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아프리카 말리에서 이브라임 부바카르 케이타 대통령이 “자리에서 내려오라”는 탄핵 요구를 받고 있다. 탄핵 시위대를 이끄는 사람은 ‘이맘’(이슬람교 교단의 지도자)이다. 대통령이 시위대의 요구를 받아들여 헌법재판소를 해산하겠다고 밝혔지만 시위는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종교지도자가 정치지도자보다 우위를 점하는 21세기판 ‘카노사의 굴욕’이 재현되고 있다.

10일(현지 시각) 이브라임 부바카르 케이타 대통령이 합의를 거절한 직후 이맘 마흐무드 디코와 야당 지지자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있다.

케이타 대통령이 11일(현지 시각) 시위대의 요구에 따라 헌법재판소를 해산하기로 했다고 알자지라 통신이 보도했다. 전날 길거리 시위에서 충돌로 4명이 사망한 뒤였다. 말리에서는 지난 3월 치러진 의회선거를 두고 지난달부터 세 차례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말리 헌법재판소는 의회선거 결과를 뒤집는 판결을 해 시위대의 비판 중심에 섰다. 케이타는 “헌법재판관을 새로 구성해 선거에 대해 제기된 분쟁 해결 방법을 찾겠다”며 “필요하다면 시위대 요구대로 재선거를 치를 수도 있다”고 했다.

이브라임 부바카르 케이타 말리 대통령

그러나 대통령의 이 같은 발표에도 시위는 계속됐다. 시위대는 정부의 무능함을 지적하며 “이런 정권은 필요 없다”고 외쳤고, 대통령 스스로 물러날 것을 요구했다. 케이타 대통령은 2018년 재선에 성공해 5년 임기를 보장받았지만 탄핵 위기에 봉착했다.

시위대를 움직이는 배후에는 이맘 마흐무드 디코가 있다고 BBC는 전했다. 말리는 인구 90%가 이슬람교를 믿는 나라다. 이슬람교 지도자인 이맘 디코는 야당과 합세해 반정부 탄핵 시위를 이끌고 있다.

디코가 정치 전면에 선 것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지난해에는 총리 파면을 요구하는 시위를 이끌기도 했다. 특히 이번 시위에서는 누구보다 시위대에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케이타 대통령이 정국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야당을 만나기에 앞서 디코부터 만났을 정도다.

12일(현지 시각) 이맘 마흐무드 디코가 시위 사망자를 위로하는 예배를 드리는 동안 시위대가 모스크 밖에 모여서 기다리고 있다.

디코는 2009년 고위 이슬람 의회 의장으로 처음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보수적 성향이 짙은 그는 여권(女權) 개선을 위한 가족법 개정 움직임에 물타기를 시도하며 대규모 시위를 이끌어내 아마두 투르마니 투레 당시 말리 대통령을 압박했다. 2012년 이슬람 무장세력이 말리 북부를 점령했을 때는 직접 무장세력 사령관을 만났다. 문제가 대화로 해결되지 않자 이듬해 프랑스 군대를 말리에 끌어들여 소탕 작전을 벌이기도 했다. 최근 들어 그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BBC는 유엔 평화사절단과 유럽연합(EU) 파견단도 디코의 의중을 주시하고 있다고 하며 그를 “그는 보수주의자(conservative)이지만 포퓰리스트(populist)”라고 전했다.

BBC는 케이타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진 않더라도 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해 상징적인 존재로만 남기를 택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케이타 대통령은 시위대로부터 무능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말리는 몇 년 째 이슬람 극단주의자(지하디스트)와의 전쟁을 벌이는 중인데 프랑스 군대를 국내에 들이고도 아직 이 세력을 박멸하지 못했다. 인접국인 부르키나파소와 니제르도 이 전쟁에 휘말려 있다. 말리는 원래도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인데 이 전쟁으로 경제가 더 엉망이 되었다고 알자지라는 전했다. 거기다 최근 코로나 사태까지 겹쳐 정부에 대한 불만이 더 커진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