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라고 모든 병(病)을 다 아는 건 아니다. 과학 기술의 발전에 따라 의술(醫術)도 하루가 다르게 발전한다. 의사들도 진료할 때 궁금한 점이 생기면 동료 의사에게 묻고 싶어한다. 매년 학회에 참석해 끊임없이 새로운 치료법을 공부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근무 상황 때문에 좁은 진료실을 벗어나 따로 시간을 내기는 쉽지 않다.
인터엠디컴퍼니는 이 같은 직업적 특성에 착안해 지난 2017년 10월 의사 전용 온라인 커뮤니티 서비스 '인터엠디(InterMD)'를 선보였다. 인터엠디는 3년 만에 2만4000명 회원을 둔 온라인 공간으로 성장했다.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계동 인터엠디컴퍼니 사옥에서 만난 김양진 이사(사업실장)는 "역설적이게도, 회원 수 늘리기에 집착하지 않은 덕분에 오히려 더 빨리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며 "콘텐츠 질(質)을 높이고 품격 있는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의사들의 지식 공유 놀이터'가 될 수 있었다"고 했다.
―국내에 기존 의사 커뮤니티가 있는데 왜 인터엠디에 가입한다고 보는지.
"기존 커뮤니티 사이트도 좋은 곳이 많다. 우리 같은 순수한 의사 커뮤니티로는 메디게이트, 닥플, 키메디가 있고, 제약사가 운영하는 커뮤니티로는 한미 HMP, 대웅 닥터빌 등이 있다. 우리는 이런 사이트들이 의료진의 요구를 충족하지 못했던 부분에 주목했다. 미국에는 서모, 일본에는 메드피아 같은 폐쇄형 의료 앱이 의사들 사이에 활성화돼 있다. 정작 정보기술(IT) 강국인 우리나라에 의료 전문 폐쇄형 커뮤니티가 없다는 데 착안한 것이다. 의사들이 실명(實名)으로 전문 지식을 토론하는 온라인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IT전문가와 제약 회사 출신 등이 모여 지식 공유에 기반을 둔 플랫폼을 완성했다. Q&A(질의응답) 기반에 실명제라는 콘셉트는 국내에 낯설 때라 주변 의사들조차 만류할 정도였다. 실제로 초기 1년간은 회원이 좀처럼 늘지 않았다. 회원의 신뢰를 쌓기 위해 꾸준히 수준 높은 학술 콘텐츠를 제공하고 사이트를 안전하게 관리하는 데 중점을 뒀다. 모바일(앱)과 PC 모두 편하게 쓸 수 있도록 했다. 1년이 지나자 콘텐츠 품질에 대한 믿음이 생기면서 가입자가 급격히 늘었다. 온라인 커뮤니티 서비스에서는 전체 회원 수보다 이용자의 활동성을 더 중요하게 본다. 가입자 수만 본다면 대형 커뮤니티보다 작지만, 회원 활동성(방문자 수, 게시물 수, 조회 수 등) 측면에선 업계 1위라고 자부한다."
―이용자를 늘리기엔 익명 커뮤니티가 나을 것 같은데.
"익명으로 소통할 때 이용자 수가 늘어나는 것은 맞는다. 하지만 한계도 있다. 익명성을 이용해 낯 뜨거운 글이 여과 없이 공유되는 것을 여러 보도에서 봤지 않나. 이와 달리 인터엠디에는 품격을 갖춘 분이 많다. 애초 신뢰할 수 있는 콘텐츠 기반의 커뮤니티가 목적이었기에 회원 가입을 받을 때 실명 인증, 의사면허 인증 등을 거친다. 실명으로 대화하는 덕분에 답변에 대한 신뢰도가 매우 높다. 환자를 진료할 때 궁금증이 생기면 글이나 사진을 올려 의견을 구하는 식인데, 질의응답이 활발하다. 누적 질문 1만250여 건, 댓글 응답이 4만3000여 건에 평균 답변율이 98%다. 보통 질문한 지 5시간 이내에 댓글이 달린다."
―질의응답을 통해 생각지 못한 희귀병을 발견한 사례도 있다고.
