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여름 디저트의 제왕은 '빙수(氷水)'이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여름 한 철 먹는 별미로 인식되던 빙수가 국내 디저트계의 패권을 차지한 건 2010년대에 들어와서다.

2011년 서울 신라호텔이 애플망고 빙수를 선보였다. 제주산 애플망고를 듬뿍 올린 '애망빙(애플망고빙수)'은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이후 여름마다 이 애망빙을 먹으려고 호텔 로비에 길게 줄을 서서 대기하는가 하면, 외국에서도 애망빙을 먹겠다고 찾아오는 마니아까지 생겨났다. 그러자 다른 호텔들도 속속 빙수를 여름철 시그니처(대표) 디저트로 내놓았다. 2013년에는 '설빙'을 시작으로 빙수 전문점들이 앞다퉈 문을 열면서, 한여름 잠깐 먹는 별미 정도로만 인식되던 빙수는 여름을 대표하는 먹거리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했다.

인류가 빙수를 즐긴 역사는 오래됐다. 고대 로마 황제들은 여름이면 알프스 만년설을 네 마리 말이 끄는 마차에 실어 로마로 급송한 뒤 이걸 갈아서 레몬즙과 꿀을 뿌려서 먹었다. 중국 송나라에서는 복날 황제가 꿀과 팥을 섞은 얼음을 대신들에게 하사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하지만 극소수만이 즐기는 호사였다. 눈 덮인 산에서 얼음을 공수하거나 겨울에 얼음을 잘라다가 여름까지 보관하려면 노력과 비용이 보통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빙수를 일반 대중도 맛보게 된 건 20세기 들어서이다. 1876년 독일 카를 린데가 암모니아를 냉각제로 사용하는 압축냉장장치를 발명하면서 인류는 인공적으로 얼음을 만들 수 있게 됐고, 덕분에 세계 각국에서 빙수가 다채롭게 발달했다. 가키고리(かきごおり)라 부르는 일본 빙수는 1860년대 후반 요코하마의 빙수가게에서 탄생했고, 1880년대 후반 빙삭기가 개발되면서 대중적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가키고리는 1890년대 우리나라에도 유입됐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인기 여름 별미로 자리 잡았다. 특히 얼음 위에 단팥을 얹은 고리아즈키(氷小豆)가 국내 소개된 후 꾸준히 개량-발전하면서 현재 한국의 팥빙수로 진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가키고리는 시로쿠마 등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 얼음 가루에 시럽만을 뿌려 얼음 자체의 맛을 즐기는 데 초점을 맞춘다. 반면 한국은 단팥은 물론 아이스크림-연유-떡 등 온갖 토핑을 더해 풍성한 맛을 즐기는 쪽으로 진화했다.

한국 빙수는 응용력이 대단하다. 그 해 음식과 디저트 첨단 트렌드가 모두 반영된다. "한국 디저트 역사를 파악하려면 빙수 트렌드를 살펴보라"는 말이 있을 정도. 인절미, 마카롱, 치즈케이크, 티라미수, 브라우니 등 한국 전통 떡이건 프랑스 과자이건 가리지 않는다. 샴페인, 와인, 코냑 등 술과 몸을 섞기도 한다. 빙수 전문점들이 봄에는 쑥 빙수, 가을에는 고구마-단호박 빙수, 겨울에는 밤 빙수 등 계절마다 특화된 시즌 메뉴를 선보이면서 '빙수=여름'이라는 고정관념도 깨진 지 오래다.

이처럼 빙수는 어떤 토핑이나 계절이건 가리지 않고 받아들이는 왕성한 흡수력을 통해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덕분에 국내 디저트계 최상위 포식자의 위치를 앞으로도 굳건히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