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열된 서술이 곧 파열된 삶의 현실을 재생”

김화영 문학평론가
ㆍ김숨의 『떠도는 땅』

20세기 초엽 일제에 강점된 한반도로부터 살길을 찾아 러시아 땅 연해주로 옮아와 삶의 터전을 닦았던 조선인들에게 예고도 없이 강제 이주 명령이 내렸다. 그들은 스스로 개척한 땅에서 쫓겨나 최소한의 보따리를 챙겨 기차에 실린 몸이 된다. ‘화물용 열차인 외곤과 가축운반용 열차를 뒤섞어 시작도 꿑도 보이지 않을 만큼 길게 연결한 열차가 사람들을 기다리고 서 있었다.“ (65쪽)

행선지도 알 수 없는 끝없는 여행이 시작된다. 소설은 이 어둡고 고통스럽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제한된 공간(열차) 속에서의 긴 여행의 이야기다. 그 여행에 갇힌 인간들이 비인간적인 조건을 감내하며 목숨을 부지해야 하는 현재의 밤과 낮, 그리고 그들 서로간의 맥락이 이어졌다 끊어졌다 하는 대화를 통해 그들이 살아낸 과거, 그 모든 삶의 배경이 되는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역사가 교직된다. 뿌리뽑힌 사람들의 삶이 뿌리내릴 땅을 찾아 기약없이 떠나는 과정이 곧 삶의 모습이다.

“땅이 떠도는 것인지 내가 떠도는 것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떠돌았지... 첩첩산중 두멧골에서 태어난 내가 러시아 땅을 떠돌며 살줄이야…“ 황노인의 말(183쪽) 그 자체가 소설의 제목과 주제를 말해준다. 그러나 이 소설의 특징과 특장은 고려인들의 강제이주 과정을 그리되 밖에서 바라보는 객관 역사적 서술이 아니라 이송되는 열차간이라는 좁고 열악한 조건의 공간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행동하고 느끼고 대화하고 고통받는 과정을 내면으로부터 체험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내면화의 과정이 파편적인 묘사와 서술과 대화와 몽상의 만화경으로 제시된다.

수다한 등장인물 들의 행동과 대화가 파편적으로 흩어진 서술을 통해서 독자들로서는 인물들상호 간의 관계와 그들의 살아온 과거를 일관된 질서에 따라 헤아리는 것이 지난하지만 이 파열된 서술이 곧 파열된 삶의 현실을 재생한다는 점에서 이 소설의 리얼리티가 살아 난다고 하겠다. 남자와 여자, 늙은이와 어른과 아이, 고독한 개인, 부부, 가족, 가장이 빠진 가족 등 다양한 인물군상들 속에서나마 특히 남편이 행상을 떠난 사이에 이주를 강요당한 임신한 젊은 여성 금실, 그리고 혼자 기차에 실렸지만 삶의 순간 순간을 수첩에 ”기록“하는 인물 인설이 결국은 전체의 서술에 일정한 의미와 힘을 제공한다.

그리하여 소설의 짧은 3부, 마침내 그들이 ”사막“에 버려졌을 때 헐벗은 땅에서 홀로 출산한 금실을 작가의 분신인양 삶의 순간을 빠짐없이 ”기록“하던 인설이 찾아오고 금실이 그의 외투의 떨어진 단추를 달아주는 장면으로 소설이 끝나는 것은 당연할 지도 모른다. 여자가 마침내 아이를 낳는다는 것, 바늘과 실이 만나 끊어진 것을 잇는 다는 것, 저 끝없고 희망없는 여행의 끝에 찾아온 이 두 가지 사건을 ”희망“이라고 불러야 할까 아니면 단순한 ”시작“이라고 불러야 할까? 어쨌든 김숨 작가의 과정과 불필요한 정서과잉을 경계하며 이어간 저 치열한 여행기는 주목받아 마땅하다.

