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질끈 감고 공을 던지는 송창식. 그는 투혼의 대명사였다.

한화 투수 송창식(35)이 15일 은퇴를 선언하자 팬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고생했다” “수고하셨다”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손가락에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 질병인 버거씨병(폐색성 혈전 혈관염)에 걸려 은퇴를 하고도 다시 마운드로 돌아와 궂은 일을 도맡았던 그는 ‘불꽃 투혼’의 상징과도 같은 선수였다.

참 파란만장한 야구 인생이었다. 청주 세광고를 졸업하고 2004년 드래프트에서 한화에 2차 1라운드 2순위로 지명을 받은 송창식은 입단 첫해부터 선발 투수를 맡았다. 6월까지 7승을 거두며 센세이션을 일으켰지만 결국 팔꿈치가 고장 났다. 토미 존 수술을 받고 2005시즌을 건너뛰었다.

2008년엔 버거씨병이 발병해 유니폼을 벗었다. 모교인 세광고에서 투수 코치로 일하면서 재활을 병행한 그는 기적처럼 손가락의 감각이 돌아오며 2010시즌 다시 한화 유니폼을 입었다. 그리고 ‘마당쇠’란 별명처럼 선발과 구원을 가리지 않고 팀이 필요할 때마다 마운드에 올랐다.

송창식 하면 떠오르는 시즌은 김성근 감독 재임 시절인 2015~2016시즌이다. 2015년 5월 1일부터 12일까지 그는 3연투 한 번을 포함해 8번 마운드에 올랐다. 8월 한 달 동안엔 선발로 세 번, 구원으로 여섯 번 등판하기도 했다. 그해에만 109이닝을 던졌다. 버거씨병 전력이 있는 투수에게 너무 많은 공을 던지게 한다며 팬들 사이에선 김성근 감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2016년 4월 14일 한화-두산전에서 송창식의 공에 스윙을 하지 않는 오재원의 모습.

2016년엔 그 유명한 ‘벌투 사건’이 벌어졌다. 4월 14일 두산전에서 선발 김용주에 이어 0-1로 뒤진 1회 2사 만루 상황에 올라온 송창식은 난타를 당했다. 오재일에게 곧바로 만루홈런을 얻어맞았다.

송창식은 2회 들어서도 3점을 내줬다. 보통의 벤치였다면 첫 타자인 김재호에게 홈런을 맞았을 때 정상 구위가 아닌 것으로 판단하고 불펜을 가동해야 했지만 당시 불펜엔 몸을 푸는 투수가 한 명도 없었다. 3회엔 5점을 허용했다. 3이닝 만에 두산은 선발 전원 안타를 기록했다. 이 경기를 중계한 안경현 SBS스포츠 해설위원은 “앞으로 궂은 일을 많이 해야 할 선수인데 바꿔줘야 하지 않을까 한다. 너무 가혹하고 안쓰럽다. 이러면 마음이 다친다”고 말했다. 3회가 끝난 상황에서 스코어는 0-13. 이어진 한화 공격은 삼자 범퇴로 끝났다.

송창식은 4회에도 올라왔다. 김재환에게 솔로 홈런을 얻어맞았다. 4회까지 송창식의 투구 수는 73개. 5회초가 되자 한화 불펜에 드디어 몸을 푸는 투수가 등장했다. 송창식의 직구 구속은 시속 120km대까지 내려갔다. 민병헌의 홈런으로 점수는 2-16까지 벌어졌다.

이때 오재원이 야구팬들의 기억에 남을 장면을 만들었다. 송창식이 힘을 짜내 겨우 던진 공에 한 번도 스윙을 하지 않고 루킹 삼진을 당했다. 평소 오재원의 승부욕을 감안하면 어떻게든 휘두를 공이었다. ‘고의 삼진’이라고 부를 만한 장면이었다.

삼진을 당한 뒤 조용히 더그아웃 쪽으로 걸어간 오재원은 경기 후 “칠 수 없는 공이었다”고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한화 벤치도 포기한 투수를 보호하기 위해 상대 팀 타자가 동업자 정신으로 자신의 스탯도 포기하면서 나선 것이다. 송창식은 5회까지 90개의 공을 던지고 12실점(9피안타 3사사구)한 뒤 6회에 교체됐다.

어려울 때마다 마운드에 올라온 송창식에 대한 한화 팬들의 마음은 각별하다.

송창식은 2015시즌부터 3년 연속 매년 60경기 이상씩 던졌다. 혹사 여파 탓인지 2018시즌부터 깊은 부진에 빠지며 2군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리고 15일 “마지막까지 멋진 모습을 보여 드리고 은퇴를 하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했다”며 “팬 여러분께 그라운드에서 투구하는 모습을 보여 드리고 떠나지 못하는 게 가장 아쉽다”며 은퇴를 선언했다. 최원호 한화 감독대행은 15일 KT전에 앞서 “스프링캠프에서 폼도 바꿔보고 여러 노력을 다했는데 잘 되지 않았다. ‘제2의 인생’을 응원한다”고 말했다.

송창식의 최종 기록은 431경기 43승41패 51홀드 22세이브, 평균자책점 5.31. 하지만 송창식의 투구는 숫자 이상의 울림을 줬다. 끊임없이 자신과 싸워가며 마운드를 지키다 결국 작별 인사를 건넨 송창식에게 팬들은 아낌없는 박수와 환호를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