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군사행동을 예고하고 이를 '보류'하는 과정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남매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김여정은 문재인 대통령을 비난하는 담화를 시작으로 군사도발을 예고했고, 김정은은 23일 군사행동 계획을 보류했다. 지난 20일 동안 김정은 남매가 '북 치고 장구 치고'를 다 한 셈이다.

드러난 현상만 보면 김여정은 긴장을 끌어올리는 '악역'을, 김정은은 파국을 막는 역할을 맡은 것처럼 보인다. 이른바 '굿캅, 배드캅' 분담론이다. 그러나 김정은 1인 체제라는 북한 특성상 남매의 역할 분담은 철저한 계획 속에 진행된 것으로 분석된다.

김정은은 이번 과정에서 한 번도 전면에 등장하지 않았다. 미·북 정상회담과 남북 정상회담 등을 통해 만든 이미지를 유지하면서, 대남 비난과 도발은 동생에게 맡겼다. 동생은 때리고 오빠는 다독이는 모습은 지난 3월에도 있었다. 김여정은 당시 '청와대의 저능한 사고방식에 경악을 표한다'는 비난 담화를 냈지만, 그다음 날 김정은은 문 대통령에게 코로나 위로 친서를 보냈다.

김정은이 이날 군사계획을 보류한 것은 한국 정부에 대한 유화 메시지라기보다는, 향후 미국에 제재 해제를 요구하기 위한 여지를 남기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김정은은 정상외교에서 미국과 중국을 상대하고, 대남 관련 분야는 김여정이 맡을 수도 있다. 청와대와 여권이 김정은의 이날 보류 결정에 대대적 환영 메시지를 내지 않은 것도, 북한의 '한국 무시' 전략이 고착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김여정은 이번 과정에서 김정은의 후계자, 2인자로서 확실한 기반을 다졌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김여정이 지난 4일 담화를 내자 통일전선부와 군 총참모부는 그녀의 담화를 이행하는 모습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지난 22일 국회에서 김여정에 대해 "실질적 2인자 역할을 하고 있다"며 "악역을 담당하고 있다"고 했다. 김정은의 지시를 이행하고 대리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기반을 다졌다는 것이다. 대북 소식통은 "북한은 1인자의 위상을 절대화하기 위해 그에 버금가는 2인자를 내세워 왔다"며 "김정일 등장 이후 김일성은 신의 반열에 올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