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의입’에 꾸준하게 댓글을 올려주시는 분들께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정말 하루도 빠짐없이 개근하시는 분들도 있다. 그런데 그런 분 중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사상을 비판하는 분들도 더러 계시다. 아무래도 문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를 확실하게 신봉하는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 개인적으로는 문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를 믿고 실천하는 정치인이라고 생각한다. 문 대통령이 아무리 평등과 분배를 강조하는 쪽으로 기울어 있다고 해도 지난 과거 대통령들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본질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자라고 믿고 싶다. 아니 폭넓게 봐서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본격적인 좌파 정당은 없었다고 본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갖가지 여야가 대립하고 있었지만 양쪽 모두 본질적으로는 자유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를 부인하지 않는 정당이었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좌파 정당이 아니라 보수적 성격이 짙은 정당들이었다고 생각한다. 소수 좌파 정당에 소속된 정치인 말고, 우리나라 정부의 고위공직자 중에서 조국 전 법무장관만이 유일하게 공개 석상에서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고 밝혔을 뿐 그 사람을 빼면 공산주의자는커녕 사회주의자도 없었다고 본다.
그런데 최근, 그러니까 어제 문 대통령이 6·10 민주항쟁 33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했는데, 그 기념사는 문재인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사상적으로 어떤 쪽으로 변모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대목이 있었다. 문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마음껏 이익을 추구할 자유가 있지만 남의 몫을 빼앗을 자유는 갖고 있지 않다"고 했다.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하기 위해 그 부분을 그대로 읽어 드리겠다.
"민주주의는 자유와 평등의 두 날개로 날아오릅니다. 소수여도 존중받아야 하고, 소외된 곳을 끊임없이 돌아볼 때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합니다. 우리는 마음껏 이익을 추구할 자유가 있지만, 남의 몫을 빼앗을 자유는 갖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웃이 함께 잘 살아야 내 가게도 잘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지속가능하고 보다 평등한 경제는 제도의 민주주의를 넘어 우리가 반드시 성취해야 할 실질적 민주주의입니다."
여기서 문 대통령이 말한 ‘남의 몫을 빼앗을 자유는 갖고 있지 않다’는 대목이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말은 무슨 속뜻을 품고 있을까. 이런 표현이야말로 과거 좌익 사상가들에게 흔히 들었던 말이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청와대 연설문 팀이 썼을까, 아니면 문 대통령이 직접 써넣은 대목일까.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찾아봤다.
이승훈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가 2012년7월31일 한국개발연구원 KDI 경제정보센터에 이런 글을 올려놓았다. 그대로 읽어보겠다. ‘자유방임시장의 상벌기능이 빚어내는 질서’라는 제목이다. 이렇게 돼 있다.
'경제활동의 자유는 본질적으로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자유다. 그런데 일단 다른 이가 얻어버린 '이익'은 내 것이 될 수 없다. 즉 누군가가 어떤 이익을 얻어버리면 나는 그 '이익'을 얻을 자유를 잃는다. 그러므로 개인들의 경제적 자유 또한 결코 공존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해법은 다른 이의 정당한 몫을 소유자의 동의 없이 탐하는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다. 사유재산권 보호는 이렇게 놓고 보면 '때릴 자유'를 제한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개인이 원하는 대로 경제활동을 펼치도록 자유를 허용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각자 자신의 몫을 늘리는 경제활동을 벌인다. 그런데 내 몫을 늘리려고 남의 몫을 훔치거나 빼앗을 자유까지 허용한다면 세상은 약육강식의 정글로 변한다. 남의 몫을 부당하게 침탈하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정부의 사유재산권 보호는 각 개인이 경제적 자유를 서로 침탈하지 않으면서 공존할 수 있게 하는 데 필수적이다.'
그렇다. 이승훈 교수가 말하는 ‘남의 몫을 빼앗을 자유가 없다’는 뜻은 정부가 철저하게 사유재산을 보호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것이 경제적 자유라는 것이고, 그것이 개인이 이익을 추구하면서 공존할 수 있는 필수조건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반면에 ‘남의 몫을 빼앗을 자유가 없다’는 의미에 대해 이런 글도 있다. 미국의 좌파 경제학자이자 전 노동부 장관 출신인 로버트 라이시라는 사람이 ‘자본주의를 구하라’라는 책을 썼고, 우리나라에 2016년8월 번역돼 나왔는데,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책 본문인지 서평자의 견해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갑질하는 자본주의’ 혹은 ‘상위 1프로의 자유를 위해 희생당하는 진짜 자유’라는 제목이 붙어 있기도 했는데, 이렇게 돼 있다.
‘자유는 억압의 또 다른 이름이다. 부자들에게 자유는 가난한 자들의 몫을 빼앗을 자유이다. 재벌들에게 규제 철폐는 재벌들이 일반인들의 몫을 충분히 약탈할 수 있도록 자유롭게 시스템을 통해 합법적으로 강도질할 자유를 뜻한다. 민주주의와 함께하는 ‘자유’의 개념은 탐욕적 자본주의의 프레임에 갇혀, 재벌과 소수 권력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을 가질 권리가 되었다. 우리가, 국가로부터 보장받아야 할 자유란 막대한 자금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서 가뜩이나 성장도 않는 국가 경제 시스템의 부를 쥐어짜 더욱 큰 부를 획득하는 그 탐욕적 지배 시스템으로부터의 자유다.’
자, 그래서 우리는 ‘남의 몫을 빼앗을 자유가 없다’는 문 대통령의 기념사에 대해서 어느 쪽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크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문 대통령과 청와대 연설문 팀에게 조심스럽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우리의 민주주의는 나눔과 상생의 민주주의입니다."라고 말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말한 ‘남의 몫을 빼앗을 자유가 없다’는 대목이 어떤 생각에 뿌리를 박고 있는 것인지 대답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개인의 이익과 사유재산을 철저하게 보호해야 한다’는 뜻인지, 아니면 ‘부자들에게 자유는 가난한 자들의 몫을 빼앗을 자유’일 뿐이라는 식의 급진 좌파의 혁명적 사고인지,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문 대통령은 ‘보다 평등한 경제’는 ‘실질적 민주주의’라고 했는데, 평등 경제를 전제로 한 그 실질적 민주주의라는 것은 결국 사회주의를 말하는 것이냐고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