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서울 롯데마트 서울역점에서 샤워기 필터 등을 살펴보는 고객. 전국적으로 수돗물에서 유충이 발견됐다는 신고가 잇따르면서 이물질을 걸러주는 샤워기·수도꼭지 필터 판매가 급증하고 있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임신 9개월 차 김모(36)씨는 지난 20일 부랴부랴 가정용 수돗물 필터를 샀다. 유명 연예인이 광고하는 제품이 품절이라, 인지도가 덜한 업체 제품으로 겨우 구입했다. 세면대 수도꼭지용 필터 2개, 샤워기용 필터 2개에 총 12만7000원이 들었다. 김씨는 "지은 지 5년 된 신축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수돗물 유충 사태로 너무 불안해서 필터를 샀다"며 "문제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다음 달이면 아이가 태어나는 만큼 최대한 안 좋은 건 피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다.

지난 9일 인천 서구 수돗물에서 깔따구 유충이 발견된 이후, 수돗물에 대한 불안감이 전국적으로 커지고 있다. 지난 21일 환경부는 활성탄지(활성탄을 넣어 정수하는 시설)가 설치된 전국 49개 정수장을 전수 조사한 결과, 인천 공촌·부평 등 전국 정수장 7곳에서 깔따구 유충과 등각류(물벌레)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불안감은 생수, 정수기를 비롯해 수도꼭지·샤워기 필터 등의 구매 급증으로 이어지고 있다.

샤워기 필터, 필수품 되나

이마트에 따르면 지난 14일에서 19일까지 인천 지역 이마트(동인천·계양·연수·인천공항·검단점)에서는 샤워기 필터 같은 수도용품 매출이 전년 대비 986.7% 늘었다. 지난 20일 이후, 온라인상에서 판매되는 수도꼭지·샤워기 필터 중에는 일시 품절된 제품도 많다. 축구선수 박주호의 자녀를 모델로 기용해 인기를 끈 닥터피엘은 "최근 수돗물 이슈로 구매량이 폭증해 10만개 이상 보유하고 있던 재고가 모두 소진됐다"며 "현재 물량을 맞추기 위해 생산량을 극대화하고 있으나 판매에 비해 생산이 받쳐주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샤워기 필터'는 어린 자녀가 있는 집이나 일부 위생에 민감한 사람들 사이에서 1~2년 전부터 인기를 끌었다. '외국물이 맞지 않는다'며 해외에 나갈 때마다 이를 챙겨가는 사람도 있었다. 샤워기·수도꼭지 필터는 수돗물 속 잔류 염소를 제거하고, 이물질을 걸러준다. 이번 인천 수돗물 유충 사태 때도, 샤워기 필터에서 유충이 그대로 포착됐다. 필터에 따라 각질 제거를 돕는 우유 성분과 비타민C 등이 첨가된 기능성 필터도 있으며, 레몬·라일락 등 향이 첨가된 경우도 있다.

부산대 환경공학과 정상현 교수는 "노후화된 주택이나 이번 환경부 조사에서 문제가 된 지역의 경우 필터를 쓰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며 "중금속 등 해로운 물질이 필터에 흡착돼 제거가 가능하고, 유충 같은 이물질도 걸러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 교수는 "다만 모든 곳에서 필터를 쓸 필요는 없다"며 "오래된 아파트라 하더라도, 평소 물탱크를 주기적으로 청소하거나 관을 교체하는 등 관리를 잘하는 곳이라면 굳이 필터의 도움을 받을 필요는 없다"고 했다.

변색이 무조건 나쁜 것 아냐

샤워기 필터의 색깔이 변했다고 무조건 나쁜 신호도 아니다. 지난해 6월 환경부는 "먹는 물 수질 기준을 만족하는 양호한 수돗물의 경우에도 일정 시간 지속적으로 물을 여과시킬 경우, 아주 미량의 물질이 필터에 걸러지고 쌓이게 돼 색을 변색시킬 수 있다"는 보도 자료를 냈다.

정 교수는 "수돗물 내 미량의 망간 성분이 필터와 만나면 착색이 진행된다"며 "이 성분이 농축되면서, 색깔이 변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색깔이 변하면 우려하는 마음이 들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수돗물에 문제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했다.

실제 필터 착색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망간은 인체에 필요한 미네랄 중 하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망간 0.4㎎/L을 하루 건강 권고치로 정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인체에 유해하진 않으나 음용 시 맛·냄새 등 심미적 영향을 준다고 보고, 먹는 물 수질 기준(0.05㎎/L) 항목 중 하나로 망간을 관리하고 있다. 먹는 물 수질 기준은 체중이 60㎏인 성인이 평생 매일 2ℓ의 물을 섭취할 때, 건강상 위해가 나타나지 않는 안전한 수준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