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사 알렉산더씨가 제임스 주아닐로씨에게 훈계하는 모습.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팩하이츠라는 애견 관련 업체를 소유한 제임스 주아닐로씨는 지난 9일(현지 시각) 자신의 집 앞에서 봉변을 당했다. 필리핀계인 그가 최근 인종차별 반대시위의 대표 구호인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문구를 집 담벼락에 분필로 쓰고 있자 한 백인 커플이 다가와 제지한 것이었다.

◇ 필리핀계 집주인에게 “다른 사람 재산 침해하고 있다” 오지랖

커플 중 한 여성은 주아닐로씨에게 다가와서는 “이게 당신 재산이냐?”고 물었고, 남성은 이 장면을 촬영했다. 마음이 상한 주아닐로씨가 “왜 그러느냐”고 되묻자 여성은 “문구는 좋다. 하지만 당신은 다른 사람의 재산을 침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네 산책을 나온 듯 흰 티와 반바지에 운동화를 신은 여성은 언성을 높이지는 않았지만, 마치 어른이 아이를 혼내는 것처럼 뒷짐을 쥔 채 훈계하듯이 주아닐로씨를 대했다.

주아닐로씨는 목소리를 높이며 “만약 내가 여기 살고 여기가 내 집이면 모든 게 괜찮은 것이냐”면서 “당신은 내가 여기 사는지, 이곳이 내 집인지 모르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이쯤에서 이들 커플이 돌아갔다면 큰 문제는 되지 않았겠지만, 이 여성은 미소를 띤 채 집을 가리키며 “여기 사는 사람을 안다”고 거짓말을 했다. 마치 유색인종인 주아닐로씨가 집의 주인일 리 없다는 표정이었다.

현지 매체와 인터뷰한 제임스 주아닐로씨.

◇ ‘고상한 인종차별’ 비판

황당함을 느낀 주아닐로씨가 비꼬면서 “오, 그렇다면 경찰에 신고하는 게 어떻나”고 답하는 동안에도 여성은 손을 써가며 훈계를 그치지 않았다. 주아닐로씨가 “경찰에 신고하라”면서 이름을 묻자 그제야 이들 커플은 참견을 끝내고 자리를 떴다. 2분 가까이 되는 이 과정은 주아닐로씨의 휴대폰으로 녹화돼 지난 12일 트위터에 올라왔고, 15일 현재까지 1400만회가량 조회됐다.

실제로 이들 커플은 주아닐로씨를 신고했다. 주아닐로씨는 ABC와 인터뷰에서 “경찰이 조금 있다가 왔지만 서로 아는 사이라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갔다”고 했다. 그는 여성의 행동에 대해 “고상한 인종차별(polite racism)”이라면서 “그 사람은 정중하게 ‘선생님, 저는 당신이 여기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라 말했다”고 전했다.

제임스 주아닐로씨가 자신의 집 담벼락에 쓴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문구.

◇ 영상 퍼진 뒤 여성 거래처 끊겨

현지 매체에 따르면 영상에 나오는 여성은 스킨케어 브랜드 라페이스의 리사 알렉산더 CEO로 알려졌다. 구독 서비스 버치박스는 해당 영상이 공유된 뒤 해당 브랜드와 관계를 끊겠다고 밝혔다. 알렉산더는 현지 매체 KGO에 사과문을 보냈다. 그는 “영상으로 내가 그런 행동을 했다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고 슬펐다”면서 “주아닐로씨에게 무례했고, 깊이 사과한다”고 했다. 이어 “그때는 내 행동이 인종차별적이라는 걸 몰랐고, 고통스러운 교훈을 얻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주아닐로씨와 따로 만나 커피를 하면서 직접 사과의 뜻을 전하고 싶다고도 했다. ABC뉴스는 “주아닐로씨는 아직 이 제안에 답하지 않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