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성수 금융위원장이 '금융 혁신 사례'로 치켜세웠던 P2P(Peer to Peer) 업체 '팝펀딩'과 연계된 사모펀드에서 280억원 규모의 환매 중단 사태가 터졌다. 일부 펀드에서는 원금 90% 이상 손실이 나올 것으로 추정된다. 투자 손실과 별개로 팝펀딩은 자금 돌려막기, 자금 유용 등을 저지른 혐의로 검찰 수사도 받고 있다. '부실 금융 상품'을 일반인에게 안전한 상품인 듯 판매한 '제2의 라임 사태'라는 지적이 나온다.

◇연체율 95% 부실 P2P에 투자… 운용사도 "담보물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투자증권 분당PB센터를 중심으로 판매된 팝펀딩 연계 사모펀드 '자비스팝펀딩홈쇼핑벤더' '헤이스팅스더드림' 등이 연이어 원금 상환에 실패하고 있다. 한투증권은 환매 중단 규모를 약 280억원으로 집계했다. 다른 증권사에서 팔린 유사 상품과 비교해 피해 규모가 훨씬 크다고 투자자들은 주장한다.

이 펀드는 팝펀딩이라는 P2P 업체와 연계된 사모펀드다. 팝펀딩은 홈쇼핑 납품 업체의 재고 상품 등을 담보로 잡고 돈을 빌려준다. 이른바 '동산(動産) 담보 금융'이다. 자비스자산운용·헤이스팅스자산운용 등 자산운용사는 팝펀딩의 대출 채권을 바탕으로 사모펀드를 만들었고 한투증권 등에서 이 상품을 판매했다. 상품 구조가 복잡해 보이지만, 투자자가 여러 단계를 거쳐 영세 업체에 돈을 꿔주는 셈이다.

지난달 20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한국투자증권 자비스·헤이스팅스팝펀딩 환매연체 피해자대책위원회’가 한투증권 조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투증권이 판매한 이 펀드들은 약 280억원 규모의 투자금을 못 돌려주고 있다. 원금 90% 이상 손실 가능성이 제기된다.

문제는 팝펀딩이 자금 돌려막기, 자금 유용 등을 저지른 정황이 포착됐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검사 과정에서 이런 혐의를 확인해 검찰에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검찰에서 사기 혐의 등으로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팝펀딩은 금감원 검사 이전인 지난해 6월까지만 해도 대출 연체율이 0.52%에 불과하다고 공시했다. 그러나 검사가 시작된 작년 말에는 16%대로 뛰더니, 지금은 95%를 넘겼다. 금융 당국의 감시로 '자금 돌려막기'가 어려워지자, 지금껏 감춰온 부실이 수치로 드러났다는 해석이 나온다.

투자자들은 대규모 원금 손실 가능성을 우려한다. 대출 원금·이자가 제대로 회수되지 않는 상황에서 담보물이 제대로 있는지도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본지가 입수한 '자비스 5호' 운용보고서에 따르면, 이 펀드 설정액(투자 원금)은 약 75억원이지만 원금·이자 상환, 담보물 판매 등으로 환수된 금액은 7억3480만원에 그친다. 원금 90% 가까이 손실이 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보고서는 "(담보물 확보를 위해) 팝펀딩의 용인·파주 창고를 방문해 담보 물품의 보관 위치 및 수량을 확인하려고 했으나, 담보 물품이 부족한 정황을 발견했다"면서 "정확한 현황 파악을 위해 팝펀딩에 자료를 요구했으나 협조를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박원순·문재인 펀드로 주목받고, 금융위원장 "금융 혁신" 극찬

팝펀딩이 처음 주목받은 계기는 지난 2012년 이른바 '박원순 펀드'를 출시하면서다.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 후보 측에 선거 자금을 빌려주면, 선거가 끝난 뒤 이자를 붙여서 돌려주는 상품이다. 이후 2012년과 2017년 대선에서 같은 구조의 '문재인 펀드'를 출시해 수백억원대 투자금을 모으며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팝펀딩은 동산 담보 금융 확대 등 정부 시책에 적극 부응하는 모습도 보였다.

작년 말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팝펀딩 사업장을 직접 찾아 “동산 금융의 혁신 사례”라고 극찬했다. 금융 당국이 기존 금융사 핵심 업무를 신생 핀테크 업체가 맡을 수 있도록 허가해주는 제도인 ‘지정대리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같은 경력은 투자 상품 홍보에 쓰였다. 한투증권 관계자는 고객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서 “팝펀딩이 금융위로부터 IBK기업은행의 지정대리인으로 선정되며 이 상품의 신뢰성이 더욱 향상됐다”면서 “충분한 검증이 된 만큼 안심하고 추천해드린다”고 했다. 실제 노후 자금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싶다는 92세 노인이 5억원가량을 투자하기도 했다. 투자자들은 “불완전 판매를 넘어 사기 수준”이라고 주장하며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법무법인 한누리의 구현주 변호사는 “한투증권이 펀드 투자 대상, 담보, 차주사의 과거 대출 이력 등과 관련해 투자자를 속여 판매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면서 “한투증권 등을 상대로 형사 고소 등 법적 조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한투증권 관계자는 “고위험 상품이라고 알리는 ‘위험 고지서’를 첨부하는 등 위험 고지에 최선을 다했다”면서 “앞으로 판매사로서 고객 자금 회수에 최선을 다하고,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적절한 대응 방안도 마련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