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군사지도인 '요계관방지도'. 지도 위 백두산 부근에 어지럽게 찍힌 발자국이 보인다. 6·25 전쟁 당시 북한군의 군홧발 자국이다.

북한군의 군홧발 자국이 찍힌 조선시대 지도, 깨진 도자기 파편, 불에 타 녹아내린 통일신라 범종….

이 전시의 주인공은 성치 않은 유물들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이 6·25 전쟁 70주년을 맞아 개최하는 테마전 ‘6·25 전쟁과 국립박물관-지키고 이어가다’는 전쟁으로 인해 수난 당한 문화재를 소개하고 서울 점령 이후 9·28 수복 때까지 국립박물관이 겪은 위기와 피해를 보여준다. 코로나 여파로 누리집과 유튜브를 통해 온라인 전시로 우선 개막했다.

상처 투성이 문화재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조선시대 군사지도인 ‘요계관방지도’에는 군홧발 자국이 어지럽게 찍혔다. 6·25 전쟁 당시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이 당시 유물을 넣어두던 경복궁을 드나들면서 짓밟은 흔적이다. 선림원지 동종은 오대산 월정사에서 보관되다 1951년 1월 월정사가 불타면서 녹아내렸고, 19세기 청화백자 항아리는 몸통이 날아간 채 밑부분만 덩그러니 남았다.

지도를 확대한 사진. 당시 유물을 넣어두던 경복궁 건물에 북한군인들이 드나들면서 박물관의 소장품들이 많은 피해를 입었다.
6·25 전쟁 때 깨진 청화백자 항아리. 전쟁으로 몸통이 없어져 버렸고 밑부분만 덩그라니 남았다.

극적으로 살아남은 문화재도 있다. 6·25 전쟁에 참전한 미군 찰스 F. 슈미트가 강원도 철원의 어느 사찰 스님으로부터 건네받은 관세음보살상이다. 스님은 “절대로 북한군에게 뺏기지 말아달라” 부탁했고 슈미트는 끝까지 약속을 지켰다. 미국으로 건너갔던 이 불상은 1999년 우리 곁에 돌아왔다.

미군으로 참전한 찰스 F.슈미트가 철원의 어느 사찰 스님 부탁을 받고 지켜낸 관세음보살상.

전쟁 중 박물관은 또 다른 전쟁을 치렀다. 중공군의 참전으로 서울마저 위험해진 1950년 말, 국립박물관은 문화재를 부산으로 옮기는 작전에 착수한다. 부산 미국공보원장 유진 크네즈의 도움을 받아 부산행 열차를 확보했고, 박물관 직원들은 주요 소장품을 몇 차례에 걸쳐 기차로 옮겨 부산 광복동 창고에 보관했다.

“어떠한 실수가 있으면 후대에 죄인이 된다는 신념이 있었다”(김재원 당시 국립박물관장) “한국 미술품이 북한군의 수중에 넘어가거나 더 나쁜 일이 생겨 손상을 입는다면 극심한 비난을 받게 되리라는 것을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유진 크네즈)….

서울을 점령한 북한은 국립박물관 문화재를 북한으로 옮기려 했다. 이때 국립박물관 직원들이 최대한 천천히 포장하며 시간을 번 일화는 유명하다. “고려자기를 포장했다. 크기를 재지 않고 했다고 하여 다시 풀었다가 쌌다. 또 고려자기를 싸는 데는 많은 종이를 써야 되고, 회화는 습기가 안 들도록 싸야 되고, 불상은 머리 부분이 약하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3일간 겨우 5개의 포장을 마쳤다…(중략) 그들 눈앞에서의 대담한 지연 작전은 생명을 건 싸움이었다.”(김재원, ‘경복궁 야화’ 중에서)

부산에 내려온 정부는 경주분관이 소장하던 금관총 금관 등 유물 139점을 한국은행 금괴와 함께 미국 뱅크 오브 아메리카(Bank of America)로 피신시켰다. 그때 미국행 비행기를 탔던 신라의 기마인물상도 전시장에 나왔다. 1953년 국립박물관이 피란지 부산에서 개최한 제1회 현대미술작가 초대전에 김환기가 출품한 ‘돌’도 당시의 설명 카드와 함께 볼 수 있다. 1957년 미국 8개 도시를 순회한 ‘한국 국보전’은 한국 문화재 최초의 해외 순회전. 한국이 전쟁의 피해를 딛고 부흥하고 있음을 세계에 알린 신호탄이었다. 전시는 9월 13일까지.

1953년 국립박물관이 피란지 부산에서 개최한 제1회 현대미술작가 초대전에 출품된 김환기의 '돌'.
당시 전시에 사용된 설명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