ㆍ김병운의 『아는 사람만 아는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

매우 군더더기 없이 노련한 문장구사와 전체 플롯의 짜임새에 있어서 일정한 재미를 느끼게 하고 가독성에 있어서 상당한 성공을 거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 노련한 작품의 구성과 문장이 어딘가 ’데자 뷔‘ 같다는 좀 구태의연한 통속성을 느끼게 하는 면이 없지 않다. 더군다나 소설의 2장에 와서 동성애 문제의 사회적 가정적 심리적 함의를 ’분석‘ 정리해 보는 인터뷰 문답식 서술은 문제를 너무 심각하게 정면으로 해부하는 진지함이 “소설”의 차원을 추월해 버리는 느낌을 준다. 소설이 문제를 - 그것도 삶이라는 보다 총체적인 차원에서- 던져서 보다 입체적이고 역동적인 방식으로 현실을 보여주며 접근하는 대신 어떤 답을 모색하거나 강요하는 것 같은 이념지향성은 작품의 자율성을 손상하는 느낌이었다.


"이상이 무력하게 파멸한 시대의 시적 이미지"

김인환 문학평론가

ㆍ김숨의 『떠도는 땅』은 한국 근대사의 한 공백으로 남아 있는 비극적 사건을 다룬 소설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러시아 극동지방 연해주에 거주하던 한국인들을 강제로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이주시키고 조명희 같은 한국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을 일본의 스파이로 몰아 처형한 스탈린의 죄악상은 아직 자세하게 연구되어 있지 않다. 본격적인 연구를 촉구한다는 의미에서도 김숨의 소설은 주목을 받을 만하다.

1937년 11월 1일에 17만 2천 명을 강제로 기차에 태워 이주시켰는데 기차 속에서 보낸 40여 일 동안에 554명의 한국인이 죽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개인이 아니라 금실-근석 부부, 고억-옥희 부부, 요셉-따냐 부부 등에 그들의 부모와 아이들을 포함한 가족들이다. 이 인물 저 인물로 시점을 이동시키는 이 소설의 인물 시각 서술은 개인의 시각이 아니라 항상 집단의 시각을 제시한다. 모든 사건은 40여 일 동안 계속해서 이동하는 기차 속에서 전개되는데, 기차라는 폐쇄성이 조성하는 연극적 효과와 이동하는 기차라는 개방성이 조성하는 서사적 효과가 충돌하여 모든 이상이 무력하게 파멸한 한 시대를 시적인 이미지로 압축하여 제시하고 있다.

요셉의 기독교도, 치수의 레닌주의도, 근석의 실용주의도 스탈린의 폭정 앞에서는 한없이 무력하다. 몇몇 한국인 가족들의 서로 다른 생활사를 구체적으로 미세하게 기술하면서 그 가족들을 통하여 러시아에 사는 한국인 전체의 상황을 제시하는 김숨의 집단 묘사는 몇몇 가족들을 강제로 이주되는 한국인 전체로 확대하고 러시아의 한국인을 나라 잃은 한국인 전체로 확대하고 한국인 전체를 야만의 시대 자체로 확대하고 있다. 소설을 구성하는 사건들이 시를 구성하는 이미지들처럼 배치되어 있다. 사건들 사이에 개입하는 간극과 비약 때문에 우리는 이 소설을 한 편의 장시처럼 읽을 수 있다.

ㆍ김병운의 『공상표의 필모그래피』는 배우 공상표와 감독 김영우의 연애소설이다. 어머니의 극성과 운이 겹쳐서 잘 나가는 배우가 된 공상표는 성소수자라는 것을 끝까지 숨기려 하였으나 2011년 112월 13일 이태원의 게이클럽에서 발생한 방화 사건으로 애인 김영우가 죽은 후에 사랑에 비겁했던 자신을 반성하고 성소수자 운동에 참여한다. 나레이터 양병진이 꼭 필요한 인물인지 조금 의문이고 공상표의 심적 추이를 사건의 진행이 아니라 인터뷰로 제시한다든가 하는 것도 다소 안이한 처리라는 생각이다.

