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의 내 골프장에 ‘브리티시 오픈’을 유치하시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2월 영국 주재 미국 대사인 로버트 우드 존슨 4세에게 “영국 정부를 움직여 스코틀랜드의 턴베리 골프 리조트에서 ‘브리시티 오픈’이 열리게 하라”고 지시했다고, 21일 뉴욕타임스가 당시 존슨 대사의 주변인들을 취재해 21일 보도했다. 트럼프는 영국 내 최고의 골프 코스를 지닌 턴베리 리조트를 2014년에 사들였다. ‘디 오픈(The Open)’이라고도 불리는 브리티시 오픈 골프대회는 매년 7월에 열리며, 마스터스 토너먼트·US 오픈·PGA 챔피언십과 더불어 세계 4대 메이저 골프대회 중 하나다.

턴베리 골프 리조트 에일사 코스의 9번 홀 전경.

존슨 대사는 대사관의 고위 외교관들이 만류했지만, 결국 스코틀랜드 자치정부의 데이비드 먼델 국무장관을 만나 턴베리에서 브리티시 오픈이 열리게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턴베리에선 이후에도 브리티시 오픈은 열리지 않았다. 턴베리에서 브리티시오픈이 열린 것이 2009년이 마지막이었다. NYT는 당시 미 대사관의 외교관들이 ‘턴베리의 브리티시 오픈 유치’를 둘러싸고 제기한 불만은 미 국무부 감사실에도 기록으로 접수됐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자녀는 미국과 해외에 모두 16개 골프 코스·리조트를 직접 소유하고 있다. 트럼프가 대통령직을 이용해 이들 리조트의 수익을 올린 사실은 종종 뒤늦게 드러나 비판 대상에 올랐다. 작년에도 아일랜드를 방문한 마이크 펜스 부통령 일행이 트럼프의 지시로, 지리적 불편을 무릅쓰고 굳이 트럼프 호텔에서 묵어야 했다. 트럼프는 또 작년에 미국이 G7 회의 개최국인 점을 이용해, 회의 장소를 마이애미에 있는 자신의 리조트로 밀어부쳤다가 코로나바이러스로 G7 행사 자체가 무산됐다. 미국 대통령은 공직을 이용해서 개인적 금융 이익을 꾀해서는 안 된다는 관련 법률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메이저 골프 대회를 유치하면서 따르는 명성과 매출 효과는 이런 ‘소소한 수익’과는 비교도 안 된다. 그래서 트럼프 집안은 그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턴베리에 ‘브리티시 오픈’을 유치하는데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되면서, 오히려 이 대회가 턴베리에서 열릴 가능성은 오히려 낮아진 것이다. 스코티시 오픈의 주요 스폰서는 NYT에 “정치 요소를 뺀다면 트럼프 골프장은 이상적인데, 정치를 제외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존슨&존슨 제약사 창업자의 증손자이자, 런던의 미국 대사인 "우디" 존슨 대사

한편 존슨 영국 대사는 존슨&존슨 제약사 창업자의 증손자로 이미 억만장자(73)다. 영국 대사직은 미 대통령 후보에게 거액의 선거자금을 제공한 이들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외교관 직책으로, 멋진 저택인 윈필드 하우스에 살며 영국 상류사회 접근권을 누리게 된다.

뉴욕타임스는 그러나 “영국 정부가 과연 트럼프의 희망 사항을 얼마나 들어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전했다. 브리티시오픈을 주관하는 영국왕립골프협회(R&A)의 대변인은 NYT에 “영국 내 10개 골프 코스 풀(pool)에서 코스의 상태와 주변 인프라 여건을 고려해 개최 장소를 정하는데, 턴베리와 관련해서는 영국 정부나 스코틀랜드 정부로부터 어떠한 요청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