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옆에서 지켜보기나 할걸. 전남 신안 신의도에서 토판염을 만드는 염부(鹽夫) 박성춘(57)씨는 "힘들 텐데 괜찮겠냐"고 미리 걱정했다. 그의 동갑내기 아내 전성자씨는 "아마 서너 발짝도 못 할 것"이라며 웃었다. 목포에서 배로 2시간 떨어진 신의도는 '소금섬'이다. 전국 1000여 개 염전 중 230개가 신의도에 있다.
밀지 못해 긁어야 하는 토판염
박씨의 염전에는 하얗게 소금꽃이 피어 있었다. 이 소금을 모으려면 긁기 작업을 해야 한다. 사전에는 채염기(採鹽機)로 나와있지만 현장에서는 '대파'로 불리는 이 도구를 박씨가 들어보라 했다. 테니스 클레이코트 바닥을 평평하게 고를 때 사용하는 도구와 비슷한 모양과 크기인데 무척 무거웠다. 박씨는 "무게가 15~20㎏ 정도 나간다"고 했다.
대파를 두 손으로 잡고 배로 받쳐 간신히 염전으로 가져갔다. 어른 키 정도 길이의 나무 막대 끝을 양손으로 붙들고 뒷걸음질로 대파를 끌어당기며 염전 바닥을 긁었다. "처음 모아질 때까지는 살살 끌다가 소금이 쌓일수록 힘이 들어가야 해요. 조심조심 끌어야지 너무 확 긁으면 흙물이 일어나 소금과 섞여요. 대파가 너무 누우면 흙을 파고, 너무 서면 소금이 안 긁어집니다."
대파만으로도 무거운데, 긁을수록 소금이 쌓이니 뒤로 끌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늘 하나 없는 뙤약볕 아래서 소금을 두 번 긁고 나니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이마에 땀이 흘렀다. 허리가 쑤시고 허벅지 뒤쪽 햄스트링과 장딴지가 땅겼다. 잠시 허리 펴려 멈춰 서니 멀리서 지켜보던 전성자씨가 소리쳤다. "쉬지 말고 계속 끄집으시오. 그것이 (소금 긁는) 기술이오."
바닷물을 증발시키고 농축시켜 소금을 얻는 천일염이 줄어들고 있다. 한국 어촌 공동체를 연구하는 광주전남연구원 김준 책임연구원은 "한때 1800여 개를 헤아리던 염전이 이제 1000개가 되지 않는다"며 "염전 하던 분들이 고령이 됐고 일할 사람을 구하기도 힘들어서 최근 태양광으로 전환하는 곳이 많다"고 했다. 천일염은 힘들고 수익은 박하다. 박성춘씨는 천일염 중에서도 가장 힘들다는 토판염을 만든다. 그는 "토판염 하는 사람은 전국에 4명 정도에 불과하다"고 했다.
천일염은 토판염, 타일염, 장판염으로 크게 나눈다. 토판염은 갯벌 흙을 다진 바닥에서 그대로 소금을 만든다. 가장 오래된 방식의 천일염이다. 흙바닥은 긁기 힘들뿐더러 소금물 증발이 더뎌 생산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수십 년 전부터 염전에서는 바닥에 타일이나 깨진 옹기 조각, PVC 장판 등을 깔았다. 이게 타일염과 장판염이다. 타일과 장판을 깐 염전은 훨씬 매끄럽다. 대파를 뒤로 끌지 않고 앞으로 밀 수 있다. 생산량도 토판염의 10배다. 토판염과 함께 타일염도 만드는 박씨는 "타일염·장판염이 20㎏ 한 포대 3만원일 때 토판염은 17만원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했다.
박씨가 토판염을 버리지 않는 건 자연스러운 전통 방식이 아무래도 더 낫지 않겠느냐는 믿음, 그리고 누군가 이어가지 않으면 영영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 때문이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소금을 만들었다. 할아버지는 남의 염전에서 일했고, 아버지 때부터 염전을 소유하고 운영했다.
어려서 아버지의 염전 일을 돕던 그는 자녀 교육을 위해 9년을 목포에 나가 살았다. 아버지와 함께 소금을 만들던 형님이 돌아가시자 가업을 이어가기 위해 고향 신의도로 돌아왔다. 몇 해 전부터는 아들 부부가 박씨 부부를 도와 토판염을 만들고 있다.
