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4일 서울에서 전남 구례 지리산 성삼재를 잇는 시외버스가 운행을 시작한다. 하지만 환영할 것만 같은 전남도와 구례군이 “노선 재검토”를 요구하며 반발하고 있다.
구례에선 “지역민을 무시한 일방적인 결정”이라며 노선 재조정 투쟁을 예고했다. 구례에는 성삼재와 구례구역(求禮口驛)을 오가는 농어촌버스가 이미 있다. 여기에 성삼재와 서울을 연결하는 버스가 추가되는 것이다. 관광객 유입이 예상된다. 그럼에도 구례가 반대하는 이유가 뭘까.
경남에 기반을 둔 ㈜함양지리산고속은 지난해 10월 ‘동서울터미널~경남 함양 마천면 백무동 시외버스정류소’를 오가는 시외버스의 노선 변경에 나섰다. 백무동 정류소는 지리산 백무동 야영장과 백무동계곡이 주변에 있다.
차량으로 구례 성삼재까지 올라 노고단에서 지리산 산행을 시작해 정상인 천왕봉을 찍고 백무동으로 하산하는 등산객이 많다. 이를 염두에 두고 하루 6회 운행 중 1회는 백무동 대신 성삼재로 종점을 변경하는 게 골자였다. 등산객 입장에선 서울에서 성삼재로 곧장 갔다가 산행을 즐기고 백무동에서 버스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물론 도착한 성삼재에서도 같은 버스로 되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노선 변경 절차의 문제가 지역 정서를 자극했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에 따라 버스 노선이 시·도를 넘나들 때는 해당 광역지자체의 입장이 반영돼야 하는데, 전남도와 구례군은 “무시당했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10월 28일 전남도는 경남도의 구례 성삼재 추가 노선 변경 요청에 “반대” 입장을 냈다. 전남도는 지난해 12월 13일 조정에 나선 국토교통부에도 “노선 변경에 반대한다”고 했다. 두 차례나 공식적인 반대 입장을 낸 것이다.
하지만 지난달 10일 국토부 여객자동차운송사업조정위원회가 예상과 달리 경남도의 손을 들어줬다. 노선 조정안이 통과돼 오는 24일 성삼재로 시외버스가 오가게 된 것이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전남도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전남도는 국토부와 경남도에 최근 노선 철회 필요 의견서를 보냈다. 하지만 법적으로 문제가 없어 이제 와서 운행하는 차량을 막을 방법은 없다. 구례군은 “노선 조정 권한을 쥔 전남도가 지난해 10월 최초 반대했을 때 당사자 격인 우리에게 이 사실을 알려줬다면 지역 여론이 들끓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라며 “만시지탄(晩時之歎)”이라고 말했다.
구례군은 관광객 유입에도 크게 도움이 안 된다는 입장이다. 자가용 대신 대중교통으로 지리산을 방문하는 수도권 관광객은 구례읍 버스터미널과 구례구역에 도착해 농어촌버스로 성삼재를 방문한다. 이 과정에서 외지인이 구례 지역 경제에 도움을 주는 여러 경제 활동을 한다. 하지만 경남의 시외버스는 오로지 지리산만을 겨냥한 노선이다.
구례군 관광과는 “하루 6회 운행하는 지금의 농어촌버스로도 전국의 등산객을 성삼재로 나르기에는 충분하다”며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버스가 더 필요한 상황이 아니다. 더군다나 관광객 유입과 지역 경제 활성화를 전혀 기대할 수 없는 노선이다. 환영할 리 만무하다”고 말했다.
안전사고도 우려된다고 한다. 성삼재는 해발 1090m로 꼬불꼬불한 지방도 861호선으로 오르는 곳이다. 보통 11월 중순부터 이듬해 4월 중순까지 동절기에는 구례 쪽에서 차량 통행을 금지한다. 노면이 얼어붙어 사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구례 농어촌버스도 봄·여름·가을 6개월만 운행한다.
구례군은 “경남의 버스는 남원과 함양 쪽에서 861호선을 타고 올라오는데, 우리가 겨울철 운행을 막을 권한이 없다”며 “산악 지형의 특성을 고려해 안전사고 방지를 위해서도 애초에 운행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성삼재 방문 차량은 연간 50만대 수준. 전남도와 구례군은 “지리산 환경 보호를 위해 버스 운행을 반대한다”고 했으나 시외버스 한 대가 일주일에 수차례 지리산을 오르는 것이라 옹색한 주장으로 보인다. 오는 24일부터 동서울발 성삼재행 버스는 금·토요일 오후 11시 50분 출발해 다음날 오전 3시 30분에서 4시쯤 도착한다. 성삼재에선 토·일요일 오후 5시 10분 서울로 향한다.
일부 구례군민은 오는 25일 버스가 오는 지리산 길목에서 피켓 등을 들고 항의 시위를 할 예정이다. 구례군은 “관광객이 타고 있어 차량을 막을 수는 없다”며 “최소한 항의 의사는 밝히겠다”고 말했다. 구례군은 앞으로 함양지리산고속 측과 경남도를 방문해 노선 재조정을 지속적으로 요청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