◇“소설이라기보다 길고 무거운 탄식의 서사시”

오정희 소설가

ㆍ김숨의 『떠도는 땅』은 시종 어둠속 유령들의 대화같이 쓸쓸하고 막막합니다. 발화자를 구별할 수 없는 다양한 목소리들이 들려주는 연해주 이주한인들의 아픈 삶과 역사들로, 가축 운반용 화물열차의 3.5평의 어둡고 더러운 공간은 낯선 세계, 설화적 공간으로 살아납니다. 맥락없이 툭툭 끊어지는 짧은 대화들은 때로 날카로운 통찰과 폐부를 찌르는 아포리즘으로 소설이라기보다 길고 무거운 탄식의 서사시같다는 느낌을 줍니다. 나를 이곳으로, 이 시간으로 데려온 역사와 ‘나를 있게끔한’ 삶들을 외면할 수 없다는 작가로서의 의욕과 열정이 돋보입니다. 시적이라거나 산문적이라고도 쉽게 규정할 수 없는 독특한 문체의 힘으로 어둡고 절망적인 상황을 낯선 꿈처럼 펼쳐보입니다.

후반부의 어느 지점에서는 소설적 형상화가 덜 된, 자료에의 의존성이 드러나기도 하고 결말부분에 아쉬운 점이 있지만 맑고 강한 작가정신으로 자신의 작품세계를 깊고 넓게 경작해가는 패기와 성실성은 드물게 귀한 점이라고 여겨집니다.

ㆍ『아는 사람만 아는 공상표의 필모그래피』는 모처럼 소설읽는 재미를 만끽한 작품입니다. 인물들에 대한 독자의 공감대를 확보함으로써 가독성이 높아지고 성소수자로서의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정체성을 확립해가는 고통스러운 여정을 함께 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작가의 균형감각과 객관화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인공뿐만 아니라 주인공과 관계맺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을 통해 성소수자문제에 다각적 접근을 하면서 그들의 고통과 사랑에 대한 편견이 폭력에 가까운 것임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인터뷰 형식, 르뽀의 형식을 취하고 부록으로 공상표의 필모그래피를 연대순으로 넣어 그것을 통해 주인공의 자기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주는 방식도 효과적이었다고 봅니다.

◇“동성애를 ‘쟁론(爭論)’으로 다뤄 깊은 성찰 유도”

정과리 문학평론가
ㆍ김병운의 『아는 사람만 아는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
동성애라는 현대적인 주제를 얼핏 보기에 매우 낡은 형식으로 추적한 소설. 형식적인 보완으로 다면(多面)접이병풍형식을 빌려 왔으나, 그것은 이미 과거에 자주 시도되어 왔던 형식으로 새로울 것이 없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낡은 형식에 갇힌 이야기가 썩 자연스럽게 읽히고 강렬한 몰입을 유도하면서, 동성애에 대한 사회 인식 및 사람들의 태도에 대한 깊은 성찰을 유도한다.

이런 힘의 까닭: 첫째, 동성애 문제를 정면에서 ‘쟁론’적 형식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 이것이 오늘날 동성애 소설들이 체험적으로 혹은 향유적으로 특정 부분(섹스)에 중점을 둠으로써 독자를 자극하는 것과 다른 점이다. 이 작품을 지적인 소설로 만드는 원인이다.

둘째, 생각의 넓이와 깊이: 동성애에 대한 고정관념의 스펙트럼을 거의 다 조명했으며, 그런 현실 안에서의 동성애자들의 태도의 스펙트럼도, 지금까지 나온 어떤 동성애 소설보다 훨씬 넓게 살피면서, 그 태도들의 변화의 궤적을 끈질기에 탐구하여 소설적 깊이를 획득하였다.

