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 히어로즈의 박정음(31)은 프로 9년차의 중견 선수다. 하지만 한 시즌도 100경기 이상을 뛰어본 적이 없다. 그래도 키움 팬들을 그를 사랑한다. 늘 간절한 모습으로 최선을 다해 달리기 때문이다. 어떤 선수가 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매일 간절하게 열심히 하는 선수가 되겠다”고 답한 박정음. 그래서 별명도 ‘간절음’이다.
그의 1군 데뷔 첫 안타는 2016년 4월 7일 한화전이었다. 1루쪽 땅볼을 친 뒤 전력으로 내달려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시도해 간발의 차로 세이프됐다. 박정음다운 첫 안타 장면이었다. 그해 타율 0.309, 69안타 4홈런 26타점으로 활약하던 그는 9월 2일 SK전에서 주루를 하다가 중족골 골절로 시즌을 마감했다. 뼈가 부러진 직후에도 3루까지 전력 질주하는 그의 모습에 팬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박정음은 이후 주로 백업으로 뛰었다. 지난 시즌엔 타율 0.197, 14안타 7타점으로 부진했다. 연봉은 4400만원으로 삭감됐다.
올 시즌에도 박정음은 대수비와 대주자로 주로 나선다. 지난달 21일 SK전에선 10회말 무사 2루 상황에서 끝내기 안타를 치며 9대8 승리를 이끌었다. 이날은 박정음이 올 시즌 처음으로 타석에 들어선 날이었다. 첫 타석에선 플라이볼로 물러났지만, 두 번째 타석에서 승부를 결정짓는 안타를 쳤다.
18일 키움과 롯데의 시즌 6차전. 연장 10회말 1사에서 박정음이 타석에 들어섰다. 박정음은 1루수와 2루수 사이를 꿰뚫는 안타를 쳐냈다. 발 빠른 박정음이 1루로 나가자 투수 오현택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다음 타자는 주효상. 오현택은 박정음을 묶어두기 위해 견제구를 여러 차례 뿌렸다. 박정음은 더그아웃 쪽으로 달려가 타격 장갑을 벗고 슬라이딩 장갑을 끼었다. 돌이켜 보니 곧 다가올 미래를 암시하는 장면 같았다.
주효상이 때린 벼락 같은 타구가 담장을 때렸다. 타구가 롯데 우익수 손아섭의 글러브를 넘어간 것을 확인한 박정음은 잠시 넘어질 뻔 했지만 이내 균형을 되찾고 번개처럼 내달렸다.
롯데가 빠른 중계 플레이로 홈에서 승부가 벌어졌다. 하지만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으로 들어온 박정음이 빨랐다. 3대2로 키움이 승리한 순간 박정음은 드러누워 잠시 환호한 뒤 동료들과 기쁨을 나눴다. 이 경기를 중계한 심재학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주효상의 안타도 좋았지만, 박정음의 주루 플레이가 환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이를 악물고 간절하게 달리는 박정음의 전력질주가 만들어낸 결승점이었다.
팀 동료들은 박정음을 두고 “너무 고마운 선수”라며 “말려야 할 정도로 허슬 플레이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박정음의 투혼으로 2연승을 내달린 키움은 19일부터 SK와의 3연전에 돌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