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나라현 주택 강도단, 3월 오사카 주택 강도단, 1월 효고현 전당포 습격단, 작년 구마모토현 자동차 보험 사기단.

최근 한 달 사이 일본 경찰에 각각 붙잡힌 범죄 용의자들이다. 서로 다른 지역에서 다른 범행을 벌이다 체포된 이들이지만 경찰은 이들에게서 중요한 공통점 한 가지를 발견했다. 용의자들이 모두 ‘한구레(半グレ)’ 집단 소속이라는 점이다. 이들 사건이 실린 각각의 기사에선 늘 같은 반응이 베스트 댓글을 차지한다. ‘또 한구레구나. 대책은 없는 것인가….’

한구레는 최근 일본 매체에 소개되는 웬만한 집단 범죄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름이다. 조직폭력단(흔히 야쿠자) 등에 속하지 않으면서 반사회적 행동이나 범죄를 저지르는 집단을 의미한다. 한구레라는 말은 착실한 일반인과 조폭의 가운데에 있다고 해서 ‘한(半)’에 ‘비뚤어지다’라는 뜻의 ‘구레루(グレる)’와 회색 지대를 의미하는 ‘그레이(グレ-)’ 등을 합친 신조어라고 한다. 2011년 한 언론인이 쓰기 시작한 이후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아사히 신문에 따르면 한구레는 20세기 말 준동했던 폭주족 회원들의 모임에서 시작해 최근에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다양한 조직들이 생겨나고 있다. 야쿠자와는 달리 폭력을 행사하는 일 보다는 보이스 피싱, 고리 사채, 보험 사기 등 금융 범죄를 업으로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철거업, 유흥업 등 소위 ‘깡패’들이 맡았던 일들에 한구레가 손을 담그고 있다. 코로나 사태가 발발한 이후엔 마스크를 사재기한 뒤 고액에 되팔아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지난해 말에는 일본 한 주간지가 ‘2019년 4월 벚꽃을 보는 모임에 한구레 조직원이 참석해 일본 아베 신조 총리의 부인인 아키에 여사와 사진을 찍었다’고 보도해 파문이 일기도 했다. 그만큼 한구레 조직원은 흔히 볼 수 있는 존재가 됐다는 얘기다.

지난 23일 효고현 고베시에서 한구레 집단에 강도를 당한 상점을 경찰과 소방 당국이 조사하는 모습. '89(バグ)'라는 이름의 한구레 강도들은 점원에게 스프레이를 분사하고 시계 등을 훔쳤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일본 전역에서 한구레가 말썽을 피운다는 소식이 끊이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조직 범죄를 관장하는 법망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일본 경찰은 1990년대부터 야쿠자를 대상으로 폭력단 대책법을 시행하고 있다. 야마구치구미, 이나가와카이 등 주요 야쿠자 조직은 경찰이 관리하는 폭력단으로 지정돼 여러 사회 활동에 제한을 받는다. 반면 한구레는 지정 폭력단이 아니기 때문에 집단 활동에 제약이 없다.

또 야쿠자가 고령화로 활력을 잃어가는 것과 달리한구레는 젊은 층 조직원이 꾸준히 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2012년 주간지 뉴스포스트세븐은 “폭력단(야쿠자) 멤버는 고령 조직원이 많아 IT 기술이나 인터넷, 스마트폰을 사용할 능력이 없지만, 한구레 구성원은 날 때부터 전자 기기에 둘러싸여 자랐기 때문에 IT 등을 이용한 범죄에 능하다”고 썼다. 한구레 조직은 역할 분담을 하면서도 절대적 수직 관계로 이뤄져 있지 않기 때문에 젊은 층을 끌어들인다는 분석도 있다.

조직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일부 한구레 집단은 야쿠자나 다름 없는 거대 단체가 되기도 한다. 도쿄 지역에선 ‘관동 연합’, 오사카 지역에선 아마추어 격투기 선수들의 모임이 모체가 된 ‘츠와모노(強者)’가 악명을 떨치고있다. 중국인 2·3세 들이 조직한 드래곤이라는 단체도 주요 한구레 집단으로 알려져 있다.

규모 뿐 아니라 조직이나 범죄 성격도 야쿠자를 닮은 경우가 생겨나 일부 조직이 일본 경찰로부터 ‘준폭력단’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실제로 야쿠자에서 한구레로, 한구레에서 야쿠자로 단체를 옮기는 일이 있다고 한다. 한구레 쪽이 활동이 자유롭다 보니 후자의 경우가 많은 것으로 일본 매체들은 보고 있다. 작년 기준 전국 야쿠자 인원은 15년 연속 감소해 3만명 밑으로 떨어졌는데, 일본 경찰청은 감소 인원 중 일부가 한구레로 이동했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고 아사히 신문이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