"2018년 안과 전문의가 '아는 분이 지난 30년간 겨울만 되면 근육이 굳어지는 증상을 앓는데 여러 병원을 전전했지만 해결하지 못했다'는 글을 올렸다. 그러자 신경과 전문의가 '국내에 드문 희귀병인 선천성 이상근긴장증으로 보인다'는 댓글을 달았다. 이 환자는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을 찾아 마침내 병명을 확인했다. 얼마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인공 고관절 전치환술(全置換術)을 앞둔 환자의 정강이에 피부 병변(病變)이 생겼다며 문의하는 글이 올라왔다. 피부과 의사들이 '대상포진이 의심되니 수술을 연기하고 피부과 치료를 먼저 하라'고 권유했고, 실제로 수술이 연기됐다. 모두 인터엠디에서 '집단 지성'의 도움을 받은 결과다. 세무·노무·회계 관련 문의도 많다. 이럴 땐 파트너사(社)인 법무법인과 회계법인도 답변을 한다."
―요즘 의사들은 어떤 콘텐츠를 필요로 하는지.
"웹세미나(웨비나)가 인기다. 최근 우리가 자체 웨비나(InterMD Original)를 진행했는데, 700명 넘는 회원이 참여해 여느 웨비나보다 반응이 뜨거웠다. 의사 회원인 3차 병원 교수님이 제안해 진행된 프로젝트였다. 제약사 협찬 없이 의사들이 직접 기획해서 강의하고 진료에 도움이 되는 의견을 공유한 것이다. 인터엠디는 온라인 공간을 제공하고 기술적 도움을 드렸다. 워낙 반응이 좋아 이 프로젝트를 정기적으로 진행하려고 한다. 또 인터엠디는 다양한 최신 의료 이슈에 대한 자료(포스팅)를 업로드하는데, 약물을 주제로 한 게시물의 조회 수가 높다. 약제 문제가 발생하면 대체 처방에 대한 토론이 활발하다."
―코로나19 사태로 제약사들의 대면 영업이 어려워지면서 의사 커뮤니티 사이트가 더 주목받고 있다.
"대한민국 제약 산업에 디지털 마케팅 바람이 부는 것은 단순한 코로나19 여파가 아니라 시대 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이라고 본다. 이미 외국계 제약사들이 몇 년 전부터 온라인 강좌 등을 늘려가고 있었는데, 이제 국내 제약사도 이 같은 흐름에 동참하는 것이다. 인터엠디도 의사와 제약사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제약사가 협찬하는 웨비나를 하더라도, 일방적 강의가 아닌 양(兩)방향 서비스를 한다. 의사들에게 웨비나 전후로 질문을 받아 답을 얻는 식으로 적극적 소통을 추구하면서 제약사도 마케팅 효과에 대한 확신을 얻은 것 같다. 이를 통해 '웨비나와 설문' 같은 다양한 복합 상품 모델을 시장에 제안함으로써 GSK, 보령제약, SK케미칼, 종근당, 화이자, 릴리, 유한양행, 바이엘 등과 디지털 마케팅 협업을 하고 있다. 온라인 학술대회를 위한 지원도 준비하고 있다. 코로나19로 하반기 학술대회는 온라인으로 대체되는 분위기다. 의사 면허를 유지하기 위해선 학술대회에 참가해야 하는 의사들의 상황을 고려해 대한의사협회도 온라인 학회의 연수 평점을 인정하기로 했다. 인터엠디는 온라인 출결 시스템을 갖추고 모바일·PC를 통해 편하게 강의를 볼 수 있도록 중계를 대행한다. 현재 종합건강관리학회 학술대회, 순천향대학병원 복부초음파 및 내시경초음파 진단 워크샵, 대한장연구학회 학술대회 진행 등이 예정돼 있다."
―향후 계획은.
"'의사에게 꼭 필요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포털 사이트'로 성장해 국민 건강권 향상에 기여하는 것이 목표다. 코로나19 사태 대처에서도 알 수 있듯 한국 의료계는 세계적 경쟁력을 갖췄다. 이런 점을 활용해 앞으로 사이트를 글로벌화해 전 세계 회원을 유치하고 싶은 욕심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