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숙박 서비스 스타트업 위홈은 지난 4월 6일 내국인을 상대로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7월 여름철 여행 성수기인 지금까지도 서비스 시작을 못 하고 있다. 원래 내국인을 상대로 한 도심 공유숙박은 에어비앤비를 포함해 대부분 불법이다. 하지만 위홈은 작년 11월 서울 지하철역 반경 1㎞ 안에 있는 주택 빈방을 내국인에게 빌려줄 수 있도록 허용하는 규제 샌드박스를 통과했다. 위홈은 '한국형 에어비앤비'를 목표로 5개월여간 준비를 거쳐 서비스에 참여할 사업자(숙박 제공 호스트) 50여 곳도 모집했다. 하지만 서비스 출시 예정 당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제동을 걸고 나섰다. 숙소에 화재와 같은 사고가 날 경우를 대비해 사업자를 대신해 위홈이 보험을 들어야 한다는 요구였다.

위홈은 보험사 9곳에 문의해 봤지만, 정부 요구에 맞는 보험 상품은 없었다. 보험 상품 설계도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들었다. 위홈은 정부에 이런 사정을 호소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 과정에 공유숙박 서비스에 참여하겠다던 사업자 몇몇이 철수했다. 위홈은 애초 계획했던 서비스 출시일보다 석 달 넘게 지난 10일이 돼서야 정부로부터 "보험에 들지 않아도 허가를 내주겠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조산구 위홈 대표는 "성수기가 코앞인데 사업 출시가 지연되면서, 참여한 업자가 큰 피해를 봤다"며 "최대한 서둘러 사업 개시를 준비할 계획"이라고 했다.

정부의 지나친 규제에 막혀 스타트업이 사업을 접거나 지연되는 일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정부는 스타트업에 규제가 없는 '샌드박스'에서 마음껏 뛰어놀아 보라 하지만 정작 기업들은 또 다른 '규제 허들'에 막혀 시간만 허비하거나 규제를 넘지 못하고 포기하는 게 현실이다.

◇규제 넘어 규제

위홈이 서비스를 시작하더라도 규제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정부는 연내 관광진흥법을 개정해 도심 공유숙박을 전면 허용하겠다는 계획이다. 대신 영업일을 연간 180일로 제한한다는 조건을 달겠다고 했다. 보통 숙박공유가 빈집 한 채를 1년 내내 빌려주는 방식이 대부분이어서 영업일 제한은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카풀을 평일 하루 4시간만 운영하도록 규제한 후로 풀러스, 어디고 등 국내 카풀업체가 줄지어 서비스를 접는 것과 마찬가지다. 반면 에어비앤비 사업자들은 같은 규제를 받고 있지만, 단속이 제대로 안 돼 암암리에 내국인을 상대로 한 공유숙박 서비스를 이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공유숙박 사업자는 "규제를 다 지키려면 사업을 접어야 하고, 사업을 하려면 언제 범법자가 될지 모르는 게 우리의 현실"이라고 했다.

◇온라인 환전 서비스도 사업 중단

국내 최초로 온라인 환전 서비스를 제공하던 스타트업 그레잇은 지난해 11월 아예 서비스를 중단했다. 그레잇은 2018년 5월 앱을 통해 환전하면 공항 등 이용자가 원하는 장소까지 외화를 전달하는 서비스를 내놨다. 수수료가 시중 은행보다 최대 50% 쌌다. "수수료도 싼 데 공항까지 직접 돈을 갖다주니 정말 편하다"는 소문을 타고 1년여 만에 누적 거래액이 500억원까지 늘었다.

사업 규모가 커지자 지난해 4월 인천공항공사가 "공항에서 서비스할 거면 정식 사업 입찰을 받아라"며 제동을 걸고 나섰다. 그레잇 이사로 참여했던 권용근씨는 "(인천공항에) 1평 정도 작은 부스 하나 계약하는 데 한 달 900만원 정도 드는데, 그 돈을 다 내면 저렴한 수수료로 환전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레잇은 기획재정부에 이런 상황을 호소했지만, 별다른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레잇은 규제를 피해 전국 편의점에서 환전한 돈을 받을 수 있는 방식으로 서비스를 바꾸려 했지만 새로운 규정을 만들기 전엔 불법이라는 답만 들었다. 권씨는 "앞이 안 보이는 규제 탓에 결국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중소기업 규제 추정 비용만 50조원 넘어

정부는 올해 부처별 창업 지원 사업을 조사한 결과 16부처에서 모두 1조4517억원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작년 지원 규모(1조1181억원)보다 30% 지원 규모를 늘렸다. 하지만 중소기업 옴부즈만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우리나라 규제 비용을 조사한 결과 매출 대비 규제 비용 비율이 4.5%에 달했고, 중소기업 산업 전체로 봤을 때 규제에 따른 비용은 연간 50조6000억원으로 추산됐다.

허용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나열한 뒤 나머지는 모두 금지하는 '포지티브' 방식 규제 탓에 불확실성이 너무 커지는 게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