셋째, 절제: 방화범을 한 때 동성애자였던 동성애혐오자로 둔 것은 이 작품을 센세이셔날한 사건으로 끌고가지 않겠다는 의도와 동시에 가능한 한 이 문제를 ‘객관적인 지평’에 놓고서 성찰하게끔 하겠다는 효과를 보인다. 동시에 ‘강은성’의 인터뷰로 끄냄으로써 강은성의 후일담을 제공하지 않아, 이 인물의 사건이 신변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탈하는 것을 방지한다.

약점: 처음으로 등장하는 인물, 양병진이 순전히 김미승을 객관적으로 조명하기 위한 기능적 장치로서만 주어져서, 도입부를 비롯 양병진이 등장하는 대목들이 의미가 약화되었으며, 또한 도입부에 그를 내세움으로써 독자를 헛김빼게 하는 효과가 있다. 이것도 일종의 낯설게 하기인지 모르겠으나, 좋은 방법인지 모르겠다.

ㆍ김숨의 『떠도는 땅』
소련에서의 고려인 강제 이주의 엑서도스를 그린 작품으로, 주변 정황 묘사의 사실성과 인물들에 대한 복합적 형상화 그리고 구어적 풍부함과 성경에 기댄 신화적 깊이 부여 등을 통해 고려인의 고난의 삶에 정서적 핍진성을 부여하며, 아주 찰진 작품으로 만들었다.

◇“개인 아닌 역사가 주인공인 역사소설 방식 찾아내”

이승우 소설가

김병운의 소설은 동성애 성향을 가진 한 유명 연에인이 사회 안에서,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갈등하고 극복해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어서 소설의 파장이 상당하고 긴장감도 있었습니다. 동성애라는 특수한 소재를 통해 세상 안에서 자신의 고유한 삶을 사는 일의 어려움/중요함이라는 보편의 문제를 부각시킨 실존적 소설로 볼 수 있겠습니다. 특히 2장의 인터뷰 형식의 소설 전개 방식도 신선했습니다. 다만 김미송과 양병진의 이야기가 전개될 듯하다가 뚝끊어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1장의 결말 부분은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연해주에서 강제 이송당하는 조선인들의 열차 안 풍경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리고 있는 김숨의 '떠도는 땅' 은 기차에 타고 있는 인물들의 각각의 사연들을 실시간 중계하듯, 거의 사람들의 목소리에 의지하여 제공하고 있는 소설입니다. 그런데도 그 대사들이 산만하지 않고 절제되어 있다는 인상을 주는 특별한 독서 경험을 했습니다. 여러 장으로 된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여러 명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쏟아져서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구별되지 않고, 사연들도 뒤섞여 마침내 누구의 목소리인지 누구의 사연인지가 의미없어지는 소설이었습니다. 특정한 개인의 사연이 아니라 시대의 격랑을 따라 여기저기 떠돌아다녀야 했던 이들의 가혹한 운명이 이 소설 안에 담긴 이야기이고, 개인이 아니라 역사가 주인공인 소설. 최근 성실한 취재와 공부에 의지해 주로 현대의 역사적 사건을 소설화해온 김숨이 자기만의 역사소설 방식을 찾아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민족·여성주의에 편향치 않고 인간 보편에 접근”

구효서 소설가

ㆍ김숨

최근 김숨의 작품은 종종 한국 근현대사에 초점을 맞춘다.이 소설에서 연해주 조선인의 삶을 다루지만 민족주의적인 필요 때문은 아닌 것 같다.다른 작품에서는 위안부 얘기도 열심히 하지만 여성주의적인 필요 때문도 아닌 것 같다.다만 김숨은 한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장면들을 소설적 아포리아로 활용하는 게 아닐까. 한국 작가가 역경 혹은 곤경에 던져진 인간 실존의 예를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찾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고도 유효한 일이다. 역경이 초래된 역사적 배경과 책임을 따져가기보다는 성실한 취재와 상상으로 혹독한 처지에 내몰린 소수집단의 실상을 여실히 그려냄으로써 소설이 민족주의라든가 여성주의에 편향하지 않고 보다 더 인간 보편의 문제에 접근하게 한 것은 다행이라 할 만하다.