토판염 만들기의 시작은 겨울이다. "음력으로 12월, 설 전에 염전을 밭 갈듯 갈아엎어요. 아버지 때는 소로 쟁기를 끌어서 하다가 이제는 트랙터로 합니다. 모 심을 때 쓰는 이앙기를 개조해 길이 6m 파이프를 매달아 끌고 다니면 판(염전 바닥)이 매끈하게 골라져요. 이걸 설 앞뒤 15~20일 말리면 로라(롤러)가 들어설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해지죠. 설 쇠고 나서 로라질하고 다 말랐다 싶으면 물(바닷물)을 대기 시작합니다."
극한 인내심 필요한 소금 담기
토판염은 대개 가벼운 회색빛이다. 갯벌 흙이 묻거나 물들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 게랑드(Guerrande) 소금도 갯벌 흙을 다져 만든 염전에서 생산되는 토판염의 하나로 볼 수 있는데, 게랑드 소금도 옅은 회색에 미세한 점들이 거뭇거뭇 섞여 있다. 그런데 박성춘씨가 생산하는 토판염은 뽀얀 우윳빛이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표백제로 씻은 거 아니냐' 의심하기도 했어요."
박씨는 뽀얗고 잡티 없는 토판염을 만들기 위해 소금 생산을 늦게 시작한다. 신안군 대부분 염전이 3월부터 천일염을 만드는 반면, 박씨는 기온이 충분히 올라가는 5월 말이나 6월부터 만들어 추석이면 끝낸다. "밤에도 섭씨 20도 밑으로 떨어지지 않을 만큼 더워지면 소금 결정이 2~3일 만에 생겨요. 이렇게 빨리 소금이 피어야 뽀얗게 됩니다. 소금을 염전에서 퍼낼 때도 뿌연 흙물이 섞이지 않게 윗부분만 요령껏 퍼내야 합니다."
소금을 포장할 때도 이물질이 없는지 눈으로 확인해 담는다. 박씨의 토판염 생산 과정을 현장 답사했던 김준 책임연구원은 "소금 담기가 정말 힘드니 꼭 해보라"고 했다. 전성자씨와 함께 소금을 담아봤다. 힘들기보다 엄청난 인내심을 요구하는 짜증나는 과정이었다. 소금 긁기와 담기, 둘 중에서 고른다면 긁기가 낫겠다 싶을 정도였다.
전씨와 며느리가 스테인리스 작업대 위에 소금을 펼쳐 놓았다. 처음엔 그냥 흰 소금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미세한 갯벌 흙이 소금에 붙어 있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걸 전씨가 하나하나 골라낸 다음 유리병에 무게에 맞춰 담았다.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건넨 유리병 뚜껑을 닫지 않고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러더니 작은 티끌 하나를 발견하고는 그걸 빼낸 다음 시어머니에게 돌려줬다. 전씨는 며느리가 넘긴 병을 저울에 놓고 줄어든 만큼의 토판염을 보충해 며느리에게 다시 건넸다. 며느리는 앞서와 똑같이 검수했다. 이번에는 아무 티끌이 보이지 않았고, 그제야 뚜껑을 닫고 밀봉해 택배 상자에 담았다.
전씨가 "직접 해보라"고 해서 며느리의 자리에 앉아 골라내기를 해봤다. 물론 처음이라 그렇겠지만, 한 줌 분량의 소금을 고르는 데 과장하지 않고 30분쯤 걸렸다. 이걸 하루 수십·수백 ㎏을 기계 없이 수작업으로 한다고 했다. 일하러 오려는 사람 구하기도 힘들지만 와서 해보고는 며칠 못 버티고 도망가기 일쑤라 가족이 아니면 하기 힘든 작업이라 했다.
박씨 가족은 3년 숙성한 토판염을 2㎏ 3만2000원에 판다. 주방에서 바로 쓸 수 있게 곱게 빻은 3년 숙성 토판염은 2㎏ 3만5000원이다. 타일이나 장판 바닥에서 생산한 일반 천일염보다 6배 가까이 비싸다. 아무리 기계를 쓸 수 없어 모든 작업을 사람 손으로 해야 한다지만, 성분이나 품질에서 일반 천일염과 별 차이 없는 토판염을 이렇게 비싸게 사 먹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김준 책임연구원은 "일반 관행 농법으로 재배한 채소와 유기농 채소는 성분에서는 차이 나지 않지만, 유기농이라는 데 가치를 두고 비싼 가격을 지불하는 소비자도 분명히 있다"며 "토판염은 천일염 중에서도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생산한 일종의 '유기농 제품'이라는 점에서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고 했다.
박성춘의 토판천일염과 명인 김막동 토판천일염, 비온뒤첫소금, 신의도 6형제 소금밭 등이 토판염도 하는 염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