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무장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에 목졸려 죽은 후, 가장 격렬한 항의 시위가 일어났던 백악관 앞 라파예트 광장이 원래는 미국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노예 시장 중 하나였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6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여기에 시위대가 백악관 앞에서 부른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흑인 노예 무역상이 자신의 죄를 참회하면서 부른 노래다.
흑인들의 한(恨)이 서린 장소에서, 노예무역을 참회한 백인 노예 무역상의 노래를 부르며 21세기 흑인들이 다시 한 번 인권과 저항을 외친 것이다.
◇라파예트 광장은 대표적 노예 시장 자리
WP에 따르면 주 방위군과 시위대의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던 백악관 앞 라파예트 광장이 워싱턴DC의 유명한 노예 시장 중 하나였다. 광장 주변으론 팔려가기 전 노예를 수용하는 숙소들로 둘러싸고 있었다. 지난 2018년 방미(訪美)한 영부인 김정숙 여사가 카렌 펜스 미 부통령 부인과 만나 식사를 했던 라파예트 광장의 디케이터 하우스는 원래 노예들이 팔려가기 전 머물던 숙소 중 하나였다고 한다.
워싱턴DC는 1790년 미국의 행정수도로 건설됐다. 당연히 당시 도시의 건설은 노예였던 흑인 노동력에 대거 의존했다. 여기에 워싱턴은 노예 무역의 주요 거점이기도 했다. 18~19세기 워싱턴DC에 인접한 버지니아 등에서의 담배 농사가 쇠락하면서 이곳의 노예들은 면화 산업이 급속히 확대되는 남부로 팔려갔다. 이때 아버지는 미시시피로, 어머니는 조지아로, 아들은 앨라배마로 팔려가는 등 가족들이 생이별 하는 비극이 일어나기도 했다.
워싱턴에서 가장 큰 중앙 노예시장은 백악관에서 약 2㎞ 남짓 떨어진 현재 국립문서보관소 자리였다. 또 흑인들을 수용하는 대규모 수용시설이 워싱턴DC를 가로지르는 주요도로 중 하나인 ‘인디펜던스 애비뉴’에 자리잡고 있었다고 WP는 전했다. 지금은 워싱턴의 부자들의 요트 정박장으로 쓰이고, 맛집으로 채워진 ‘핫플레이스’인 포토맥 강변의 ‘워프(Wharf)’는 흑인 노예 무역선들이 들어오던 항구였다고 한다.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노예 무역상이 만든 찬송
시위대는 백악관 앞에서 ‘어메이징 그레이스(한국에선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란 찬송을 항의의 표시로 불렀다. 왜 시위대는 기독교 찬송을 시위 음악으로 불렀을까.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지난 2015년 흑인 교회 총기 난사 장례식에서 이 노래를 불렀다.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존 뉴턴 성공회 신부가 1747년에 작사한 노래다. 뉴턴은 신부가 되기 전에 아프리카에서 영국, 미국, 서인도제도 등으로 노예 운송을 하는 무역선의 선장을 했다. 그는 훗날 자신의 흑인 노예 거래가 죄악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작사한다. 뉴턴은 이후 노예 해방을 줄기차게 주장하고, 이후 그의 영향을 받은 정치인 등이 영국에서 노예제 폐지에 앞장서게 된다.
영국은 노예제를 완전히 폐지할 때 반대파로부터 ‘재정적 자살’이란 비난을 받기도 했다. 1833년 노예 해방을 위해 노예들을 정부에서 사들여 해방할 때 쓴 예산은 2000만 파운드로 당시 연간 예산의 40%였다. 영국 BBC는 최근 “당시 영국 정부가 (노예 해방을 위해) 너무나 막대한 대출을 했고, 그 돈은 (영국 정부가) 2015년에야 다 갚았다”며 “(영국 역사상) 역대 최대의 정부 구제 금융이었다”고 했다. 영국인들이 수백년간 돈을 갚을 각오를 하고 노예 해방을 실행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