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모든 진화는 공진화(co-evolution)다. 1960년대 중반 나비와 식물, 그리고 식물과 개미가 서로에게 의존하며 함께 진화한다는 주장이 처음 등장했을 때 생물학자들은 대체로 회의적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생태계 구성원 모두 먹이사슬과 사회관계망으로 얽혀 있는 마당에 다른 생물과 아무런 연계 없이 홀로 진화하기가 오히려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바이러스와 인간도 함께 진화한다. 얼마 전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파우치 소장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켜 전파력이 6배나 높아졌다고 발표했다. 이 보도를 듣고 많은 사람이 더 큰 공포에 휩싸였지만, 진화생물학자인 내게는 사뭇 희망적인 소식이었다. 바이러스와 인간이 공진화하는 과정에서 드디어 숨 고르기 단계에 진입한 듯 보인다.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박멸하거나 퇴치해 사태를 종식시키는 게 아니라 공존해야 한다는 게 무슨 뜻일까? 감기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질병이다. 감기 바이러스가 인류를 공격하기 시작하던 초창기에는 아마 많은 사람을 죽였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독성이 강한 바이러스 변이는 이미 감염시킨 사람과 함께 스러지고, 감염됐어도 사는 데 별 지장이 없는 사람들은 비교적 온건한 바이러스를 옮겨주며 함께 살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방역을 철저하게 하거나, 미국과 브라질처럼 많은 사람이 죽고 나면 독성이 강한 변이는 저절로 자연선택 과정에서 도태되고 상대적으로 약한 변이가 득세하게 되어 있다. 한 명만 확진받아도 직장이나 학교를 폐쇄하고 주변 모든 사람을 조사하는 정책을 언제까지 끌고 갈 것인지 고민할 때가 됐다. 바이러스는 이미 우리에게 적응하기 시작했는데, 그래서 조심스레 ‘불편한 동거’를 제안하고 있는데, 우리가 너무 냉정하게 뿌리치고 있는 건 아닌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변화는 함께해야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