여실히 그려내는 방법 중 하나로 이 소설에서 자주 사용된 무대 화법도 주목할 만하다. 마치 오페라의 임브롤리오에 해당하는 듯한-혼돈과 분규의 상황을 단절되고 독립적인 문장으로 불쑥불쑥 짧게 던지는 방식은 이 장면들이 80여 년 전 극동 및 중앙아시아가 아닌 바로 눈앞의 무대에서 펼쳐지는 생생한 현재 상황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효과가 있다.

◇“목소리·리듬으로 들리는 소설… 홀린 듯 읽어”

김인숙 소설가

김숨의 ‘떠도는 땅’을 홀린 듯이 읽었습니다. 읽었다고는 했으나 들었다고 말해도 좋을 만큼, 이 소설은 이야기를 넘어 ‘목소리’와 ‘리듬’으로 들립니다. 이야기는 연해주로 떠밀려간 한민족의 역사적 아픔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작가의 의도가 반드시 역사적인 소명에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떠밀려가는 사람들의 스산한 내면, 아무런 방법도 없이 표류해가는 인생을 처연히 응시하는 시선, 열차 한칸에 꼼짝없이 갇혀 인간임을 부정당하는 상황, 그런데도 인물들은 악을 쓰거나 비명을 지르거나 포효하는 대신 노래를 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오래 전에 일주일 가까이 밤을 세워 진행되던 동해안 별신굿을 본 적이 있습니다. 밤에 울리던 만신의 굿거리는 나즈막하고, 사람들은 그 굿거리를 들으며 소리죽여 울었습니다. 김숨의 ‘떠도는 땅은’은 내게 그렇게 들리거나 읽혔습니다.

김숨은 내게 점점 더 놀라운 작가로 여겨집니다. 서사의 방식, 그것을 풀어내는 스타일에 자신만의 영역을 완전히 확보한 것처럼 보입니다. 소설이라고 하는 전형적인 틀에 갇혀있지 않으면서도 그 틀을 단단히 붙잡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구조를 지키면서 동시에 그 구조를 깹니다. 이 작품을 가장 먼저 추천합니다.

두번째로 주목한 작품은 김봉곤의 ‘시절과 기분’, 그리고 김병운의 소설입니다. 둘 다 퀴어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퀴어라는 점에서 주목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성소수자의 세계는 더는 놀라워하며 엿보거나 감히 비판하기 어렵다거나 하는 문제는 아닙니다. 문학에서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박상영을 비롯해 김봉곤은 중심에서 이야기를 합니다. 김봉곤의 소설은 성소수자의 문제를 제기하는 게 아니라 성소수자가 화자인 소설로 읽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화자가 성소수자라는 것을 거두고 읽어도 좋을 것 같은데 그러면 관계와 사랑에 대해 던지는 따듯한 질문들이 남습니다. 이 질문들은 너무나 따듯해서, 연약하게도 여겨집니다. 소설이 던지는 질문들, 그 질문을 이야기로 담아내는 구조, 그 치밀함과 치열함이 약간은 아쉽게 느껴집니다.

반면 김병운은 외부에서 바라보는 퀴어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처럼 읽힙니다. 사회적인 시선과 편견과 차별, 그로 인하여 정체되어버린 화자의 실존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것을 인터뷰형식으로 풀어내는시도가 흥미롭습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 시도가 전체적인 구조 속에서 보다 더 잘 연결되어있거나 자리를 잡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점입니다. 배우 공상표를 둘러싼 인물들의 서사가 마무리되지 못한 채 그것을 인터뷰로 넘겨버린 듯한 느낌도 드는데, 분명히 작가의 의도이기는 했겠으나, 나로서는 여전히 마무리가 아쉽다는 느낌입니다.

김숨을 먼저 추천하고, 김봉곤이나 김병운은 다른 선생님들이 추천하신다면 반대하지 않겠습니다.