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스타트업 플렌티가 운영하는 컨테이너 형태의 실내 농장에는 직원이 한 명도 없다. 대신 로봇 팔이 물을 주거나 LED(발광다이오드) 조명을 조절하며 케일·루콜라 등 각종 채소를 키운다. 플렌티는 이런 무인(無人) 농장 기술로 지난 2018년 2억달러(약 2400억원) 넘는 투자를 받았다. 하지만 로봇에 대한 소비자의 거부감 탓에 판로를 넓히지 못했다. 그러다가 최근 코로나 사태로 극적인 반전(反轉)을 맞았다. 재배부터 수확·포장까지 모든 과정을 로봇이 하기 때문에 사람 손이 일절 닿지 않아 채소에 바이러스가 묻을 위험이 없다는 점이 부각된 것이다. 플렌티의 하루 채소 출하량은 코로나 이전보다 30% 증가했고, 지난달부터 미국 수퍼마켓 체인인 몰리스톤스에 납품하기 시작했다. 맷 바너드 플렌티 최고경영자(CEO)는 "우리 상품을 소비자가 가장 먼저 만지게 하는 게 사업 목표"라고 말했다.

코로나 이후 농업·외식업 분야에서 사람을 대신하는 로봇 기술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코로나 확산이 식당과 농장의 로봇 도입을 가속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로봇이 채소 키우고 패티 굽고

농작물을 키우고, 햄버거·피자를 만드는 로봇은 2~3년 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처음 등장했지만, 기술을 개발한 기업의 실적은 참담했다. 커피 제조 로봇을 만든 미국 카페X는 작년 말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매장 3곳을 폐쇄했고, 피자 로봇을 만든 주메도 올 초 직원 360명을 해고했다. 하지만 코로나 공포는 로봇에 대한 소비자 인식을 완전히 뒤집었다. 기업·식당들은 '우리는 코로나로부터 안전하다'는 인식을 마케팅으로 활용하고 생산 비용을 줄이기 위해 경쟁적으로 로봇을 도입하고 있다. 피자헛은 최근 미국 내 일부 매장을 중심으로 피자를 만드는 로봇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주문을 받으면 로봇이 도우 위에 토핑과 소스를 올리고 오븐에 넣는다. 피자헛은 '우리 피자는 오븐에서 나오자마자 곧바로 로봇이 포장 상자에 담기 때문에 사람 손이 닿지 않는다'고 광고한다.

미국 스타트업 크리에이터는 코로나 이후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배달 주문만 받고 있지만, 손님은 코로나 이전보다 늘었다. 이 회사는 외부와 차단된 매장 안에서 4.3m 길이의 인공지능(AI) 로봇이 사람 도움 없이 주문부터 재료 손질, 고기 패티 굽기 등 모든 과정을 혼자서 한다. 로봇이 만든 햄버거를 멸균된 통로를 통해 외부로 전달하기 때문에 바이러스가 음식에 묻을 위험도 줄였다.

◇코로나가 다시 깨운 서빙 로봇

손님을 직접 대면하는 서빙 로봇도 코로나 이후 다시 도입이 늘어나는 추세다. 서빙 로봇은 3~4년 전부터 대형 매장에서 시범 도입됐지만 느린 이동속도 등 업무 효율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크게 확대되지 못했다. 하지만 식당 직원을 통한 바이러스 전파 우려가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감염에서 안전한 로봇이 선호되는 것이다.

네덜란드 레네서의 아시아 식당 '로열 팰리스'는 지난 1일 영업을 재개하면서 직원을 뽑는 대신 서빙 로봇 2대를 새로 배치했다. 이 서빙 로봇은 식당에 손님이 들어오면 '안녕하세요, 환영합니다'라고 인사를 하고 두 팔 위에 있는 쟁반에 음식·음료를 올려 손님 바로 앞까지 가져다준다. 손님이 사용한 잔과 그릇도 거둬간다.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테이크아웃 전문 초밥집 '블루스시'는 로봇 팔이 창문을 통해 손님에게 포장 음식을 전달한다. 중화요리 체인 메이퇀은 최근 중국 전역에 5000곳 넘는 식당에 서빙 로봇을 추가로 배치했다. 기존에는 직원이 주문과 계산을 하고 로봇이 일부 서빙 업무를 보조했는데 코로나 이후 거의 모든 업무를 로봇에 맡기고 있다.

국내에서도 식당 로봇 도입이 활발하다. 달콤커피는 지난 4월 말 천안논산고속도로 정안알밤휴게소에 로봇이 커피를 만드는 로봇 카페 '비트' 매장을 열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무인 카페가 들어선 것은 국내에서 처음이다. 스타트업 '디떽'은 대구 등에서 치킨을 튀기는 로봇이 있는 치킨집을 운영하고 있다. 이 업체는 올해 내 10곳 이상 매장을 추가로 열 계획이다. LG전자는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과 공동으로 식당용 서빙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일자리 감소 가속화 우려도

일각에선 코로나 이후 세계적인 로봇 도입 확대로 일자리 감소가 가속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코로나로 인한 식당·공장 폐쇄로 실직을 경험한 사람들이 영업 재개 이후에도 로봇에 밀려 다시 일자리를 잡을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것이다. 식당이나 농장뿐 아니라 배달·방역·호텔·물류센터 등 다른 분야에서도 로봇의 존재감이 커지면서 기존 직원을 위협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코로나가 세계적인 자동화 속도를 빠르게 만들어 대량 해고 위험도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IT(정보기술) 업계 한 임원은 "아직은 로봇이 기존 업무를 완전히 대체하지 못하기 때문에 당장 대량 실직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작다"면서도 "로봇 기술이 점점 정교해지고 있어 코봇(협동 로봇)처럼 사람과 기계가 함께 일할 수 있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