괴롭혔다. 기원전 12세기 이집트 람세스 5세의 사망 원인이라는 추측도 있다. 하지만 기록에 남은 질병의 증상으로 보아 천연두라고 추정할 뿐이다. 과학자들은 17세기 리투아니아 아이의 미라에서 발견된 천연두 바이러스의 DNA(유전물질)를 가장 오래된 증거로 본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와 덴마크 코펜하겐대 등 국제 공동 연구진은 지난 24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바이킹 시대의 두창바이러스 게놈(유전체)을 재구성했다"고 발표했다. 연구진은 3만2000~150년 전 유라시아와 아메리카 대륙에 살았던 1867명의 뼈와 치아에서 DNA를 수집해 분석했다.
그 가운데 기원후 600~1050년 북유럽 바이킹 시대에 살았던 11명의 유해에서 천연두 바이러스를 발견했다. 덴마크·스웨덴·노르웨이·영국 등에서 발견된 유해였다.
연구진은 바이킹 4명의 유해에서 나온 유전자를 모아 바이러스 게놈을 만들었다. 이를 통해 천연두가 이미 바이킹 시대에 퍼졌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기존 바이러스 발견 시점보다 1000년을 앞당긴 것이다.
천연두가 바이킹에게서 확인됨에 따라 예상보다 더 넓은 지역에 퍼졌다고 추정할 수 있게 됐다. 케임브리지대의 에스케 빌러슬레프 교수는 "바이킹이 배로 여러 곳을 다니며 천연두를 퍼뜨렸을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마치 코로나 바이러스가 비행기를 타고 전 세계로 퍼졌듯, 천연두도 배를 탄 바이킹을 통해 유럽 전역으로 확산했다는 말이다. 이는 6세기 유럽 남부와 서부에서도 천연두 감염으로 추정되는 환자가 있었다는 여러 기록과 일치한다.
◇현대 바이러스는 치명적으로 진화
이번 연구는 천연두가 코로나처럼 동물에게서 옮아왔다는 이론도 뒷받침한다. 연구진은 유골에서 나온 두창바이러스와 과거 동물에게서 발견된 바이러스의 돌연변이율을 근거로 바이러스의 진화 계통도를 그렸다. 여기서 모래쥐두창(taterapox)과 낙타두창(camelpox) 등 동물에게 있었던 바이러스가 수천년 전 사람에게 옮은 것으로 나타났다. 1700년 전쯤 천연두는 사람에게 풍토병으로 자리 잡았다. 바이킹 시대의 고대 천연두 바이러스는 이후 430년 전쯤 현대 바이러스와 갈라졌다.
바이러스는 20세기로 오면서 점점 인간에게 치명적인 형태로 진화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나 사스, 메르스 같은 인수공통전염병이 박쥐 같은 여러 동물을 거치면서 사람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된 것과 같은 원리다.
스페인 마드리드 자치대의 안토니오 알카미 박사는 사이언스 논평 논문을 통해 "고대 천연두 바이러스는 인간과 설치류 등 여러 동물에게 가벼운 감염을 유발하는 인수공통전염병이었지만, 현대 천연두 바이러스는 인간에게 정착하면서 점점 독성이 강해졌다"고 밝혔다.
유전자분석 결과 고대 바이러스는 다양한 동물 종을 감염시키지만 전염성이 낮고 인체에 치명적이지 않은 것으로 나왔다. 과학자들은 이번에 천연두 바이러스가 발견된 바이킹 11명도 천연두로 죽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고 본다. 반면 현대 천연두 바이러스는 백신에 종식되기 전 치사율이 30%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