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항의 시위와 관련해 '군대를 동원해 폭동을 진압해야 한다'는 내용의 기고문을 신문에 실었다가 거센 비판을 받은 미 뉴욕타임스(NYT) 칼럼 담당 편집장이 사임했다. 시위로 건물들이 훼손되고 있다는 칼럼에 '건물도 중요하다(Buildings Matter, Too)'란 제목을 단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의 수석 편집장도 자리에서 물러났다.
아서 설즈버거 NYT 발행인은 7일(현지 시각) 직원들에게 보낸 메모 등을 통해 제임스 베넷(54) 칼럼 담당 편집장의 사임 소식을 전했다. 설즈버거 발행인은 "지난주 우리의 편집 과정에서 중대한 오류가 있었다"고 했다.
베넷 편집장은 지난 3일 공화당 소속 톰 코튼(아칸소) 상원 의원의 기고문 '군대를 투입하자(Send In the Troops)'를 게재했다. 코튼은 하버드대에서 학부와 로스쿨을 마친 뒤 공수부대에서 근무하며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경험했다. 대북 강경파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의 기고문은 NYT 안팎에서 논란을 빚었다. 시위를 군으로 진압하자는 주장의 글을 어떻게 신문에 실을 수 있냐는 것이었다. 800명가량의 NYT 직원이 이 글 게재에 항의하는 청원에 서명했고, 칼럼니스트와 기자들은 트위터에 "부끄럽다" "위험하다" 등의 글을 올렸다. 베넷 편집장이 "우리는 독자들에게 정책을 수립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의 다른 의견을 보여줄 의무가 있다"고 해명하고 설즈버거 발행인 등 NYT 경영진이 사과했지만 진화되지 않았다.
베넷 편집장은 NYT에서 10년 넘게 일하며 백악관 출입기자, 이스라엘 예루살렘 지국장 등을 지냈다. 이후 애틀랜틱매거진 편집국장을 거쳐 2016년에 NYT에 다시 합류했다. 월스트리트저널과 악시오스 등 미 언론들은 그가 현 편집국장인 딘 바케이를 이을 차기 국장으로 거론돼 왔다고 전했다. 그의 형은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로 출마했던 마이클 베넷(콜로라도) 상원 의원이다.
앞서 6일에는 191년의 역사를 가진 미국 지역 언론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의 스탠 비시노브스키(58) 수석 편집장이 사의를 표한 사실이 알려졌다. 이 신문은 시위로 인해 지역의 건물과 사회 기반 시설이 훼손되고 있다는 내용의 칼럼을 지난 2일 실었는데, 제목을 시위의 대표 구호인 '흑인 목숨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를 패러디해 '건물도 중요하다'고 달았다. 이는 시위를 평가절하했다는 거센 비판을 불러왔다. 이 신문의 유색인종 기자 44명은 이를 비판하는 공개서한을 낸 뒤 집단 병가를 냈다. 비시노브스키를 포함한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 편집 관계자들은 3일 공식 사과문을 통해 "우리의 제목은 흑인의 사망과 건물의 훼손이 같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라고 했다.
비시노브스키 편집장은 20년가량을 이 신문사에서 근무해 온 베테랑 언론인이다. 그는 주 정부를 감시하는 탐사보도팀을 만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2011년 퓰리처상을 받은 필라델피아 학교 폭력 보도의 책임을 맡기도 했다.
두 사람의 사임 소식에 시위 지지자들은 환영 메시지를 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과한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왔다. NYT에 칼럼을 기고했던 톰 코튼 의원은 폭스뉴스에 "NYT 칼럼 편집장과 발행인은 자신과 반대되는 의견이 나오면 격발하는 뉴스룸의 어린 폭도들에게 완전히 굴복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