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남북 연락사무소가 폭파되고 이 지경까지 오니 화도 나고 좌절감을 느낀다"고 했다. 북한이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국민이 더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했는데 대다수 한국 국민은 북의 이런 모습이 그다지 놀랍지 않다. 너무나 익숙하기 때문이다.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윤건영 의원은 "북한도 정상 국가라면 기본을 지켜달라"고 했다.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윤 의원은 2018년 3월 대북 특사로 평양에 다녀오고 3차례 남북 정상회담에서 대통령을 보좌했다. 이런 사람이 북을 정말로 '정상 국가'로 알고 있다는 건가. 인간으로서 누릴 주민의 기본권 자체를 말살하고, 권력을 세습하고, 공개 처형을 밥 먹듯 하며, 정치범 수용소를 운영하고, 위조지폐와 마약을 거래하고, 국제공항에서 화학무기로 사람을 암살하고, 심지어 우리 영토 민간인들을 향해 포격을 한 집단이 '정상 국가'로 보인다는 것이다. 속자고 작정을 한 듯하다.

청와대 대변인은 북한이 대북 특사 파견 제의를 일방적으로 공개한 것은 전례 없는 비상식적 행위라고 비판했다. 특사 제안 공개가 처음인 양 말했지만 북한은 작년 11월에도 정부가 김정은을 부산 아세안 정상회담에 초청하면서 "위원장이 못 오시면 특사라도 보내달라고 간절하게 청했다"고 밝혔다. 이명박 정부 때는 남북 베이징 비밀 접촉을 까발리면서 "남측이 천안함 사과와 정상회담 개최를 애걸하며 돈 봉투까지 내밀었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이런 몰상식과 외교적 무례를 서슴없이 해치우는 체제다.

북한은 대한민국을 현금 인출기로 취급하거나 미국을 움직이는 데 필요한 지렛대로만 써먹어 왔다. 2000년 6월 남북 첫 정상회담이 하루 연기된 것은 정상회담 뒷돈으로 약속했던 4억5000만달러가 기일 내에 입금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북한은 5년 임기 한국 정권이 이용 가치가 있다고 판단될 때까지만 대화와 접촉을 이어 간다. 더 이상 빨아먹을 단물이 없으면 등을 돌린다. 김정일은 김대중 정부 임기 초·중반 두 차례 북한에 간 임동원 특사와는 5시간씩 시간을 내서 환담을 나눴지만, 임기 종료 직전인 2003년 1월 말 방문한 임 특사는 사흘 동안 만나주지 않고 돌려보냈다. 쓸모없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1차 남북 정상회담 때 김 전 대통령이 맸던 넥타이까지 빌려 매고 북에 "대화의 창을 닫지 말라"고 호소한 것은 북의 생리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다.

대통령은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될 것 같다"고 아쉬워하고 청와대 대변인은 북측에 "남북 정상 간 쌓아온 신뢰를 훼손하지 말라"고 했다. 정성과 노력으로 축적한 신뢰로 외교 현안을 푸는 것은 정상적 국가 사이의 얘기다. 김씨 왕조 체제는 국가 전체가 병영이자 감옥이다. 체제의 속성 자체가 폭력적, 야만적이다. 이런 집단을 상대하는 방법은 이들에게 퇴로를 열어주되 그 길로 가지 않으면 '망한다'고 확실하게 알게 하는 것이다. 지금의 유엔 대북 제재가 바로 그 방법이다.

이 방법은 꾸준히 끝까지 밀고 가야만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러려면 한국 정부가 북 집단의 속성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상대를 알아야만 협상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문 정부 사람들은 북 체제의 속성을 마치 이번에 처음 알았다는 듯이 놀라고 있다.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 속에 있는 사람들이 국가 운명을 책임지고 있는 건가. 김정은과 판문점 도보 다리를 산책하고 백두산에 오르고 냉면을 함께 먹는 것으로 남북 평화 시대를 열겠다는 것은 국정과 안보를 동화(童話)로 여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