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시절 당시 함께 공부하던 남학생들은 6·25 전쟁으로 전쟁터에 나가 대부분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늘 그들의 몫까지 다해야 하며, 조국에 빚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29일 서울 장충동 남산제이그랜하우스에서 열린 '라이온스 인도주의상(Lions Humanitarian Award)' 시상식에서 마흔일곱 번째 수상자로 선정된 이길여 가천대 총장은 "앞으로도 나눔과 봉사에 헌신하겠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총장은 상금 25만달러(약 3억원) 전액을 출연해 의료봉사단을 만들겠다고 했다.

국제라이온스협회는 1917년 미국 시카고 사업가 멜빈 존스가 '성공한 사람들의 사회봉사'를 촉구하며 창설한 사회봉사 단체로 전 세계 200여 나라에 140만여 회원을 두고 있다. 매년 인도주의 활동에 앞장선 개인이나 단체를 선정해 라이온스 인도주의상을 시상한다. 역대 수상자로 마더 테레사 수녀(1986년),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1996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무하마드 유누스(2008년) 등이 있다. 지난해에는 전시(戰時) 성폭력 퇴치 운동을 벌여 2018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드니 무퀘게가 받았다.

29일 이길여(오른쪽) 가천대 총장이 국제라이온스협회 최중열 국제회장으로부터 ‘라이온스협회 인도주의상’을 받고 있다.

올해 수상자인 이길여 총장은 1957년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이듬해 인천에서 이길여산부인과를 개원했다. 병원비를 못 내는 환자가 많아 병원마다 보증금을 받고 입원시키던 시절 그는 '보증금 없는 병원'을 만들었다. 형편이 어려운 환자는 무료로 진료했다. 이 총장은 "가난한 사람들이 제대로 된 치료 한번 못 받고 죽어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고 했다.

1959년부터는 배를 타고 서해 지역 섬을 돌며 여성들을 대상으로 자궁암 무료 검진을 했다. 1992년 새생명찾아주기운동본부를 설립해 중증 환자를 무료로 수술하도록 지원하고 있고, 약 5000명이 이곳의 도움을 받았다.

이 총장은 의료법인을 세운 한국 최초 여성 의사로도 잘 알려져 있다. 지난 1978년 사재를 털어 종합병원인 '의료법인 인천길병원'을 출범시켰고 의료 취약지인 경기 양평, 강원 철원, 인천 백령도 등에서 길병원을 운영했다. 이 밖에 무의촌(無醫村) 의료봉사, 해외 심장병 환자 초청 무료 수술 등 60여 년간 의료를 통해 봉사를 실천해왔다. 평생 소외된 환자를 돌보고, 인재를 키우며, 기초의학 발전을 위해 노력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같은 공로로 이 총장은 지난 2003년 1등급 훈장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기도 했다. 2013년에는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아시아 기부 영웅 48인'에 이름을 올렸다.

이 총장은 2000년 경원대 총장을 시작으로 21년째 대학 총장을 지내고 있는 교육자이기도 하다. 1997년 가천의과대학을 설립한 데 이어 대학 4곳을 통합해 2012년 가천대를 출범시켰다. 2006년 뇌과학연구원, 2007년 바이오나노연구원, 2008년 이길여 암·당뇨 연구원을 세우는 등 후진 양성에도 힘써 기초의학 발전에도 공헌했다.

이 총장 측은 이날 상금을 출연해 국제라이온스협회와 함께 가칭 '가천-국제라이온스협회 의료봉사단'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선천적 심장병을 앓고 있는 어린이를 치료하는 활동과 국내 이주노동자 가정의 이른둥이(출생 시 몸무게 2.5㎏ 미만) 치료를 지원할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