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남북전쟁 당시 노예제 철폐에 반대해 북부연방정부와 싸웠던 남부연합(Confederate States)군 장군들 이름을 딴 미 육군 기지 10개의 개명(改名) 요구에 대해, 지난 8일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과 미 육군장관인 라이언 D 머카시는 “이들 장군의 이름을 제거하는 양당(兩黨) 차원의 논의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0일 “이 웅장하고 유서 깊은 군사 시설물들에 대한 이름 변경은 고려하지도 않는다”고 못박았다. 미 육군 기지의 명칭 결정은 미 육군의 인력·예비군 담당 차관보가 맡는다. 명칭을 변경하게 돼도, 이를 대통령이나 의회에서 승인해야 하는 규정은 없다.

하지만 애초에 이들 백인우월주의·노예제 유지를 주창하는 남부군 장군들의 이름이 왜 미 육군 기지의 이름이 된 것일까. 뉴욕타임스매거진은 10일 “이는 미 독립전쟁 때부터 기지가 위치한 지역 주변에서 활약했던 장군이나 병사, 기지 건설에 공헌한 이의 이름을 따 이름을 지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현재 개명 요구가 거센 10개 육군 기지도 모두 과거 남부연합에 속했던 주에 있다.

미 남북전쟁의 첫 총성을 울린 남부연합군 장군인 피에르 보우리가드. 그는 루이지애나주의 미 육군기지에 이름을 남겼다.

미 남북전쟁은 1861년 4월11일 피에르 보우리가드(Beauregard) 남부연합군 장군이 남부연합에 속한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찰스턴에 위치한 북부연방군의 섬터 요새 지휘권을 요구하면서 시작했다. 섬터 요새의 북부군 소령인 로버트 앤더슨은 거부했지만 항전 끝에 항복했다. 전쟁 당시 루이지애나 주에 있었던 한 남부군 기지는 나중에 이 보우리가드의 이름을 따서 ‘포트(Fort) 보우리가드’가 됐다. 미 연방정부의 반역자가 미 육군기지의 이름이 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북부연방을 위해 보우리가드에 맞서 싸웠던 앤더슨(Anderson)의 이름을 딴 기지는 없다. 하지만 미 육군은 최근까지도 “남부군 장군들도 미군의 역사에서 의미 있는 위치를 점한다”는 이유로 이름을 유지해왔다.

2017년 미 의회조사국(CRS) 조사에 따르면, 남부연합에 속했던 텍사스·앨라배마·노스캐롤라이나에는 각각 1개의 남부군 장군 이름을 딴 육군 기지가 있고, 루이지애나·조지아가 2개, 남부연합 정부가 들어선 버니지니아 주는 3개의 남부군 장군을 기리는 기지를 갖고 있다.

대부분의 기지는 1차 대전 중에 만들어졌고, 처음엔 ‘캠프(camp)’라 불리다가, 2차 대전 중에 ‘포트(fort)’로 바뀌었다. 하지만 버지니아 주에 있는 남부군 장군 이름을 딴 ‘포트 A P 힐(Hill)’은 그 안의 훈련기지가 1979년에 또 다른 남부군 장군 이름을 따 ‘윌콕스(Wilcox) 캠프’라고 이름 붙여지기도 했다.

독립전쟁 당시 남부군이 대승한 전투 이름을 따서 명명한 미 해군의 순양함 '챈슬러즈빌'호.

미 해군에도 남부군의 ‘잔재’가 남아 있다. 해군은 1958~1983년 탄도미사일을 장착한 핵잠수함 ‘로버트 E 리’를 운용했다. 남부군 총사령관의 이름이었다. 또 지금도 일본 요코스카를 모항(母港)으로 하는 순양함 ‘챈슬러즈빌(Chancellorsville)’을 갖고 있다. 로버트 E 리 장군의 남부군이 1863년 5월 버니지아주 챈슬러즈빌 인근에서 2분의1도 안 되는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북부군의 포토맥군과 싸워 크게 이긴 전투를 기리기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